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 5시가 되면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소재 남영물류산업(이하 남영) 대표이사실의 불이 켜진다. 지독한 '얼리 버드' 남후식 대표가 연구를 시작하는 순간이다. 자신 명의의 특허 6개가 탄생하는 등 기술 개발이 이루어졌고, 오늘의 남영을 만든 산실이다. 남 대표는 "교육과 기술 투자만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해야 기업이 살아남는다"고 역설했다. 남영은 물류보관 설비 분야의 절대 강자다. 연구·교육뿐 아니라 고객 가치 창출을 목표로 안정적 재무구조와 투명경영을 무기 삼아 '100년 기업, 1천억 매출'의 길을 향해 묵묵히 가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확인한 경영혁신형 중소기업이기도 하다. 남 대표의 "결국 사람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는 신념에서는 상대를 대하는 진실한 태도와 신뢰의 중요성을 엿보게 했다. 고향 후배들을 향해선 "공부 못해도 된다"고 단언했다. 당부는 "자신의 소질을 찾아 최고가 되라"는 말로 이어졌다.
-남영물류산업에 대해 소개해 달라.
▶시장 동향 예측이 어려워지는 등의 이유로 배송과 물류 계획 담당자의 딜레마가 깊어지고 있다. 재고를 줄여 짧은 리드타임에, 적기에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공급하려면 고도화된 판매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는 상품이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고객과 빨리 만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크게 보면 물류보관설비, 자동창고, 물류설비 컨설팅을 한다. 롯데, 쿠팡, 제일모직 등 10대 대기업이 주요 거래처다.
-남영만의 특장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의류회사가 3천개가 넘는다. 한국 의류 물류센터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고객의 수많은 지원과 격려, 질책을 가슴에 깊이 담아 신기술과 특허로 적극 무장한 결과라고 믿는다. 고객 가치와 만족을 높이기 위해 한 눈 팔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겠다. 2세 경영의 첫발을 뗐고, 나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기술 지원을 하고 있다.
-사업에 뛰어든 동기는?
▶고교 졸업 뒤 서울에 올라와 신풍공작이라는 데서 일했다. 기술만은 대한민국 최고가 되자, 직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존재가 되자고 마음먹었다. 기술을 살려 무언가를 해야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목수로 중동(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일했다. 귀국한 뒤 비디오 가게를 냈는 데 3개 구(區)가 영업권에 들어올 만큼 성공을 거뒀다. 몇 년이 지나 비디오 쪽에 더 있다가는 망할 것 같기에 1989년 남영물류산업의 모태인 남영공사를 만들어 인테리어와 행거 제작 사업을 시작했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

-경영 철학은?
▶끊임없는 교육 투자와 기술 투자가 이루어져야 애써 만들어 놓은 기업이 100년을 넘기지 않겠나. 내가 사라지더라도 교육·기술 투자가 있어야 멀리 오래간다. 3년 가는 기술이 없다. 그렇다고 개발이라는 게 너무 앞서가도 안 된다. 경쟁업체 보다 한 발만 빠르게 가자는 게 신조다. 또 남의 쓴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특히 고객이 문제를 제기하면 손해가 나더라도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제품을 다시 만들어 납품해 왔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인정을 하더라.
최고를 지향해 온 남 대표는 연구·개발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최고의 행거를 만들기 위해 15년 넘게 매달렸고 끝내 1인자 자리에 올랐다. 밥만 먹고 행거 쪽에만 투자를 했다는 게 남 대표의 회고다. 업계 최초로 ISO 9001 품질경영시스템을 인증받아 품질을 확보하고, 고객이 안심할 수 있는 업무 체계를 구축했다. 또 의류업계 처음으로 복층 보관 행거랙 구조와 층간자동이송장치, 투웨이 전환기구에 대한 특허권을 취득했다. H빔 공사면허 기술 개발 과정에서는 특허를 6개 따냈다.
