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23년 한 해에 두 할아버지를 보내드렸다. 석전 할아버지는 파키슨 병으로, 부여 할아버지는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두 분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집안의 부고는 겪어보질 못했던 터라 나에게 '죽음'이란 한 번도 제대로 정의를 내려 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석전 할아버지는 경상남도 마산시 석전동에 터를 잡고 살고계셨다. 우리는 친가 및 외가의 모든 조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나름 편하게 구분하기 위해 친조부모님을 석전 할아버지, 석전 할머니라고 불렀다.
석전 할아버지는 지금은 없어진 일본의 반도체 회사를 다니시다가 퇴직하셨다. 엄마는 친구따라 회사를 입사하게 됐는데 당시 먼저 입사한 친구가 경비일을 하셨던 할아버지께 입사시 필요한 서류를 물어보았다고 한다. 이에 꼼꼼한 성격의 할아버지는 잘 알려주셨고 그 덕분에 입사를 할 수 있었다. 엄마는 회사의 복지 동호회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는 배드민턴, 탁구 등산, 음악반 등 12가지 취미활동을 제공하는 '물레방아회'였다. 거기서 음악반 선생님을 만나 연애 후 결혼을 하게 되었고 지금의 우리 3남매가 태어난 것이다.
명절이면 할아버지 집에는 4남매가 모인다. 안방과 거실문은 활짝 열리고 어른들은 안방에, 우리 사촌들은 거실에 소파며 바닥이며 3층 계단까지 앉아 있었다. 절을 한번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른들이 먼저 인사한 후 우리 손주들도 집안에 따라 나눠서 인사를 했다. 그렇게 절을 하는 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많지 않은 용돈과 함께 경상도 할아버지의 어색한 덕담을 해주셨다. 용돈은 5천원에서 만원 정도였다.
유독 꼼꼼하고 깔끔한 성격으로 머리카락 한 올 흘리는 것도 꾸중을 들어야했다. 그러다 이내 나갈 즈음에 현관문에는 당신께서 반짝반짝 닦아놓으신 신발이 가지런하게 놓여져 있었다. 반짝반짝하게 예쁘고 좋은 길만 가라는 할아버지의 마음 아니였을까?

창원에서 부여 할아버지를 뵙기 위해서는 큰 마음 먹고 가야하는 대장정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KTX가 없어 무궁화호나 새마을호를 타고 갔어야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부여까지는 노선자체가 없어 대전에서부터는 시외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탔어야 했다. 그렇게 서둘러 이동을 해서 간 부여는 6시간이 걸려서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8남매 중 다섯째이지만 귀한 첫째 딸과 그 손주들이라 늘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식사를 챙겨주신 외조부모님이셨다.
외할아버지는 청각장애가 있어 말을 못하셨다. 원래는 말도 잘하시고 똑똑하셨고 눈썰미도 좋아 일도 잘하셨다고 한다. 후천적으로 생기신 장애다 보니 수어를 배우지 못하셨고 늘 고요함 속에 사셨다. 반갑게 맞이는 해주시지만 외할아버지의 목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당신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지 눈짓으로, 손짓으로 우리는 뉘앙스를 읽을 수 있었고 넉넉지 않은 살림에 자식들·손주들 퍼주는 재미로 당신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복작복작한 명절에도 절하는 시간이 끝나면 늘 병풍처럼 뒤에서만 바라보셨고 우리 더 먹이려고 가래떡을 작두로 썰고 계실 뿐이었다.
석전 할아버지는 90세, 부여 할아버지는 93세로 장수하셨다. 시간이 흘러도 우리네 조부모님들은 돌아가시지 않고 영영 함께 살 줄 알았다. 이렇게 '죽음'이라는 단어가 '영영 못 만남'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부여까지는 이제 KTX도 있고 차도 있어 더 빨리 달려 갈 수 있는데, 석전의 할아버지 신발도 이젠 우리가 닦아드릴 차례인데 미루기만 하다가 이젠 영영 못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이제는 가슴 속에서만 품고 그리워해야하는 존재가 돼 버린 두 할아버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추억 속에서 살아계심을 믿어요. 많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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