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혼란의 중대재해법, 칼날이 돼선 안된다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다음 주(27일)부터 시행된다. 최근 광주에서 신축 아파트 붕괴로 노동자 6명이 참변을 당해 국민적 공분이 확산하는 가운데, 실제 법 적용이 어찌 전개될지에 산업계와 노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맞춰 후진국형 노동자 사망 사고를 줄이자는 법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 2021년 국내 산재 사고 사망자는 828명으로 전년(882명)보다 54명 줄었지만, 800~900명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볼 때 중대재해처벌법상 수사 대상 사업장은 190곳이다. 최대 190명의 사업주가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2024년 1월까지 법 적용이 유예되는 50억 원 미만 건설 현장과 50인 미만 사업장을 뺀 수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업장이 많은 대기업이나 산재 위험도가 높은 건설업종 등은 오너가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거나, 책임을 피하는 방패막이용으로 임원(최고안전책임자) 자리를 새로 만드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안전한 작업 환경 조성과 점검은 기본이지만 기업 대표가 잠재적 형사범이 될 수 있어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당장 다음 주부터 법 적용 대상인 50억 원 이상 건설 현장과 50인 이상 사업장은 전국적으로 약 5만 곳이다. 공단이 몰려 있는 구미를 비롯한 지역 산업계에선 일단 '1호 처벌'만큼은 피하고 보자며 잔뜩 움츠러든 모습이 역력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업 안전 불감증에 대한 기업의 경각심을 제고해 근로 현장에서의 희생자를 줄이는 유효한 수단임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 산업재해 사망자 10명 중 8명은 법 적용이 유예 또는 제외되는 50인 미만 사업장 소속 노동자다. 지난해 산재 사망자 828명을 사업장 규모별로 살펴보면 ▷'5인 미만' 317명(38.3%) ▷'5∼49인' 351명(42.4%) ▷'50∼99인' 54명(6.5%) ▷'100∼299인' 58명(7.0%) ▷'300∼999인' 30명(3.6%) ▷'1천 인 이상' 18명(2.2%)이다.

노동계는 산재에 절대적으로 취약한 5인 미만 사업장에도 법을 적용하도록 개정 운동을 펼치겠다는 입장이지만, 경제단체 및 산업계에선 현장 혼란과 부담이 가중된다며 제도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사업주의 책임 범위, 고의와 과실 기준 등에 대한 법 규정이 모호하다는 얘기다. 구미의 한 대기업 협력업체 대표는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산재로 대표가 구속된다면 대부분 회사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걱정을 나타냈다.

또 앞으로 산업 현장에서 고령자 채용이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020년 산재 사망자 882명 중 50세 이상이 72.4%(639명)이며, 이 중 60세 이상이 39.3%(347명)를 차지했다는 사실도 기업 입장에선 리스크 요인이다. 더구나 현장 인력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장·노년층을 배제한다면 고용 시장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안전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높아지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확장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분명 올바른 방향이다. 하지만 과도한 처벌에만 방점이 찍혀 산업계 전반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손실일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새 정부 들어서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노동 과제로 중대재해처벌법 보완을 지목한 것도 이러한 절박감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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