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23 매일신춘문예 심사평] 시조

침신한 비유·도발적 이미지 체현으로 생명서정 이끌어

이정환 시조시인
이정환 시조시인

굵직한 목소리의 신인이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열망을 품고 응모작품과 마주했다. '슬픔의 샘'은 슬픔과 동행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근원을 파고들었다. 즉 내적 성찰의 세계가 시종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한 호흡으로 구현되고 있는 점이 두드러졌다. '피정의 하루'는 일상의 삶이 자연과 잘 교감을 이루는 정갈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겨울 저수지'는 정밀하게 묘사된 정경을 통해 생명의 역동성을 잔잔하게 부각시킨 점이 돋보였다. '세상의 흰 꽃은'은 참신한 언어감각으로 일정한 미적 성취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이상의 작품들이 최종심에서 거론되었지만 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일상의 시선에 머물거나, 공력을 더 기울여야 할 소품에 그쳤다는 까닭 등으로 당선권에서 멀어졌다.

반면에 당선작 황명숙의 '죽염에 관하여'는 네 수 한 편으로 탄탄하게 직조된 서정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스케일이 크면서도 참신한 비유와 도발적인 이미지 체현을 통해 죽염에 관한 모든 생명미학, 생명서정을 섬세한 필치로 밀도 높게 이끌어내고 있는 점에 신뢰가 갔다. 동봉한 작품들도 일정 수준을 보였다. 실로 새로운 목소리의 발현이다.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죽염의 탄생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짜증도 해맑게 삭인, 때로는 거센 파도 어느 날은 백합꽃, 바다를 다 휩쓸고도 눈썹 하나 까닥 않는'이라는 어기찬 생명의 현현을 생생하게 노래한다. 그뿐인가. '넉살좋게 저토록 적막해서 유월 햇살 골계미, 결정체의 숭고미'를 드러내고 있다고 설파하면서 '서럽도록 반짝'이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마치 우리 인생이 그러하다는 듯이.

정형의 기율 안에서 시대적 요청에 미학적으로 응답하는 헌걸찬 시조쓰기에 더욱 힘써야할 것이다. 이 점을 당선한 시인과 모든 응모자들이 늘 기억했으면 좋겠다.

시조창작에 대한 열망을 새해에도 활활 꽃 피워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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