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웅 나폴레옹의 로맨티스트적 면모…리뷰 ‘나폴레옹’

격정적이고 애잔한 조제프와의 러브스토리
나폴레옹의 인간적 면모 강조하는 동시에
군중신·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은 관객 압도

영화 '나폴레옹'의 한 장면.
영화 '나폴레옹'의 한 장면.

"프랑스, 군대, 조제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그가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프랑스와 그의 갑옷과도 같았던 군대, 그리고 평생 사랑한 연인, 조제핀이다.

거장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나폴레옹'은 그의 세 마디 유언을 158분에 걸쳐 풀어놓은 영화다. 프랑스혁명과 왕당파의 반란 등 18세기말 프랑스의 역사의 지도 위에 그의 흥망을 가른 군대의 대전투를 펼쳐 놓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조제판과의 변덕스러운 애증의 로맨스를 드레싱 쳐 놓았다.

포대와 기마대, 칼과 총이 부딪치는 전쟁 장면은 '역시 리들리 스콧 답다' 말이 나올 정도로 대단히 스펙터클 하고, 조제프와의 러브스토리 또한 격정적이며 애잔하다.

영화는 혁명으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 처형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793년 왕당파의 반란이 일어나고, 항구도시 툴롱에는 영국군이 상륙한다. 24세의 포병 하급 지휘관이었던 나폴레옹(호아킨 피닉스)은 영국군 방어선의 약점을 파악하고 포대의 포격을 통해 전투에 승리하고 장군으로 진급한다.

사교 모임에서 운명의 여인 조제핀(바네사 커비)을 만난다. 그녀는 자식 둘을 키우는 미망인으로 나폴레옹 보다 6살이나 많았다. 긴 구애 끝에 나폴레옹은 조제핀과 결혼한다. 그러나 조제핀은 나폴레옹을 순수하게 사랑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중일 때는 다른 장교와 부적절한 관계를 벌이며 나폴레옹의 편지에 답장조차 하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고 급거 귀국하면서 나폴레옹은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영화 '나폴레옹'의 한 장면.
영화 '나폴레옹'의 한 장면.
영화 '나폴레옹'의 한 장면.
영화 '나폴레옹'의 한 장면.

'영웅인가, 전쟁광인가'라는 물음을 주는 나폴레옹이지만, 영화는 '전쟁광인가, 로맨티스트인가'라며 나폴레옹의 사적이며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한다. 바람피운 아내에게 화급한 성애로 자신을 달래거나, 전투의 와중에도 러브레터를 쓰고, 손님이 있어도 음식을 던지며 아이처럼 싸우는 등 '남자 나폴레옹'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조제핀과 사이에 자식을 얻지 못해 분개하는 모습에서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애절함이 그려지기도 한다.

초반부에는 공화정과 왕정복고에 이르는 프랑스의 변화무쌍한 정치 역사도 보여준다. 1804년 황제 즉위식은 신권을 농락하는 나폴레옹의 전횡을 그대로 그렸다.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으로 가서 교황이 관을 씌어주던 관행에서 벗어나 교황을 파리 노트르담 성당으로 데려와 진행했는데, 교황을 불러 놓고는 자신이 직접 관을 머리에 써버린다. 영화에서는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가 이 장면을 그림 그리는 모습도 언뜻 보여준다.

자크루이 다비드는 우리가 많이 보았던 '알프스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을 그린 화가다.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앞발을 치켜든 말에 탄 나폴레옹의 모습을 영웅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실제는 당나귀였는데, 말로 바꿀 정도로 그는 나폴레옹의 총애를 받는 전속 화가였다.

나폴레옹의 미시적 순간을 섬세하게 터치하면서도 군중신과 전투 장면은 거대한 세트를 사용해 볼거리 가득하게 담아냈다. 대포의 포격 음향은 극장 안 의자가 흔들릴 정도로 강력했고, 넓은 들판에서 벌어지는 전투 장면은 와이드 화면을 꽉 채우며 관객을 압도한다.

특히 1805년 12월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연합군과 격돌한 아우스터리츠 전투는 압권이다. 눈 덮인 얼음 호수로 연합군을 몰아넣고, 포격으로 적들을 수장시키는데, 사운드와 비주얼을 모두 만족시켜 준다.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온 1815년 워털루 전투는 당시 전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투 개시 전에 내린 폭우, 건강이 좋지 않았던 나폴레옹의 어두운 표정과 함께 방진(方陣)을 세운 영국군의 틈을 찾으려는 프랑스 기마병의 필사적인 노력 등이 그대로 재현했다. 나폴레옹은 결국 이 전투에서 패배하고, 아프리카의 절해고도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삶을 끝낸다.

영화 '나폴레옹'의 한 장면.
영화 '나폴레옹'의 한 장면.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나폴레옹 1세 황제와 닮지 않았지만, 뛰어난 표정 연기로 그의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고 있다. 눈빛 하나로 수십만 대군을 지휘하는 늠름한 영웅적 면모에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는 목마른 한 남자의 내면도 잘 담아낸다. 호아킨 피닉스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2000)에서 코모두스 황제를 연기한 바 있다. 조제핀 역의 바네사 커비 또한 황제를 쥐락펴락하는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차가운 표정으로 연기해 눈길을 끈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나폴레옹 키. 한때 155cm의 짤딸막한 배 나온 남자로 알려졌는데, 실제는 168cm 정도로 당시 프랑스 남성의 평균 키 정도였다고 한다. 호아킨 피닉스의 키는 173cm. 영화는 호아킨 피닉스가 최대한 키 작은 남자로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쓴다.

'나폴레옹'은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돌비 사운드나 아이맥스관에서 보면 더 낫겠지만, 비싼 입장료가 발목을 잡을 수 있겠다. 158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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