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세사기는 '경제적 살인'…솜방망이 처벌에 또 우는 피해자들

최근 5년 대구지법 전세사기 판결 분석 결과 수십억원 피해에도 징역 10년 미만
정부 특졍경제범죄법 개정 추진, 5억원 이상 피해시 가중처벌 용이하게
예외 규정 두는 데 대한 부담도… 22일 법안소위서 반대 의견 나와 계류

18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경인국철(서울지하철 1호선) 주안역 광장에서
18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경인국철(서울지하철 1호선) 주안역 광장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자가 전국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양형기준 강화나 법률 개정 같은 후속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인다.

매일신문이 2018년 5월 이후 최근 5년 간 대구지방법원의 전세사기 사건 판결을 분석한 결과 전세계약 당사자를 속여 임대보증금을 가로챈 사기사건은 10건이 확인됐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무리한 투자로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집주인이 대출금이나 선순위 보증금이 낮은 것처럼 속여 세입자와 계약한 사례가 6건으로 가장 많았다.

2018년 지역사회를 떠들썩 하게 한 대구 13채 깡통주택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 피고인 A(48)씨는 2012년부터 시세차액을 기대하며 소액의 자기자금만으로 대출금, 임차보증금으로 매수대금을 조달해 주택 13채를 확보했다.

A씨는 불어난 채무를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세입자 80명은 보증금 총액 68억원 중 36억원을 날렸다. A씨는 지난해 8월 항소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 받고 같은해 11월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됐다.

비슷한 방식으로 갭투자를 하다 14명의 세입자에게 13억원의 피해를 입힌 B씨는 2020년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4명에게서 1억7천만원을 가로챈 D씨는 징역 1년 6월, 2명에게서 1억2천여만원을 가로챈 C씨는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회사 부채가 너무 많아져 공공임대주택의 전세임대금도 못 빼줄 상황에서 임차인 263명에게서 분양전환대금 명목으로 73억원을 가로챈 '달성군 공공임대주택 사건'도 같은 유형이다. 이 사건 주범 F씨는 지난 11일 1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 받았고, 공범 2명은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

피해자들은 수십억원대 피해에도 징역 5~9년에 그치는 처벌 수위에 분통을 터뜨린다. 사기는 사실상 '경제적 살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히는 데 비해 처벌수준은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공인중개사가 전세사기 정황을 알고도 계약을 유도한 경우에도 처벌은 약했다. 선순위 보증금을 속여 계약을 유도한 사례 6건 중 2건은 공인중개사까지 사실상 가담해 세입자를 안심시키고 계약을 유도했는데, 이들에 대한 처벌은 수백만원의 벌금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유예에 그쳤다.

법조계에서는 최근 전세사기 사건이 화두로 떠오른 만큼 중형을 내리는 판례가 쌓이면 전반적인 처벌수위가 높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판사 역시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만큼 관련 법률부터 현실에 맞게 정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우선 전세사기 범죄자들을 가중처벌 할 수 있게 하는 특 특정경제범죄법(특경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특경법에 의하면 범죄자가 범죄행위로 얻은 재산상 이익이 5억원 이상이면 가중 처벌할 수 있는데 이 요건이 엄격해 다수의 피해자들이 제각기 보증금 피해를 입은 경우 가중처벌 대상이 될 수 없어서다.

개정안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22일 법사위 제1법안소위에서 법원행정처는 예외 사안으로 인한 원칙 훼손 및 추후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이 우려된다며 강한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의원들도 이런 우려에 공감을 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는 특경법 개정안을 계류시키고 추후 재논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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