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개승자', 서바이벌로 돌아온 코미디의 계승자

KBS '개승자', KBS 최초 코미디 서바이벌의 가능성과 한계

KBS 코미디 서바이벌 프로그램
KBS 코미디 서바이벌 프로그램 '개승자'. KBS 제공

개그맨들이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지난해 6월 '개그콘서트' 종영 후 약 1년 반 만이다. 이들이 선 무대는 '개승자'라는 코미디 서바이벌. '개승자'는 왜 서바이벌 형식으로 돌아왔고, 그건 어떤 가능성과 한계를 내포하고 있는 걸까.

◆자기반성·비판으로 출발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내가 바로 시청률의 제왕 박 대표야! 오키오키 오키나와!" KBS '개승자'의 첫 무대에 나온 박성광 팀이 선보인 '개승자 청문회'에서 그간의 유행어를 묻는 '개그위원' 남호연에게 박성광은 자신이 '개그콘서트'에서 했던 유행어들을 연달아 외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관객들의 썰렁하고 냉담한 반응 뿐이다.

남호연은 이 상황에 대해 "이게 현실"이라며 "본인 개그가 다 똑같다 생각하지 않습니까"라는 날선 비판으로 관객들을 웃게 만들었다. 회심의 한 수로 꺼내놓은, 무안할 때 하는 개그라며 "무안! 전남 무안~"이라 외쳐 한껏 썰렁하게 만든 박성광에게 남호연은 "제가 보기엔 박성광 씨는 이 프로그램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며 "빨리 후배들에게 자기 자리를 내주는 게 낫다"는 아픈 지적을 내놨다.

물론 이 썰렁 개그는 박성광이 그간 '개그콘서트'에서도 늘 해왔던 방식으로, 그 어색함을 웃음으로 비틀어내는 코미디였다. 하지만 그걸 굳이 '개승자' 첫 무대로 가져와 청문회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 그저 우연처럼 보이진 않는다. 거기에서 일종의 자기 반성과 비판이 느껴져서다.

KBS 코미디 서바이벌 프로그램
KBS 코미디 서바이벌 프로그램 '개승자'의 한 장면. KBS 제공

'개승자'가 드디어 시작됐다. 작년 6월 '개그콘서트' 종영 후 약 1년 반 만이다. 사실 '개그콘서트' 종영 원인 중 가장 큰 건 소재와 표현은 물론이고 그 형식 자체가 재미없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외모 비하'나 '가학 개그' 같은 개그들은 소재와 표현에 있어서 과거에는 재미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감수성 변화'에 의해 재미가 없어졌다. 그리고 무대개그라는 형식 또한 당시만 해도 참신했지만 이제는 낡아지면서 재미가 없어졌다. 그러니 '개그콘서트' 종영 후 그 계승자를 자처해 돌아온 '개승자'는 이에 대한 답변을 갖고 있어야 했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첫 무대에 나온 박성광 팀이 이른바 '개승자 청문회'라는 코너로 먼저 자기 반성과 비판을 웃음의 코드로 내세웠지만, 아직 소개된 코너가 몇 개 되지 않아 그 내용적 변화를 완전히 읽어낼 수는 없다. 따라서 현재로서 보이는 가장 큰 차별점은 '서바이벌' 형식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KBS측은 '최초의 코미디 서바이벌'이라고 이를 명명했다. 최종 생존 팀에게 1억원의 우승 상금을 걸었고, 매 미션마다 한 팀씩 탈락한다는 룰을 내세웠으며 서바이벌 오디션 전문 MC(?)인 김성주를 진행자로 세웠다.

물론 경쟁이야 '개그콘서트' 시절에도 치열했다. PD 앞에서 경쟁해 살아남은 코너를 관객들 앞에 보이고 그 반응 여부에 따라 방송에 나가는 것과 편집되는 것이 결정되는 시스템이었으니 얼마나 치열했을까.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 시스템을 듣기만 했을 뿐, 방송을 통해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개승자'가 가져온 서바이벌 형식은 다르다. 무대에 오르기 전 각 팀으로 나뉜 개그맨들은 치열한 고민들을 통해 무대에 세워질 코너들을 짜고 그 과정이 전체는 아니라도 일부 소개된다. '개승자'는 지금껏 잘 소개되지 않았던 무대 바깥에서의 개그맨들의 스토리와 무대 위 코너들을 이어 붙여 좀 더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코미디를 선보이려 하고 있다.

