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창자를 끊는 사람들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만약 당신이 신앙이나 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당신은 창자가 찢기는 고통을 당할지라도, 그 고통을 주는 사람의 얼굴을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 판사가 살인범 라스꼴리니코프에게 하는 말이다. 칭찬이 아니다. 이념이나 신념, 편견에 빠지면 '당신은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고 평하는 대목이다. 역사에는 원리주의, 사이비 종교, 지독한 편견에 빠진 사람들이 개인적 원한도 없는 타인의 창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끊어 버린 일들이 숱하게 존재한다.

'서해 피격 공무원 사건'과 관련해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구속되자 문재인 전 대통령 측은 "안보 사안을 정쟁으로 삼고, 국가안보에 헌신해 온 공직자들의 자부심을 짓밟으며, 안보 체계를 무력화하는 처사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입장문에 공무원의 죽음에 대한 위로나 안타까운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서훈이라는) 자산을 꺾어 버린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안보를 해친다는 말인가? 아니면 자신들이 높이 평가하는 '가치'를 위해서라면 국민의 생명을 구하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고, 월북 누명을 씌웠더라도 수사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우리가 신념과 이념, 종교를 갖는 것은 사람살이를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가진 신념은 사람을 찌르는 칼이 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지하는 '개딸'들은 '대장동이 논란이 된 것은 이낙연 측이 대장동 관련 제보를 했기 때문'이라는 논리로 이 전 총리를 "악마"라고 비난한다. 이낙연 없이도 대장동 사건은 존재하지만, 이재명 없이는 대장동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개딸'들은 이낙연에게 죄를 묻는다. 신념에 빠져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의 창자를 끊는 것이다. 중국의 홍위병, 광신도들의 마녀사냥, 나치를 비난하면서 같은 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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