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어린 시절 러시아 혁명을 겪었고, 제2차 세계대전도 지켜봤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교향곡(모두 15곡)은 전쟁이나 혁명을 소재로 한 것들이 많다.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포위전' 속에서 탄생했다.
1941년 6월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했다. 7월에는 제정 러시아의 수도이자 소련의 제2의 도시인 레닌그라드를 포위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쇼스타코비치는 포화가 빗발치는 절망 속에서 7번 교향곡을 쓰기 시작했다. 스탈린 역시 이 작품이 소련의 군대에 힘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쇼스타코비치는 8월에 1악장을, 9월 2악장, 그리고 10월쯤 3악장을 각각 썼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는 이주명령을 받고 레닌그라드를 떠났다. 그해 12월 가족과 함께 피신해 머물렀던 쿠이비셰프에서 마지막 악장과 오케스트레이션(관현악 연주를 위해 작곡이나 편곡을 하는 일)을 마무리했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침략과 스탈린의 공포정치로 황폐해진 레닌그라드를 묘사한 7번 교향곡은 1942년 3월 5일 쿠이비셰프에서 모스크바 볼쇼이극장 관현악단 연주로 초연됐다. 당시 소련 언론들은 이 곡을 "파시즘에 대한 강한 저항과 승리의 의지를 담은 역작"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스탈린은 군사작전의 하나로 레닌그라드에서 이 곡 연주를 추진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8월 9일 밤, 수만 명의 레닌그라드 시민이 필하모니 홀에 모여들었다. 레닌그라드 최전선의 러시아 군인을 지휘하던 고보로프 장군은 독일군을 향해 선제공격을 명령해 적들의 공격으로 인해 연주가 중단되지 않도록 했다. 이 연주는 스피커를 통해 레닌그라드에 중계가 됐고, 레닌그라드 바깥에서 진을 치고 있던 독일군에게도 그대로 전달됐다. 공연은 레닌그라드 시민들에게 생존과 승리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등 대성공을 이뤘다.
레닌그라드는 70여 분짜리 대곡이다. 전쟁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진 1악장이 약 30분에 이르며 곡의 절반 가까이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가 '유쾌한 일이나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재미난 에피소드에 관한 추억을 회상한 것'이라고 표현한 2악장과 '자연의 아름다움과 지혜에 대한 외경의 마음'이라고 표현한 3악장이 이어진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마치 '승리'를 나타내는 것처럼 금관악기의 화려한 팡파르와 전 악기의 힘찬 연주 속에 팀파니의 강렬한 두드림으로 전쟁의 마침표를 찍는다.
쇼스타코비치는 20세기 최고 작곡가라는 찬사와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을 함께 받았다. 그는 회고록에서 "교향곡 7번은 단지 점령된 레닌그라드가 아니라 스탈린이 철저히 파괴하고, 히틀러가 마지막 타격을 가한 레닌그라드를 애도한 곡"이라고 말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