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이재명 부부 대통령 자리 만만하게 봤나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책 '굿바이 이재명' 저자 장영하 변호사가 공개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통화 녹음 파일엔 이 후보 부인 김혜경 씨도 등장한다. 김 씨는 이 후보 형 재선 씨 딸과의 통화에서 "작은엄마가 무슨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그러니"라며 "너는 집안 어른을 어떻게 봤길래 그러냐. 내가 집안 어른 아니야"라고 따졌다. 재선 씨 딸이 "어른 아니시라고요"라고 하자 김 씨는 "이 X이 그냥"이라고 했다.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공무원들을 하인처럼 부린 것을 비롯해 여러 불법 의혹을 사고 있는 김 씨, 그리고 이를 사실상 방조한 이 후보에게 김 씨 말을 차용(借用)해 묻고 싶다. "대통령 자리를 어떻게 봤길래 그랬느냐"고. 초등학교 반장 선거 출마를 결심하더라도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가를 되돌아보고, 문제가 될 언행을 삼가는 것이 상식이다.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 부부가 권력 남용에 국고 손실 의혹을 샀다는 것 자체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 후보는 2007년 대선 때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캠프에 참여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의 머릿속엔 '노무현 신화'를 재연하고 싶은 생각이 자리 잡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성남시장 재선(再選)을 바탕으로 201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다. 십분 양보하더라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공식 표출한 2017년 이후엔 이 후보가 자신은 물론 부인, 가족과 관련해 문제가 될 만한 사안들을 방지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 후보는 성남시장 시절 논란이 됐던 별정직 공무원 배모 씨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경기지사가 된 후 직급까지 올려 계속 채용해 부인 수발을 들도록 하는 빌미를 만들었다. 변호사 사무실 직원부터 1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배 씨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 후보가 몰랐을 리 만무하다. 또한 변호사 출신에 단체장 경력이 10년이 넘는 이 후보가 공무원에게 사적인 일을 시키는 것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불찰(不察)이라며 고개를 숙인 이 후보 사과의 진정성이 떨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대 대선 후보 부부 중 가장 많은 흠결들을 가진 이 후보 부부가 대통령 자리를 만만하게 봤을 개연성이 높다. 성남시장, 경기지사 등 선거마다 승승장구하자 자신들이 가진 문제는 사소한 사안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소년공 출신 단체장이란 경력에 소박·청렴하고, 일 잘한다는 이미지로 포장하면 대통령 자리가 손에 들어올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권력이 주는 달콤한 맛에 취해 스스로를 성찰(省察)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될 수 없는 문제들을 쏟아내고, 방치한 이 후보 부부를 보면 이런 지적이 안 나올 수 없다.

이 후보는 부산 해운대 연설에서 "지금의 잔파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다. 우상호 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은 "국민들이 부적절하게 보고 있지만 그 전에 나왔던 여러 사건에 비교해 볼 때 그렇게 심각하게 보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김 씨를 둘러싼 의혹들을 희석시켜 사태를 모면하려는 속셈이다.

잔파도 운운하면서 이 후보가 연설한 장소가 의미심장하다. 영화 '해운대'에서 초대형 쓰나미가 닥쳐와 모든 것을 휩쓸었던 곳이 해운대다. 이 후보와 민주당은 지척에 다가온 민심(民心)의 쓰나미를 외면하며 사태 축소에만 급급하다. 이 후보 부부가 대통령 자리를 만만하게 여긴 데 이어 이제는 민주당까지 합세해 국민마저 만만하게 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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