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놀이터를 돌려줘] <중> 어린이들이 놀이터에 가는 이유는 '친구'

어린이 50명 현장 설문 조사…좋은 놀이터는 다양한 친구와 만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곳
아이들 집주변 놀이터 만족하지만 더러운 환경에 불만족도
놀이시설별 놀이문화 양극화…상상력 펼치거나, 혼자 놀거나

지난 8일 대구시 동구의 한 노후된 놀이터가 한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 8일 대구시 동구의 한 노후된 놀이터가 한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글 싣는 순서]

〈상〉 우리동네 어린이 놀이터 양극화

〈중〉 어린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란

〈하〉 좋은 놀이터가 되려면

"놀이터 안가요, 같이 놀 친구가 없어요."

대구 달성군 옥포읍에 사는 조윤우(가명·9) 군이 취재진에 울상을 지어 보였다. 조 군을 만난 건 지난 4일 옥포읍에서 지어진 지 제일 오래된 아파트 단지였다. 일요일 오후 2시라 점심을 먹고 부모와 놀이터에 놀러온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조 군의 아파트 놀이터는 조용했다.

조 군은 놀이터 대신 홀로 킥보드를 타고 단지 주차장을 몇 바퀴 돌았다. 오르막, 내리막으로 구성된 주차장 경사가 조 군의 유일한 흥밋거리였다. 그는 "제가 사는 아파트에 친구들이 없어요. 학교 끝나면 친구들이랑 운동장에서 놀 수 있어서 좋은데 주말만 되면 심심해요. 같이 놀 친구가 없다 보니까 놀이터가 더 좋아져도 저한테는 중요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찾은 달서구 월성 삼정그린코아아파트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놀고 있다. 배주현 기자
지난달 26일 찾은 달서구 월성 삼정그린코아아파트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놀고 있다. 배주현 기자

◆일주일 3~4번 방문, 집 주변 놀이터 만족도 높아

아이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놀이터는 어떤 곳일까. 매일신문 취재진은 지난 2주 동안 대구 도심에 있는 어린이 놀이시설 32곳을 방문하면서 남자 18명, 여자 32명 등 50명의 아이들을 만나 놀이터 만족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아이들의 연령대는 6~13살까지 고르게 분포했고 11살이 11명(22%)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10살(10명, 20%), 12살(9명, 18%) 순이다. 50명 아이들 중 10명은 동구 어린이집에서 만났다.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란 다양한 친구와 만나 놀면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곳이다. 그들에게 놀이터는 '행복한 곳', '추억이 많은 곳', '친구들과 같이 노는 곳', '많이 넘어진 곳', '재밌고 소중한 곳'이었다. 이를 위해 재밌는 놀이기구와 넓은 공간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아이들은 주로 일주일 중 3~4번 놀이터를 방문해 1~2시간 머물렀다. 놀이터 방문 횟수를 묻는 질문에 '3~4번 방문, 1~2시간 체류'라는 응답률이 43명(86%)으로 가장 많았고 '1~2번 방문, 1~2시간 체류'가 6명(12%), '1~2번 방문 30분 체류 1명(2%)'이 뒤를 이었다.

놀이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으로는 '친구'를 꼽았다. '놀이터에 갈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을 묻는 문항에서는 '친구'라고 대답한 어린이가 42명(84%)이었고 '최신 놀이기구'가 6명(12%), '안전'이 2명(4%)이었다.

실제 아이들은 최신 놀이기구보다는 친구와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지난달 25일 서구 내당공원에서 신나게 그네를 타던 박주환(9) 군이 엄마와 손을 잡고 오던 오지혜(6) 양을 향해 대뜸 뛰어갔다. "안녕? 어디 살아, 같이 놀자"고 먼저 말을 건넨 박 군과 오 양은 금세 친구가 됐다.

인근에서 킥보드를 타던 김대현(10) 군도 곁으로 오자 셋은 김 군의 킥보드에 함께 앉아 발을 구르며 까르르 웃어댔다. 올해 3월에 만들어진 내당공원 어린이 놀이터는 최신식의 놀이기구가 많지 않지만 넓고 탁 트인 공간으로 인근 주민들이 아이와 함께 자주 찾는 곳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오지혜 양의 부모는 "신축된 아파트 놀이터와 비교해보면 놀이기구가 정말 부족해서 부모 입장에선 아이들이 심심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걱정과 달리 올 때마다 친구를 사귀고 엄청 잘 논다"며 "놀이터가 넓고 분위기가 밝다 보니 한 아이 무리가 신나게 뛰어놀고 있으면 그걸 보고 또 다른 아이가 찾아오는 식"이라고 말했다.

