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헤라자드 사서의 별별책] <1> 어린 너에게, 삶과 죽음을 어떻게 이야기해줘야 할까

2․28기념학생도서관 사서 박여영

브라이언 멜로니 글, 로버트 잉펜 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펴냄
브라이언 멜로니 글, 로버트 잉펜 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펴냄

4학년 현준이는 또래보다 키가 작고 조용한 아이였다. 어린이독서회 모임을 위해 전화 연락을 할 때면 항상 할머니와 연락이 닿았다. 할머니는 어느 날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셔서 손자를 돌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후로 현준이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독서회에 참여했지만 나는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부모의 부재와 상실의 아픔을 그 조그마한 몸으로 어떻게 견뎌내고 있었을까.

내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학교에 돌아왔을 때가 떠올랐다. 그 당시 어린 나는 그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몹시 난감했다. 모른 척해줘야 할지, 위로를 건네야 할지…. 기껏해야 그 아이 앞에서는 '엄마'라는 말을 꺼내지 않도록 말조심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줄 몰랐다.

글렌 링트베드 글, 샬로테 파르디 그림, 안미란 옮김 / 느림보 펴냄
글렌 링트베드 글, 샬로테 파르디 그림, 안미란 옮김 / 느림보 펴냄

현준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독서회 아이들은 큰 충격을 받았는데, '죽음'에 대해 쉬쉬하며 모른 척하고 제대로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어떻게 떠나보내야 할지, 우리 삶과 공존하는 죽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등 그림책을 곁들어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 각별하게 신경을 써서 세 권의 책을 골랐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이란 책은 갓 나온 알, 풀, 나무, 물고기 등 살아있는 것과 생명을 다한 것들을 번갈아 보여주며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음을 조용히 설명하고 있는 그림책이다.

'오래 슬퍼하지 마'에서는 할머니를 데리러 온 사신에게 계속 커피를 따라주며 못 데려가게 방해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사신은 아이들에게 죽음이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주며 "마음껏 울어라, 하지만 오래 슬퍼하지는 말아라"며 위로한다.

오사다 히로시 지음, 이세 히데코 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펴냄
오사다 히로시 지음, 이세 히데코 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펴냄

'첫 번째 질문'은 일본의 대표 시인이자 아동문학가 오사다 히로시의 시를 수채화풍으로 엮은 그림책이다. "좋은 하루란 어떤 하루인가요?", "오늘 고마워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오늘 하늘을 보았나요?" 등 책에서 던지는 많은 질문이 커다란 삶의 울림으로 가득 채운다.

이 세 권을 읽은 후 아이들은 반려견을 잃었거나, 오랫동안 아파서 학교에 오지 못하는 친구, 할아버지의 장례식 등 각자 자신들이 겪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날 독서모임을 마치고도 혼자 남아있던 현준이는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박여영 2․28기념학생도서관 사서
박여영 2․28기념학생도서관 사서

"선생님, 저도 아빠한테 꼭 이야기 하고 싶어요. 너무 많이는 울지 않겠다고요."

그러고는 엄마도 읽었으면 좋겠다며 세 권의 책을 모두 빌려갔다. 몇 달 후 현준이 얼굴은 볼 수 없었고 빌려간 책만 반납이 된 것을 확인했다. 지금도 이 책을 보면 궁금해진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현준이는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또 현준이 엄마는 그 책을 읽고 위로를 받았을까.

박여영 2․28기념학생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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