특별한 영업 전략도 성장의 한 노하우였다. 울진 출신으로 김일성 사망을 족집게 예언한 육관도사 손석우 씨의 풍수지리를 영업에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시절 공간 배치 등을 조언해 고객의 호평을 받았고, 영업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중장기적인 꿈은?
▶사실은 여건이 주어진다면 시행사업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시행이라는 게 건물을 짓든지 해서 수익을 내는 건 데 현재 나라 전체가 불경기로 허덕이는 상황이니 타이밍을 보고 있다. 사업을 하다 보니 업종에 따라 매출이 수천만 원, 수억 원, 수십억 원, 수백 원으로 갈린다. 투자를 안 하면 '구멍가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인생관이 있다면?
▶결국 사람이다. 사람 속에 성공과 실패가 있고, 슬픔과 기쁨이 있다.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유교에서도 예를 다해 인간을 대하라고 했다.
-사회봉사에 적극적인데.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배가 너무 고팠다. 빵 하나 사들고 남산에 오르면 멀리 수많은 집이 보였다. 내 집 한 칸 없다는 마음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최고가 돼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고 부자가 돼 나 혼자 잘 먹고살자고 노력해 온 건 아니다.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구현해야 한다고 믿는다. 고향인 경북 영덕군에 발전기금을 낸다거나 노인경로잔치를 하는 것도 그래서다.
-성균관 유도회 활동을 들려 달라?
▶지난해 8월 지인의 소개로 들어가 부회장을 맡고 있다. 거기에서 유교의 뜻을 받들어 교육을 받고 있고, 내가 행(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우치고 있다. 우리가 왜 역사 공부를 하나. 과거를 거울삼아 앞날을 내다보려고 하는 것 아니겠나. 잘 모르는 부분은 조금씩 조금씩 깨쳐가는 중이다.
-후배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준다면.
▶박정희 대통령이 제정한 '국민교육헌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라는. 공부 못해도 된다. 사회에 나와서 한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인정받고, 자기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공부는 암기다. 암기가 안 돼 너무 공부가 하기 싫은 데 굳이 그것을 하려고 하면 힘만 든다. 타고난 소질을 개발해서 내 것으로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

◆남후식 대표 누구
소년 후식은 눈썰미와 손재주가 남달랐다. 남 대표는 "공부 못했다"라며 웃었지만 어려서 그림을 잘 그렸고, 정리에 소질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미화부장을 했는데 늘 학교에서 1등이었다고 한다. 그의 손을 거치면 모든 것이 반짝 반짝했다.
한동안 대학도 못 나온 사람이 무슨 캐드 작업을 하느냐는 빈정거림을 감내해야 했다. 캐드(자동설계)는 하드웨어의 각 설계 공정에서 수동 작업을 컴퓨터에 대행시키는 기술 또는 설계 행위로 고난도 실력이 요구된다. 남 대표는 소질에 각고의 노력을 더해 전공자를 뛰어넘는 능력을 갖췄다.
연구개발에 다 걸기 하던 때 자녀 교육은 공장에서 놀게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 경험이 토대가 돼 큰 아들 희대 씨는 5년 전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남영물류산업에서 일하고 있다. 손자들도 회사를 둘러보게 하며 경험을 쌓아준다. 경험이 책 보다 중요한 교육이라는 믿음에서다. 온 가족이 고향을 찾는 일이 잦고, 제사 때는 반드시 의관을 정제할 만큼 유교 정신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고향 사랑과 모교 사랑이 각별하다. 회원 12만 명인 재경 영덕군향우회를 이끌고 있다. 오는 5월 14일 서울 여의도에서 대규모 체육대회를 연다. 또 영해고 총동창회장을 지내며 봉사했다. 고려대 생명환경과학대학원, 순천향대 건강과학대학원 최고위 과정을 수료했고, 대통령 감사장 수상과 국토교통부 장관 표창, '2022 대한민국 글로벌브랜드 대상'(경영) 등을 수상했다. 거래업체 및 협력업체로부터 받은 감사장이 150개를 넘길 정도로 상생의 가치 실현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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