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더 글로리’, 해외서도 열광한 김은숙표 복수극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 공개와 함께 글로벌 열풍

이것은 K복수극의 새로운 정점을 보여준 게 아닐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의 파트2가 공개되면서 그 반응이 심상찮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극을 담은 이 드라마의 무엇이 국내외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걸까.

◆해외에서도 반응 폭발한 '더 글로리'

이제 K콘텐츠에 대한 반응은 국내와 글로벌이 함께 움직인다.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일으키는 작품은 어김없이 글로벌 반응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 2월 30일 공개한 '더 글로리' 파트2도 마찬가지다. 이미 작년 말 파트1이 공개된 이후, 파트2가 방영되는 3월까지 어떻게 기다리느냐는 볼멘 목소리들까지 등장했던 '더 글로리'는 파트2 공개 3일 만에 해외 반응이 터졌다. OTT 순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 의하면 '더 글로리'는 공개 하루 만에 전 세계 TV부문 3위에 올랐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대만, 베트남, 멕시코, 칠레 등등 무려 26개 지역에서 1위를 기록했다. 전통적으로 K콘텐츠가 강한 아시아권 국가들은 물론이고 남미,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구권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더 글로리' 파트2에 대한 대중들의 기다림과 갈증이 얼마나 컸던가를 잘 보여주는 건 공개된 지난 10일 오후 5시 직후에 넷플릭스 서비스에 일시적으로 발생한 오류다. 시청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생긴 오류는 약 1분간 지속된 후 복구되었다. '더 글로리'에 대한 관심은 포털 사이트 급상승 검색어에 '넷플릭스'와 '더 글로리'를 올렸고,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되던 해외 불법 사이트에서도 파트2 첫 편에 해당하는 9회가 200만에 육박하는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만큼 반응이 뜨겁다는 반증이다.

'더 글로리' 파트2에 쏟아지는 국내외의 관심은 이 작품을 쓴 김은숙 작가에 대한 기대감에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 '태양의 후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으로 멜로를 기반으로 한 장르물이 이미 아시이권에는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김은숙 작가다. 특히 K멜로로 불리는 한국의 로맨틱 코미디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작가로 서 있는 그가 아닌가. 하지만 '더 킹: 영원의 군주'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혹평을 받으면서 주춤했던 김은숙 작가는 절치부심 '더 글로리'로 돌아왔다.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복수극으로 그간 그려왔던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와는 완전히 상반된 살벌하고 어두운 장르물에 도전했다는 점은 국내외 팬들이 이 작품을 기대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됐다.

그렇게 파트1이 공개됐고, 괜찮은 반응이 쏟아졌다. 심지어 "연진아 나 너무 신나" 같은 대사가 유행어가 되어 밈처럼 SNS에 회자됐다. 지금까지 전편을 공개해왔던 넷플릭스가 최근 들어 구독자를 좀 더 플랫폼에 머물게 하려는 전략으로 파트를 나눠 '쪼개기' 공개를 한 것 역시 '더 글로리'에는 파트2에 폭발력을 만들어주는 결과가 됐다. 파트1에 꾹꾹 눌러놓은 감정들이 통쾌하면서도 먹먹한 파트2에서의 복수극으로 물꼬를 내면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올 수 있게 해줘서다. 물론 이러한 폭발력이 가능한 건 파트1이 만든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시켜줄 만큼 완성도 높은 파트2의 마무리가 준비돼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새로운 복수의 서사가 담겼을까

