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현준이는 또래보다 키가 작고 조용한 아이였다. 어린이독서회 모임을 위해 전화 연락을 할 때면 항상 할머니와 연락이 닿았다. 할머니는 어느 날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셔서 손자를 돌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후로 현준이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독서회에 참여했지만 나는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부모의 부재와 상실의 아픔을 그 조그마한 몸으로 어떻게 견뎌내고 있었을까.
내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학교에 돌아왔을 때가 떠올랐다. 그 당시 어린 나는 그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몹시 난감했다. 모른 척해줘야 할지, 위로를 건네야 할지…. 기껏해야 그 아이 앞에서는 '엄마'라는 말을 꺼내지 않도록 말조심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줄 몰랐다.

현준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독서회 아이들은 큰 충격을 받았는데, '죽음'에 대해 쉬쉬하며 모른 척하고 제대로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어떻게 떠나보내야 할지, 우리 삶과 공존하는 죽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등 그림책을 곁들어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 각별하게 신경을 써서 세 권의 책을 골랐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이란 책은 갓 나온 알, 풀, 나무, 물고기 등 살아있는 것과 생명을 다한 것들을 번갈아 보여주며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음을 조용히 설명하고 있는 그림책이다.
'오래 슬퍼하지 마'에서는 할머니를 데리러 온 사신에게 계속 커피를 따라주며 못 데려가게 방해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사신은 아이들에게 죽음이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주며 "마음껏 울어라, 하지만 오래 슬퍼하지는 말아라"며 위로한다.

'첫 번째 질문'은 일본의 대표 시인이자 아동문학가 오사다 히로시의 시를 수채화풍으로 엮은 그림책이다. "좋은 하루란 어떤 하루인가요?", "오늘 고마워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오늘 하늘을 보았나요?" 등 책에서 던지는 많은 질문이 커다란 삶의 울림으로 가득 채운다.
이 세 권을 읽은 후 아이들은 반려견을 잃었거나, 오랫동안 아파서 학교에 오지 못하는 친구, 할아버지의 장례식 등 각자 자신들이 겪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날 독서모임을 마치고도 혼자 남아있던 현준이는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저도 아빠한테 꼭 이야기 하고 싶어요. 너무 많이는 울지 않겠다고요."
그러고는 엄마도 읽었으면 좋겠다며 세 권의 책을 모두 빌려갔다. 몇 달 후 현준이 얼굴은 볼 수 없었고 빌려간 책만 반납이 된 것을 확인했다. 지금도 이 책을 보면 궁금해진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현준이는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또 현준이 엄마는 그 책을 읽고 위로를 받았을까.
박여영 2․28기념학생도서관 사서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어대명' 굳힐까, 발목 잡힐까…5월 1일 이재명 '운명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