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심서 보이스피싱 송금책, 2심서 징역형 집행유예 받은 이유는?

'부동산 관련 업무'로 취직해 일당 15~35만원 지급 받아
6명에게서 1억1천여만원 받아 조직에 송금
법원 "최소한 불법행위 연루가능성은 인식했을 것"

대구지법·대구고법 현판
대구지법·대구고법 현판

법원이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지시에 따라 현금 전달책 역할을 한 40대 주부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1심에서는 A씨가 범죄에 가담한다는 사실을 잘 모른 채 범행에 가담한 것이라고 판단했으나, 2심 판단은 달랐다.

대구지법 3-3형사부(이은정 부장판사)는 사기방조 혐의로 기소된 A(45)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고 26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21년 6월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지시에 따라 현금 받아 전달해주면 15~35만원 일당 주겠다는 연락을 받고 범행에 가담했다. A씨는 같은달 23일 경주에서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서 1천만원을 전달 받아 여러 사람들의 계좌로 무통장 입금해주는 등 7회에 걸쳐 1억1천200만원을 송금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법원은 피고인이 보이스피싱 범행 구조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부동산 관련 업무'라는 말에 속아갔다고 판단했다. 남편과 함께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40대 주부이고, 피해자들을 만나러 갈 때 자차를 이용하는 등 자신의 행적을 감추려 노력하지도 않은 점 등이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됐다. 추후 피해자들과 합의에 나서 피해금액의 최소 30% 이상씩을 지급하고 6명 중 5명과 합의한 점도 A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보이스피싱 범행의 구체적 양상은 몰랐다 할 지라도 자신이 송금한 돈이 사기 피해자들의 돈이라는 걸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할 수 있었다고 봤다. 거액의 현금 수거 업무를 맡기면서 제대로 된 신원확인 수단을 거치지 않고 자신의 채용이 결정됐고, 스스로도 회사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취직하기로 마음 먹은 것 역시 대단히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의 행위가 불법행위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음에도 일당을 받기 위해 범행을 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초범이고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한 점, 범행으로 직접 취득한 이익이 크지 않은 점 등을 감안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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