사실 복수극이라는 장르는 K콘텐츠에서는 너무 많이 등장했다. 특히 최근 K드라마들 중 장르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복수극 문법을 가져와 화력을 높였다. 공권력이 제대로 다루지 않은 폭력에 대한 '사적 복수'는 최근 K복수극의 트렌드처럼 자리했다. 마피아 변호사의 복수극을 그린 '빈센조'나 억울한 처지에 극단에 내몰린 약자들을 위해 대신 복수를 해주는 '모범택시'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또 작년에는 티빙 '돼지의 왕', 웨이브 '약한 영웅', 디즈니+ '3인칭 복수' 같은 학교폭력을 소재로 하는 복수극들이 OTT 오리지널 시리즈로 쏟아졌다. 역시 학교폭력을 소재로 다루는 '더 글로리'의 등장이 소재만으로는 새롭다 보기 어려운 이유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밈이 등장할 정도로 시청자들이 열광하고, 국내외 평단에서도 호평이 쏟아지는 이유는 그 복수의 서사가 사뭇 달라서다. 뜨거운 고데기로 온 몸에 화상 흉터가 남겨진 끔찍한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문동은(송혜교)이 가해자들을 하나하나 궁지로 몰아넣고 저마다의 지옥을 마주하게 하는 방식은 저 흔한 복수극들이 하는 손에 잔뜩 피를 묻히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가해자들은 처참하게 처단당하지만 그건 문동은이 직접적인 물리적 타격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는 평생을 거쳐 치밀하게 복수를 계획하고 준비한다. 그리고 하나하나 저들이 갖고 있는 것들을 빼앗거나 그들의 엇나간 욕망을 동력으로 삼아 스스로 자멸하게 만든다. 이건 이 드라마에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고 있는 바둑의 방식이다. 상대의 집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결국에는 스스로 돌을 던지게 만드는 방식.

특히 저마다 가해자들이 가졌던 욕망들과 그래서 저지른 폭력들이 고스란히 부메랑처럼 그들에게 돌아가는 복수방식은 시청자들이 특히 열광하는 지점이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난 시청자들은 '더 글로리'가 애초 공개했던 포스터들이 복수의 복선이었다는 걸 알고는 소름끼쳐 한다. 즉 '조롱하고 망가뜨리던 그 손', '남의 불행에 크게 웃던 그 입', '비릿하던 그 눈', '그 모든 순간에 기뻐하던 너의 영혼', '남의 고통에 앞장서던 그 말'로 각각의 포스터에 가해자들을 세워놓은 포스터는 이들이 했던 그대로 되돌려 받을 것이라는 암시였다.

◆'더 글로리'가 꺼내놓은 숨겨진 폭력의 시스템

"가해자들을 지옥 끝까지 끌고 갈 돈이 저에게는 있다." '더 글로리' 파트2 제작발표회에서 김은숙 작가는 대놓고 '돈' 이야기를 꺼냈다. 어째서 학교폭력 같은 사안에 대해 '돈' 이야기를 굳이 꺼내놓은 걸까. 그건 우리 사회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에 놓여 있어서다. "이 세상의 동은이들에겐 돈 있는 부모와 같은 그런 가정환경이 없을 거다. 이것이 그런 분들을 응원해보고 싶었다." 김은숙 작가가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였다.

즉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같은 이들이 그토록 큰 사회적 파장을 만들면서도 계속 벌어지는 이유가 가진 자들은 폭력 같은 죄를 지어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부조리한 시스템 때문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건 학교폭력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전면에 학교폭력을 내세우고 있지만, 문동은을 돕는 조력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폭력들 역시 이 엇나간 시스템 속에서 탄생한다는 걸 보여준다. 드라마는 심각한 가정폭력을 당해온 피해자 강현남(염혜란)이나, 아버지를 살해하고 교도소에 간 살인마에 의해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 주여정(이도현) 같은 인물이 문동은과 연대해 복수를 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거기에는 피해자가 오히려 더 힘들고, 가해자들은 버젓이 살아가는 동일하게 엇나간 폭력의 시스템이 어른거린다.

그래서 이들의 연대는 이러한 시스템과 맞서는 힘으로 그려진다. 저마다 과거에 겪은 아픈 경험들과 그래서 결코 지워지지 않은 상처들을 가진 이들은 바로 그 공감대 위에 연대한다. 김은숙 작가의 응원은 그래서 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도 여운을 남긴다. 파트1 공개 후 파트2가 나오는 그 기간까지 참 많은 학교폭력 관련 이슈들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터져 나왔던 건 그래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더 글로리'는 분명 그간 사이다 복수가 쉽게 마비시켜버렸던 우리 사회의 폭력 시스템에 대한 인식과 피해자들이 겪는 상처에 대한 감수성을 벼려놓았다. 문동은의 온 몸에 난 화상자국을 우리의 뇌리 속에 선연하게 새겨놓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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