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폴: 600미터’

남편 사별 후 슬픔 이겨내려 오른 600m 탑…위험천만 죽음의 공간으로 전환
"죽음 두렵다면 사는 것 또한 두려워 마라" 메시지

영화 '폴: 600미터'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영화 '폴: 600미터'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사는 것이 밋밋하고 심심한가. 이 영화로 짜릿한 스릴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 '폴: 600미터'(감독 스콧 만)이다.

이 영화는 사막 한복판에 세워진 높이 600m의 송신탑에 올라 조난을 당한 여성의 사투를 그린 영화다. 영화 보는 내내 발끝이 짜릿짜릿한 것이 거의 고문 수준의 스릴러다.

대체 왜 이 높은 곳에 올랐을까. 베키(그레이스 펄튼)와 그녀의 남편 댄(메이슨 구딩), 친구 헌터(버지니아 가드너)는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다. 세 사람은 거대한 수직 절벽을 오르다 사고로 남편 댄이 추락해 사망한다.

남편을 잃은 슬픔에 베키는 1년 가까이 폐인처럼 살아가고 있다. 보다 못한 친구 헌터가 기발한 모험을 하자고 제안한다. 모하비 사막에 있는 600m 높이의 송신탑에 오르는 것이다. 그 위에서 죽은 댄의 유골을 뿌리고 일상을 되찾자는 제안에 베키는 마지못해 수락한다.

'폴: 600미터'는 바다 속에 가라 앉아 백상아리의 위협을 받던 자매의 이야기를 그린 '47미터'(2017)의 제작진이 만든 또 다른 익스트림 스릴러다. 바다 속에서 나와 까마득하게 보이지도 않는 하늘 끝에 두 여성을 올려놓는다.

전작처럼 연약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조난 영화지만, 전작 보다 훨씬 더 촘촘하며, 복선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악한 영화로 진화했다.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설정도 나름 설득력이 있다.

'두려움 속에 살 것인가, 아니면 두려움에 맞설 것인가'라는 명제 앞에 놓인 주인공 캐릭터도 생명력이 넘친다. 사랑하는 남편이 죽자, 아내는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술로 지새자 아빠가 곁에서 조언을 하지만 '날 내버려 둬'라며 반발한다. 어떻게든 베키에게 변화가 필요했고, 그 변화는 더 큰 두려움 속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

영화 '폴: 600미터'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영화 '폴: 600미터'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이 영화는 107분의 러닝타임 중 대부분을 단 두 명이 출연한다. 그것도 타워 꼭대기의 좁은 공간이다.

난간은 녹슬고 아래를 이어주는 외벽 철제 사다리도 낡아 무너져 버렸다. 둘은 꼼짝 없이 지름 2m의 '피자 판'에 갇힌 셈이다. 하늘에는 독수리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배회하고, 뜨거운 햇살과 차가운 밤공기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고함 소리는 허공에 묻히고, 휴대폰은 신호를 잡지 못한다. 생수와 드론이 들어 있는 가방은 로프가 닿지 않는 저 아래에 있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내려가야 한다.

영화는 수직의 고소공포 속에 관객을 몰아넣는다. 살기 위해 매달려야 하고, 여차하면 까마득한 높이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암벽 등반은 잡을 바위나 있지, 이 송신탑은 암벽 갈고리 하나 끼울 곳이 없고, 밟고 설 틈 하나 없다.

영화는 호기 있게 시작한 등정이 최악의 조건으로 좌절하면서 결국 죽음과 맞서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까지 치닫는다. 이 과정을 다양한 각도의 촬영과 편집으로 담아 관객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팔걸이를 잡은 근육이 욱신거릴 정도이다. 처음 하늘로 향하던 앵글이 어느 순간 아래를 잡는데, 까마득히 아찔하다.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절망감이 느껴진다. 주인공의 심리 상태 또한 희망의 끈이 보이지 않는다.

'47미터'가 살아 있는 백상아리가 공포라면 이 영화는 무생물인 송신탑이 공포의 대상이다. "감히 나를 올라?"라는 듯 주인공들을 죽음으로 차근차근 밀어낸다.

영화 '폴: 600미터'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영화 '폴: 600미터'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영화에서 이 송신탑은 가상의 무대지만, 실제 캘리포니아에 있는 KXTV 라디오 타워를 모델로 했다. 높이 609m의 탑이다. 한때 미국 최고 높이의 구조물이며, 지금도 네 번째로 높은 곳이다.

촬영은 산꼭대기에 세트를 지어 촬영했다. 그래서 실제 600m 높이를 구현했고, 배우들의 연기 또한 실제처럼 긴장감 넘치게 뽑아냈다.

'죽는 게 두렵다면, 사는 것 또한 두려워하지 마라.'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다. 극한의 순간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을 가동시킨다. 생고기를 뜯어 먹으며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인다.

이 영화는 원래 단편으로 기획됐다. 한정된 공간, 두 명의 주인공, 철제 탑이라는 제한된 무대 등이 단편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설정이었다. 그러나 이를 영리하게 확장시켜 장편영화로 키웠다. 희망이 사라지는 과정을 리얼하게 묘사하면서 '47미터'에서의 반전과 동급 성능의 반전도 그렸다. 주인공의 심리 변화와 갈등 또한 잘 길러낸다.

리얼하다보니 관객의 주의도 필요하다. 고소공포증이 있거나. 높이에 민감한 관객은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 107분. 12세 이상 관람가. 11월 16일 개봉 예정.

영화평론가

영화 '폴: 600미터'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영화 '폴: 600미터'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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