KBS 코미디 서바이벌 프로그램
KBS 코미디 서바이벌 프로그램 '개승자'의 한 장면. KBS 제공


◆서바이벌 관건 된 스타 발굴은?

최근 들어 서바이벌 형식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오는 형식이 됐다. 코로나19 이후 가장 타격을 입은 건 무관중이라는 한계의 직격탄을 맞은 음악 프로그램들이었지만, 놀랍게도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이 시기에 오히려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JTBC의 '싱어게인', '팬텀싱어3', '슈퍼밴드2', '풍류대장', TV조선의 '미스트롯2', '내일은 국민가수', MBN의 '보이스킹', '조선판스타', SBS의 '라우드', KBS의 '새가수', Mnet의 '걸스플래닛' 등이 그 음악 프로그램들이다.

이렇게 된 건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지친 시청자들이 음악을 통한 위로와 공감을 더 요구하게 된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서바이벌을 내세운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경쟁이 만들어내는 극적 긴장감이 시청자들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물론 오디션 프로그램은 여타의 음악 프로그램들과 달리 최종 파이널 무대를 빼고 나면 몇몇 통제된 출연자들만으로 방송을 만들어갈 수 있어 코로나19 상황에서의 제작에도 유리한 점이 있었다.

서바이벌은 음악 오디션을 넘어서 다양한 분야로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채널A '강철부대' 같은 밀리터리 서바이벌이 등장해 큰 성공을 거뒀고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댄스 서바이벌로 신드롬급 인기를 끌었다. 좀 더 확장해 생각해보면 JTBC '뭉쳐야 찬다'나 SBS '골 때리는 그녀들'같은 스포츠 예능도 일종의 스포츠 서바이벌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은 최근 예능의 대세 트렌드로 자리했다. 그렇다면 서바이벌 형식을 차용한 '개승자'도 성공할 수 있을까.

관건은 스타가 탄생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그렇지만 여타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도 결국 스타 탄생과 팬덤 구축이 프로그램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잣대가 됐다. '강철부대'나 '스트릿 우먼 파이터'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성공한 건 여기서 여러 스타가 배출됐고, 방송 도중에 이미 강력한 팬덤들이 형성됐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개승자'의 성패를 가르는 것 역시 스타 발굴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과연 '개승자'는 새로운 스타를 배출해낼 수 있을 것인가.

KBS 코미디 서바이벌 프로그램
KBS 코미디 서바이벌 프로그램 '개승자'의 한 장면. KBS 제공

◆새로운 얼굴 등장해야

'개승자'는 총 13팀이 서바이벌에 합류했다. 그런데 13팀 중 12팀의 팀장은 김준호, 김대희, 이수근, 박준형, 김민경, 박성광, 김원효, 유민상, 윤형빈, 이승윤, 변기수, 오나미로 이미 '개그콘서트'는 물론이고 버라이어티쇼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스타 개그맨들이다.

마지막 히든팀으로 합류한 홍현호, 김원훈, 박진호, 황정혜, 정진하가 그나마 신인팀으로서 상대적으로 얼굴이 덜 알려진 개그맨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새로운 스타 발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직까지 새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이렇게 된 건 '개승자' 역시 신인들로 채워놓았을 때 가질 수 밖에 없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함이다. 화려한 팀장들의 면면이 이 서바이벌에 대한 긴장감과 주목도를 높이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유명한 개그맨들이 '개승자'에서 여전히 계속 주목받는 것으로 이 프로그램만의 정체성이나 존재감이 살아나기는 어렵다. 결국은 '개승자'가 탄생시킨 새 얼굴이 나타나야 프로그램이 비로소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타 개그맨들로 구성된 팀장들이 서바이벌 초반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면서 팀원들이나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해내고 전면에 세워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숙제로 남았다.

'개승자'는 '개그로 승부하는 자들'을 줄인 말로 '개그의 승자' 혹은 '개그의 계승자'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소개됐다. 과거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같은 버라이어티쇼가 등장하면서 KBS '유머일번지'나 '쇼 비디오자키'같은 콩트 코미디가 위기를 맞았을 때 KBS '개그콘서트'가 등장해 코미디의 계승자가 됐던 건 박준형, 정종철, 심현섭 같은 당대의 새로운 스타들이 발굴되면서였다.

그렇다면 코미디계를 덮친 또 한 번의 위기 상황 속에서 '개승자'가 코미디의 계승자가 될 수 있는 길도 분명해 보인다. 새로운 스타 발굴이 그것이다.

KBS의 역대 개그프로그램들. KBS 제공
KBS의 역대 개그프로그램들.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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