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괴물 같은 문제작' 영화 '티탄' 리뷰

뒷머리에 티타늄 이식한 주인공…남성도, 여성도 아닌 거인의 모습
몸에서는 피 대신 검은 기름 흘러
부조리·불의·변질된 인간성 질타…새 시대 갈증 충격 비주얼로 그려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영화 '티탄'의 한 장면
영화 '티탄'의 한 장면

기괴하다.

놀랍게 이질적이고, 여느 것들과 달리 괴이할 때 곧잘 기괴하다고 표현한다. 9일 개봉한 '티탄'(감독 쥘리아 뒤쿠르노)은 말 그대로 '기괴'한 '괴물'같은 영화다. 표현은 거침없고, 주제는 상징적이며, 서사는 모호하다. 뉴 제너레이션의 창세기라 할까. 거칠고 강렬한 쇳조각으로 후벼 파고, 찢고 발기며 우리 시대를 전복해 버리는 놀라운 문제작이다.

소녀 알렉시아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당한 후, 귀 뒷머리에 티타늄을 심는다. 성인이 된 알렉시아(아가트 루셀)는 외설적인 춤을 추는 클럽 댄서가 된다. 그러나 그녀는 그 어떤 것들과도 소통하지 못한다. 기존 질서를 증오하며, 부모와도 멀어진다. 접근하는 남성 팬도 무참히 살해해 버린다. 그 어떤 젠더와의 성적 관계도 이루지 못하며 알 수 없는 살인을 이어가다 결국 도망자가 된다.

'티탄'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알렉시아가 도주하다 10년 전 실종된 소년 아드리안으로 변장하고, 그의 아버지 뱅상(뱅상 랭동)을 만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러나 서사는 그렇게 중요하지가 않다. 친절하게 설명도 하지 않을 뿐더러 워낙 파격적인 비주얼이 이어지니 개연성을 따질 겨를도 없다.

표현 수위는 과할 정도로 세다. 보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려올 정도다. 그렇다고 스플래터(피 튀기는 공포영화) 무비처럼 화면 가득 피를 채우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불편하며, 자학적(?) 쾌감을 주기까지 한다. 자동차와 섹슈얼리티를 결합한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크래쉬'(1996)나 종교적 구원을 파격적인 비주얼로 그려낸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 크라이스트'(2009)를 볼 때 느꼈던 충격이 그대로 전해진다.

영화 '티탄'의 한 장면
영화 '티탄'의 한 장면

'티탄'은 두개골을 티타늄으로 대신하는 수술 장면부터 시작해, 불과 물, 피와 기름, 살과 철 등의 이미지들을 강렬하게 쏟아낸다. 알렉시아는 티타늄을 머리에 탑재하면서 자동차와 강철을 좋아하게 된다. 자동차와 섹슈얼한 유대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는 피 대신 검은 기름이 흘러나오고, 점점 배가 불러온다.

제목 '티탄'(Titan)은 티타늄 강철과 함께 그리스 신화 속 타이탄을 연상시킨다. 타이탄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우주의 신인 우라노스 사이에서 태어난 거대한 힘을 가진 거인족이다. 알렉시아의 몸에 티타늄이 이식되면서 육신의 수분은 검은 기름이 되고, 몸도 티타늄으로 육화된다. 마치 신인류의 탄생처럼 새로운 '거인'이 태어난 것이다.

이 '거인'은 남성, 여성 구분도 모호하다.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기괴한 성형을 통해 남성으로 변신한다. 인간이 가진 욕망도 없으며 죄와 구원의 갈망도 없다. 인간의 보편성이 없으니 원죄 또한 없다. 그렇다면 그는 인간인가, 아니면 타이탄처럼 새로운 올림포스 신의 탄생을 위한 그릇인가.

알렉시아는 몇 번에 걸쳐 탈각(脫却)한다. 마치 예수의 가시 면류관을 쓴 듯 티타늄을 심을 때와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신할 때다. 껍질을 깰 때는 쇠를 녹일 듯한 고통이 따른다. 거대한 불기둥이 필요하다. 알렉시아는 불로 부모를 죽이고, 불로 새로운 아버지 뱅상을 만난다. 그리고 알렉시아의 산통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다.

서른아홉의 프랑스 여성감독 '쥘리아 뒤쿠르노'는 인간 내면의 욕망을 기괴한 스타일로 비주얼화하는 감독이다. 전작 '로우'(2016)는 채식주의자였던 여성이 내면의 식인 욕망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려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영화 '티탄'의 한 장면
영화 '티탄'의 한 장면

'티탄'은 훨씬 더 강렬한 비주얼로 은유를 던진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경고랄까. 시대의 모든 부조리와 불의, 변질된 인간성을 질타한다. 한물 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시선을 경계하면서 페미니즘의 돌을 하나 얹기도 한다. 알렉시아를 겁탈하려는 팬이나, 주사약을 통해 과거를 갈구하는 뱅상, 거대한 육질만 잔존한 소방대원 등은 유효기간이 끝난 기성 질서의 폐기물처럼 그려진다. 상실과 소외, 젠더 갈등, 욕망과 현실 등 현대 사회의 고민들 또한 대입 가능하도록 해놓았다.

버스 위에서 '여행하는 이방인'(Wayfaring Stranger)에 맞춰 알렉시아가 춤을 추는 장면은 처연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곡은 샘 멘데스 감독의 '1917'(2020)에서 살아 돌아가고 싶은 병사들의 마음을 담아 애잔하게 해주기도 했다.

'티탄'은 기존 시대의 종언과 새 시대의 갈증을 충격적인 비주얼로 그린 영화다. 쥘리아 뒤쿠르노는 두 번째 장편 영화로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여성 감독으로는 1993년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 이후 28년 만의 일이다. 그는 "괴물성은 규범이라는 벽을 밀어내는 무기이자 힘"이라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2009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안티 크라이스트'가 칸 영화제를 논란과 충격 속에 휩싸이게 했던 것에 비추면, 2021년 칸 영화제가 '티탄'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겼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수상은 했지만 호불호가 극명할 수 있으니, 보신다면 심호흡이 필요하겠다. 108분. 청소년 관람불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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