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역사문제는 단순한 과거사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등 국익과 직결된 현실문제이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 우파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새로 연재를 시작하는 '심백강의 한국고대사'는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한국역사학의 현실을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동북공정은 한국공정이다. ▷역사문화전쟁의 중심에 서 있는 한국, ▷한국의 역사학이 나아갈 방향을 주제로 3회에 걸쳐서 게재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기대한다.
◆1만년 역사 영광·치욕 공존
역사에는 영광과 치욕이 공존한다. 역사란 시간과 공간에서 인간이 사유하고 행동한 것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한국의 역사는 한국민족이 사유하고 행동하며 시간과 공간에서 살아온 발자취로서 오늘 우리 삶의 뿌리이다.
우리가 지나간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는 목적은 현재를 올바로 인식하고 미래를 바르게 설계하기 위함이다.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슬기롭게 실마리를 풀어나가려는데 역사를 연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
어느 민족이나 물론 하고 역사에는 영광과 치욕이 공존하기 마련으로서 자랑스러운 때가 있었는가 하면 어두운 구름이 드리운 시기도 있다. 따라서 역사는 자랑스럽다고 과장을 해서도 안 되고 수치스럽다고 감추려 해서도 안 되며 사실을 바탕으로 기술하여 빛나는 역사는 본보기로 삼아 계승발전시키고 부끄러운 역사는 거울로 삼아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역사는 치욕스러운 역사가 지나치게 두드러져 있다. 한국인의 근세사 500년과 근대사 100년을 돌아보면 사대, 식민사관으로 얼룩져 있다. 조선조 500년은 소중화(小中華)를 자칭하며 자주성을 망각한 시대였고 특히 근대사 100년은 주권상실, 열강에 의한 분단, 식민사관 계승, 동족상잔 등 가슴 아픈 상처투성이이다.
그러나 우리는 1만 년 역사 5,000년 문명사를 지닌 세계의 역사선진국이다. 600년은 우리 역사의 20분지 1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광복 이후 사대, 식민사관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역사는 지금 유장한 1만 년 역사, 영광스러운 5,000년 역사는 가려진 채 부끄러운 500년 역사 치욕으로 점철된 100년 역사가 지나치게 두드러져 있다.
◆사대, 식민사관으로 동북방 발해유역의 찬란한 역사가 잘려나간 한국고대사
한국의 고대사는 고조선을 위시해서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포함한 중국대륙의 발해유역이 활동 무대였다. 발해를 발판으로 천하를 경영하던 제국의 한 축이었다.

그러나 이성계의 한양 조선에 이르러서 위상이 크게 바뀌었다. 만주벌판을 포기하여 강토는 압록강 안으로 축소되었고 명나라, 청나라에 대한 사대를 당연시하여 속국의 처지로 전락했다.
이때 북경의 첫 주인인 우리 한민족을 대륙에서 한반도로 몰아내려는 물결이 중국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났고 거기에 앞장선 사람이 명말 청초의 한족 민족주의자 고조우와 고염무였다. 이들이 한무제가 발해조선을 공격하여 갈석산을 넘어와 지금의 하북성 평주 일대에 설치한 한사군의 낙랑군을 한반도로 가져온 주인공이다.

그야말로 어이가 없는 허무맹랑한 논리로 낙랑군을 한반도의 평양 부근으로 옮겨다 놓았는데 이 문제는 필자의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우리 역사』 에서 상세히 다루었다.
역사의식의 결여로 사대주의에 매몰된 한양조선은 결국 우리역사상 전례가 없는 이 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나라의 주권을 강탈한 일본은 식민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단군조선 신화설을 제창하여 민족정기를 말살했고 실증사학이란 미명하에 대동강변 토성리에서 발굴한 유물을 낙랑유물로 날조하여 대동강 낙랑설에 대못을 박았다.

단군조선 신화설, 대동강 낙랑설은 두 가지 면에서 우리 역사를 송두리째 말살하는 작용을 했다. 첫째 단군조선 신화설은 우리 문명사의 길이를 4,300년에서 2,300년으로 단축했다. 일본역사 2,600년보다 고조선 역사의 길이가 오히려 300년이나 짧아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고조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인데 연나라사람이 세운 위만조선부터 실제 고조선 역사로 인정하다 보니 우리 역사가 뿌리는 잘려나가고 밑동만 남게 된 것이다.
둘째 대동강 낙랑설은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를 대륙의 발해유역에서 한반도의 압록강 안쪽으로 축소함과 동시에 2,000년 전부터 한반도가 중국의 식민지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 역사의 뿌리를 잘라내고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를 발해유역에서 한반도 안으로 축소한 일제의 간교한 식민사관은 광복과 동시에 청산되었어야 했다. 불행히도 이병도, 이기백, 이기동 등으로 대표되는 강단사학은 일제의 단군조선 신화설, 대동강 낙랑설을 계승하여 오늘날까지도 통설이란 이름으로 이 이론이 국사교과서에서 가르쳐지고 있다.

사대, 식민사관으로 동북방 발해유역의 찬란한 역사가 사라진 한국고대사, 한국사 비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발해유역의 한국고대사를 탈취하려는 한국공정이다
동북공정은 '동북변강의 역사와 현상계열을 연구하는 공정'의 줄인 말로 중국정부의 연구과제 명칭이다. 중국의 동북방에는 고대에 숙신, 거란, 말갈, 여진 등 여러 민족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 민족은 대부분 중국에 통합되거나 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실재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과거에 동북방을 주도하던 민족 가운데서 오늘날까지 국가와 민족과 역사를 지키며 온전히 존재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국인은 지금 한반도를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한국의 고대국가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가 모두 동북방 발해유역을 무대로 활동하였다. 중국 정부는 동북공정이란 이름으로 한국의 고대국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가 독립국이 아니라 중국의 지방정권이고 소수민족이라는 일찍이 지난 역사상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해괴한 논리를 만들어냈다.
동북공정은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사가 중국사에 귀속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동북공정은 한국을 직접 표방하지 않고 동북이라는 이름으로 겉을 포장했으나 그동안의 진행과정을 통해서 발해유역의 한국고대사를 탈취하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란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러므로 동북공정은 한국을 겨냥한 한국공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강단 사학도 반성할 점이 많다. 나라가 광복된 지 80년이 다 되어가는데 한민족이 동북방 발해유역에서 펼친 찬란한 역사를 내버려둔 채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대, 식민사관인 단군조선 신화설, 한사군 한반도설을 고수해왔으니 어찌 보면 동북공정은 저들에게 원죄가 있는 셈이다.
맹자는 "물건은 반드시 먼저 부패한 다음에 벌레가 생기고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모독하고 나서 남이 모독한다(物必先腐以後蟲生之 人必自侮以後人侮之)"라고 말하였다. 한국의 강단사학은 맹자의 말을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한다. 중국 동북공정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를 모독하고 내버려둔 죄를 가슴 깊이 반성하고 새 출발 해야 한다.
심백강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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