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지진에 무너진 집 고치려다… "죽기 전 한 번만 제대로 걷고 싶다"

아내와 다툼 끝에 이혼, 한때 해외 진출하며 번창했던 사업도 망해
내쫓기듯 살게 된 낡은 집… 포항 지진에 벽 한 면 다 뚫려
'무허가 건물'이라 지원 못 받고 혼자 수리하려다 허리 크게 다쳐

지난 8일 오전 김칠만(78) 씨가 자신의 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햇빛을 쬐고 있다. 윤정훈 기자
지난 8일 오전 김칠만(78) 씨가 자신의 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햇빛을 쬐고 있다. 윤정훈 기자

"지금 승객들도 많은데…. 그냥 택시 타시지 그래요."

지난달 대구에 있는 병원을 찾았을 때 버스 기사가 건넨 말이 계속 맴돌았다. 보행 보조기를 끌고 낑낑대며 버스를 타려 하는 자신의 모습과,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허락받지 못한 존재를 보는 듯한 시선들. 그들이 보기에 자신은 '무허가 인간'이었는지 모른다. 무허가 주택의 낡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서 든 슬픈 생각이었다.

◆아내와 이혼, 사업 실패 겹쳐 불행의 수렁으로

김칠만(78) 씨는 5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농사를 짓다가 쌀 가게, 양복점 등을 이어가며 묵묵히 5남매를 길렀다. 덩치가 좋았던 칠만 씨는 고교생 때 씨름부와 유도부에 들어갔다. 전국대회서 준우승도 했을 정도로 실력도 괜찮았다.

주변 어른들은 체육학과로 진학하길 권유했지만, 공부가 싫어 고교만 졸업하고 바로 입대했다. 운동에 대한 흥미도, 철도 없던 시절이었다.

전역 후 20대엔 회사에서 근무했지만, 자신이 월급받으며 일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점만 새삼 깨달았다. 퇴사하고 30대 중반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고철을 수집해서 파는 고철상이었다.

호탕한 성격에 장수 수완도 좋았던 칠만 씨. 고철 절단 작업자, 하역노동자, 비서 등 직원 열댓 명을 고용할 정도로 사업은 잘나갔다. 국내에만 그치지 않고 칠만 씨는 중고 오토바이를 수집해 중국, 베트남 등 해외로 판매하는 일도 했다.

일을 하며 중국에서 중국동포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시장에서 작은 식당을 했다.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면모에 눈길이 갔다. 아내 역시 칠만 씨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사업 차 중국을 오갈 일이 많았던 칠만 씨는 아내와 자주 만나며 친분을 쌓았고, 30대 후반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에 이르렀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영업 활동이 중요한 사업가답게 술자리가 많았는데, 아내는 이를 이해하지 못해 자주 다투곤 했다. 한번 크게 싸우고 난 뒤 두 사람은 이혼을 결심했다. 13년 간의 결혼생활이 한순간에 끝났다.

끝난 건 결혼 생활만이 아니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을 때부터 사업은 기울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돈을 빌리며 아등바등 버텨봤지만, 이미 가라앉기 시작한 배의 침몰을 막을 순 없었다. 지난 2010년 칠만 씨 삶의 전성기를 이끌어줬던 사업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다 타버린 청춘은 5천만원의 빚으로 곁에 남았다.

◆포항 지진 겪고 집 수리하다가 크게 다쳐

전 아내와 함께 살던 집은 압류됐다.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신용카드들도 줄줄이 정지됐다. 칠만 씨는 순식간에 채무불이행자가 됐다. 벼랑 끝에 내몰린 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이었다.

원래 집 주인이었던 5촌 당숙은 추운 겨울날, 보일러도 고장난 이 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가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이후 빈집으로 남아있던 이 곳에 갈 곳없던 칠만 씨가 들어왔다.

성인 여성도 머리를 숙이고 문지방을 넘어야 할 정도로 천장은 낮고, 침대 하나 들어오면 다른 가구는 넣기 힘들 정도로 방은 비좁다. 지어진 지 100년 이상으로 보이는 옛집답게 부엌도, 화장실도 재래식이다.

께름칙하고, 다 쓰러져가는 낡은 집이었지만 칠만 씨에겐 하나 뿐인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이 곳마저 버텨주지 못했다.

칠만 씨는 이웃집에서 커피를 마시던 그날, 갑자기 심한 진동과 함께 밥상 위에 있던 커피잔이 넘어졌다. 헐레벌떡 뛰어나와 집으로 달려갔다. 담이 무너지면서 집을 덮쳐 벽 한 면 전체가 뻥 뚫려 있었다. 집 곳곳에는 금도 가 있었다.

2017년 11월 15일 지진이 포항을 덮친 날이었다. 갈 곳도 없고, 벽을 고칠 엄두도 안 났던 칠만 씨는 벽을 방치한 채 그대로 생활했다. 그러나 겨울이 다가올수록 뚫린 벽면으로 들어오는 찬 바람은 더욱 매서워졌다.

마침 포항시가 지진 피해 가구를 수리해준다기에 기쁜 마음으로 신청했다. 하지만 칠만 씨의 집이 무허가 건물이라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견디다못한 결국 칠만 씨는 그해 12월 직접 집 수리에 나섰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일까. 일흔 살이 넘은 고령에 40㎏짜리 시멘트 포대를 들어 올리다가 허리를 크게 다쳤다.

이 사고로 척추관협착증이 남은 칠만 씨는 허리 수술 2번, 무릎 수술 1번 등 모두 3번의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 후에도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2020년 12월 경증장애등급을 받은 칠만 씨는 보행보조기 없이는 걷기 힘는 몸이 됐다.

마당 구석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까지 가는 것조차 그에겐 고된 일이다. 한때 운동선수까지 뛰었던 칠만 씨가 느끼는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걷고 싶어서, 한 번 더 척추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최근 대구에 있는 병원에 가서 X-레이 촬영을 마쳤고, 내년 1월 8일쯤 판독 결과를 받을 수 있다. 예약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다고 의사는 설명했다.

봄이 되면 수술을 받고,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을까. 그전까지 이 추운 겨울을 또 어떻게 버틸지…. 당숙의 말로가 떠올라 섬뜩해진 칠만 씨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햇빛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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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성치 않은 몸으로 홀로 정신장애 아들돌보는 신춘원 씨에게 2,656만원 전달

불행한 어린 시절 보내고 지금은 성치 않은 몸으로 성인이 된 정신장애 아들을 홀로 돌보는 신춘원 씨(매일신문 11월 28일자 10면)에게 2천656만2천200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법무사 김태원 20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박종천 10만원 ▷권규돈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배영철 2만원 ▷신종욱 2만원 ▷최정원 1만5천원 ▷최지원 1만5천원 ▷도승찬 6천원 ▷김주현 5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통사고로 7차례 수술받은 불편한 몸으로 아픈 부모까지 돌보는 한경희 씨에게 2,674만원 성금

6중 추돌 사고로 7차례 대수술 받으며 20대 청춘 다 보내고 아르바이트 전전하며 병든 부모님 홀로 돌보는 한경희 씨(매일신문 12월 5일자 10면)에게 45개 단체, 207명의 독자가 2천674만228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주)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박찬종)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주)중앙환경기술(박인현) 3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풍천관(최정우)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달서구보건소(이완회)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이재만 대구지방세무사회 회장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5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김기욱사무소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연합광고 (김천수) 5만원 ▷위브디자인(김영민)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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