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한 장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한 장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젊은 사병이 사단장 사택의 취사병이 된다. 사단장이 출장 간 사이 사단장의 젊은 아내가 유혹한다. 병사는 미모의 상관 아내의 요구에 결국 옷을 벗는다. 그리고 둘은 금기된 성애를 즐긴다.

이 정도 플롯이라면 누구나 질펀한 에로틱 영화를 상상할 것이다. 주인마님의 성적 목마름을 적셔주는 1980년대 토속적인 한국 성애영화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이처럼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감독 장철수)는 자극적인 선정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그런 야한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영화가 아니다. 감독 또한 "단순히 야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영화의 원작부터 얘기해야겠다. 중국 소설가 옌렌커가 2005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원작은 문화대혁명 당시 어느 중국군 부대를 배경으로, 뒤틀린 성적 욕망을 통해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허위를 고발한 문제작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금서로 지정됐고 서점에 깔린 책까지 수거됐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말은 마오쩌둥의 구호였다.

병사 무광(연우진)은 가난한 농촌 출신이다. 그는 반드시 출세해 돌아오겠다고, 아내에게 혈서까지 썼다. 그러나 그의 출세 길은 요원하다. 이제 사단장의 아내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젊은 간호사 출신의 수련(지안) 또한 미천한 신분이었다. 남편의 성 불능으로 외로워하다 무광에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혁명 각오를 다짐시키며 봉사를 강요한다.

둘의 출발은 성애다. 숨 막힐 듯 외로움과 절절함에 부여잡은 탈출구였다. 그러나 둘의 가슴 속에 사랑이 자리 잡는다. 개인의 욕망이 시대의 억압을 견뎌내고 영원한 로맨스로 승화된 것이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한 장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한 장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이 영화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2010)을 연출한 장철수 감독의 연출작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그는 옌렌커의 소설에 매료돼 11년간 영화화를 고민했다.

물론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감독은 1970년 중반 어느 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로 바꾸었다. 북한이라고 지칭하지는 않지만 '위대한 주석님' 등 말씨로 보아 누구나 북한을 상상하게 된다. 그럼에도 복장 등은 중국군 같은 느낌을 준다. '주석님'은 헤밍웨이 수염을 한 이질적인 인물이다. 원작의 풍자에 장철수식 풍자를 더한 것이다.

근래 한국영화로는 노출이 심한 편이다. 남녀 주연 배우들이 전라로 등장한다. 영화는 보란 듯이 다양한 체위의 성애장면을 보여주니 나름 파격이다. 특히 수련 역의 배우 지안은 체모까지 노출한다. 배우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감독 또한 이안 감독의 '색,계'처럼 더욱 강렬함을 원했을 수 있지만, 한국 영화제작 여건상 쉬운 일은 아니다.

영화는 많은 것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권력 관계에서 시작된 두 주인공의 원초적 욕망에서부터 애틋한 로맨스, 사회주의 혁명의 서사와 그 속에 허물어지는 개인의 아픔까지. 원작의 무게와 감독 자신만의 색깔 또한 지키려고 애쓴다.

그러나 모두 건져내기에는 147분의 긴 러닝타임으로도 역부족이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나무 팻말은 사단장인 남편에게는 강철대오의 상징이지만, 무광과 수련에게는 성적 욕망의 은밀한 신호이다. 사회주의의 엄중함을 통렬하게 조롱하는 수단인 셈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상징성을 절절하게 그려내지 못한다. 권력으로 무광의 성을 착취하던 수련이 가련한 여인으로, 사랑에 목마른 여인으로 급변하면서 멜로로 물꼬를 틀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멜로로서도 한계인 것이 이미 풍자의 보자기를 풀었기 때문에 로맨스의 애련함을 건져 올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

풍자의 진정한 맛은 신랄함이다. 그 알싸한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관객이 풍자를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무광과 수련은 쾌락의 끝쯤에서 주석님의 초상을 깨고, 그의 슬로건을 찢고, 그의 도자기 인형을 깬다. 둘의 처절한 몸짓이 저격하는 것은 인민을 위한 봉사의 허위와, 체제에 대한 저항이다.

그러나 이 행위의 상징을 공감하기에 두 주인공의 감정 라인이 얕다. 육욕이 애정으로 변하면서 생겨난 히스테리 정도로 이해된다. 로맨스 영화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그러기에 원작의 무게감이 너무 크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한 장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한 장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배우 연우진은 어수룩한 무광 역을 온 몸으로 잘 연기한다. 반면 배우 지안의 대사는 무미건조해 감정을 푹 적시지 못한다. 약간 어색한 지점도 있지만 한편으로 말 안 통하는 열혈 혁명군인 남편에 억압된 아내의 특이성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다. "이제 누나라고 부르도록 해", '누나라고 안 해?", "씻고 와. 두 번 씻고 와" 등과 같은 대사는 뜻밖에 풍자의 코믹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무광의 아내가 첫날 밤 성관계를 앞두고 군대에서 상관에게 잘하라고 무광에게 당부하는 장면 등도 웃음이 터진다.

이 영화가 중국의 현대사를 풍자한 것이라는 것은 대부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나라'로 상정해버려 그 시대성을 상실한 것이 아쉽다. 아예 중국을 표방하든지, 아니면 원작의 시대성을 좀 더 걷어내 로맨스가 선연했다면 어땠을까. 147분.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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