대다수 아이들은 자주 찾는 놀이터에 대해 만족했다. '본인이 자주 가는 놀이터를 얼마나 만족하는지(10점 척도)'를 묻는 질문에 38명(76%)이 10점을 주면서 자신의 놀이터에 매우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만족도가 높은 이유로 아이들은 모두 "학교나 집 근처에서 바로 놀 수 있고, 친구들을 만나기 쉽다"는 이유를 꼽았다.

나머지 아이들은 부족한 놀이시설과 더러운 환경으로 불만족을 표했다. 6점을 준 4명(8%)은 '비를 피할 곳이 있으면 좋겠다', '더 많은 놀이를 하기 위해 넓으면 좋겠다', '쓰레기통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5점을 준 4명(8%)은 '놀이터가 더럽고, 다친 경험이 있다'는 이유를 들며 놀이터의 낙후된 환경을 지적했다.

지난 8일 대구시 북구의 한 노후된 놀이터에 담배 꽁초가 버려져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 8일 대구시 북구의 한 노후된 놀이터에 담배 꽁초가 버려져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낙후 vs 최신 놀이시설별로 놀이문화도 극명한 차이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신체 발달은 물론 친구들과 관계 맺기를 통해 사회성을 경험한다. 친구와 뛰어노는 놀이터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달 26일 달서구의 한 신축 아파트 놀이터에서 김동우(10) 군이 "사건현장에 가자"고 외치니 같이 놀던 3명의 무리가 우르르 줄지어 뛰어갔다. 사건현장은 얼마 전 김 군이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곳이었다. 놀이터에서 만나 친구가 됐다던 이들은 "그곳에서 또 다른 일이 벌어질지 몰라"라며 다양한 놀이를 계속 만들어냈다.

반면 아이들의 발걸음이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 낙후 놀이터는 활동량은 물론 놀이문화도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아이들은 휴대전화 게임 등 혼자 노는 활동에 집중했다.

지난달 22일 북구의 한 공원 놀이터에서 만난 초등학생 3학년 1명이 놀이터 인근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했다. 곧이어 또 다른 친구가 "놀자"며 쪼르르 달려왔지만 잠시 뛰어다닐 뿐, 이내 벤치로 돌아와 폰 게임에 빠져들었다. 이 놀이터는 23년 전에 지어져 그네와 조합대가 전부였고 성적 농담이 놀이시설 벽면에 가득 차 있었다.

최기우(10) 군은 "저녁엔 숙제해야 해서 잘 나오지 못해 낮에 나오는데 그늘이나 쉼터가 없다 보니 놀이기구가 너무 뜨겁고 더위를 피할 곳이 없다"며 "지난번엔 놀이기구 나무 바닥이 부서진 적도 있어서 다칠 뻔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놀이시설도 솔직히 시시하다"며 "친구들이 많으면 같이 숨바꼭질이라도 하고 뛰어놀 수 있지만 그게 아니면 혼자 휴대폰 게임만 하다 들어간다"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이 나와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해당 놀이터에서 더 머물렀지만 초등학생 4학년 여학생 2명이 그네를 5분 정도 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놀면서 놀이터는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은 공간, 즉 주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계속 놀고 싶은 환경이 된다고 지적했다. 모험심을 자극하고 놀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될 때 아이들이 놀이터에 몰려든다는 설명이다.

이보람 대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아이들이 좀 더 흥미를 느끼고 주도적으로 놀이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대로 노는 환경을 없애야 한다. 예를 들어 그네를 한 방향으로만 탈 수밖에 없는 놀이터에서는 창의적인 생각을 불러오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놀이터를 만들 땐 아이들의 시각과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 아이들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는 곳이 아이들의 놀 권리를 빼앗는 곳이다. 아이들의 주도성과 권리가 보장되는 공간이 무엇인지를 고려해 놀이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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