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24 신춘문예 당선작] 점이 사라졌다!

정유나

왜! 왜 하필 이게 내 다리에 붙어 있을까?

정말이지 너무 싫다. 지름이 자그마치 6cm나 되는 동그랗고 거무스름한 것. 내 오른쪽 종아리에 딱 박혀 십 년을 함께 지내온 이 반점 말이다. 내 키가 조금씩 크는 것처럼 점도 같이 자라는 것 같다. 어른이 되면 얼마나 커져 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엄마, 다시 병원 가 보면 안 돼? 나 점 좀 빼 줘. 응? 엄마아아."

"전에 의사 선생님 말씀 들었잖아. 시술해도 재발할 수 있다고."

"다시 안 생길 수도 있잖아. 방학이라 지금 빼기 좋단 말이야."

그때, 언니가 끼어들었다.

"야, 김정미. 점이 보이면 어떠냐? 아무도 너 신경 안 써. 그냥 치마 입고, 반바지도 입어."

순간 눈물이 찔끔 나왔다.

"언니가 뭘 알아!"

점 때문에 점미라고 놀림당하고, 더운 여름에도 스타킹을 신는 고통을 언니가 알아? 예쁜 원피스를 골라 입어도 치마 밑에 점이 보이면 바지를 집는 내 마음을 아느냐고. 밉상 중의 왕밉상, 언니 다리에도 똑같이 점이 있으면 좋겠다! 콱, 박혀있어 봐야 내 맘을 알 거다.

"으르르, 멍! 멍! 멍!"

쫑이가 언니를 향해 으르렁 짖었다. 언니가 움찔하고 쫑이를 째려봤다. 잘했다 쫑쫑! 내 마음을 아는 사람, 아니 동물은 쫑이밖에 없다. 쫑이는 다리도 짧고, 얼굴도 못생긴 점박이지만, 나름대로 품종 있는 애완견 불테리어다.

일러스트 : 손노리 작가
일러스트 : 손노리 작가

엄마가 한숨을 쉬고 내 앞으로 오천 원을 내밀었다.

"그만하고 너는 두부 좀 사 와. 은미는 학원 갈 준비나 하고."

나는 입을 삐죽 내민 채 돈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박하 맛 왕사탕부터 집었다. 두 모 포장된 두부와 계산하니 돈이 딱 맞았다. 봉지를 흔들며 지나왔던 공원으로 들어서는데 웬 천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공갈 도사가 왔다! 뭐든 내가 다 없애줄게!'

천막에 붙은 현수막에 '뭐든 내가 다 없애줄게!' 글씨가 날 잡아당겼다. 천막에 다가가 입구를 살짝 걷었다. 흰 수염과 흰 머리칼을 늘어트린 할아버지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눈이 마주치자, 할아버지가 헛기침하고 말했다.

"크흠, 너 고민 있구나? 시커멓고 동그란 게 보이네."

할아버지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네, 제 종아리에 점이 있어요."

"잘 왔네. 내가 고거 빼는 법 알려 줄까나?"

"뺄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다짜고짜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할아버지는 헛기침만 하고 뜸을 들였다. 나는 애간장이 탔다.

"제발 그 방법 좀 알려 주세요!"

"크흐흠,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어."

할아버지가 손바닥을 쓱 내밀었다. 쭈글쭈글하고 때가 껴서 새카맸다. 마트에서 두부 사고 남은 돈이 없었다.

"이것밖에 없는데요."

봉지를 들어 보이자, 할아버지가 단박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면 잘 가거라."

"하, 할아버지. 두부라도 한 모 드릴까요? 아, 이거 드세요. 목 아플 때 좋아요."

할아버지가 두부는 제쳐두고 박하 맛 왕사탕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오물오물, 내 소중한 사탕은 할아버지의 양 볼을 왔다 갔다 했다.

"원래 이런 거로 알려 주진 않아. 하지만 덕분에 목이 좀 편해졌어. 어린이 특별 행사라고 해 두지."

할아버지는 쪽쪽 사탕 녹이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러고는 부스럭 소리를 내며 큰 주머니에서 손톱만 한 작은 물건을 꺼냈다.

"이 연고를 네 점에다 바르고 '일에 하나요, 둘에 두나고, 셋에 세나지.'라고 외는 거야. 그러면 점이 쏙 떨어진단 말이지."

나는 할아버지가 잡고 있는 그 연고에 눈을 떼지 못했다. 튜브 물감처럼 생겼는데 한두 번 쓸 양인지 아주 작았다. 할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 다음, 떨어진 점을 재빨리 물에 담가야 해."

"왜요?"

내 질문에 할아버지가 잠시 생각하는 듯 고개를 갸웃하다 소리쳤다.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해. 싫으면 말고!"

할아버지가 연고를 큰 주머니에 집어넣으려고 하자 얼른 그 손을 붙잡았다.

"싫긴요, 주세요, 그렇게 할게요, 그럴게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애원했다. 할아버지가 다시 연고를 내밀었다.

"어험! 양이 많지 않으니까 한 번에 잘해. 점을 잘 잡아야 할 것이야."

"네. 말씀대로 할게요."

한 번에 잘하자. 잘 잡자.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천막을 나왔다.

두부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배불리 먹고, 어느덧 잘 시간이 되었지만 내 눈은 말똥말똥했다. 곧 새근거리는 언니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불을 걷어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연고를 꺼내 점 위에 발랐다. 연고는 요구르트같이 끈적끈적하고 시큼한 냄새가 났다. 코를 막고 코맹맹이 소리로 중얼거렸다.

"일에 하나요, 둘에 두나고, 셋에 세나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점이 마법처럼 사라질 것 같았는데 그대로였다. 속은 건가 싶었는데 종아리가 간질간질했다. 이럴 수가!

종아리의 맨살 위로 점이 쓱 올라왔다. 마치 접착력이 떨어진 시커멓고 동그란 스티커 같았다. 점이 떨어졌다! 무려 십 년 동안 징글맞게 붙어 있던 시커먼 반점아, 이젠 안녕이다. 언니가 깰까 봐 소리 없는 만세를 외쳤다.

'어? 어디 갔지?'

점을 잡으려고 보니 방금까지 내 종아리 위에 있던 점이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잘 잡고 물에 빨리 담그라고 했는데 너무 기뻐서 깜빡하고 말았다. 나는 얼른 주변을 살폈다.

'저, 저게 뭐야?'

바닥을 스멀스멀 기어가는, 거무스름한 물체를 발견했다. 내 점이다! 한때 내 일부였던 것이 떨어져 움직이고 있다.

점은 내 손을 피해 빙판길에 미끄러지듯 방바닥 위를 휘젓고 다녔다. 점은 날렵했다. 점이 언니 침대 쪽으로 갔다. 점은 이불 위를 방황하다 비죽 나온 언니의 다리 위에서 멈췄다. 그러고는 언니 종아리에 붙어버렸다.

"맙소사. 안 돼."

새어 나오는 말을 겨우 막았다. 나는 오줌 마려운 쫑이처럼 침대 주위를 맴돌았다. 언니를 깨워야 하나? 깨워서 점이 붙었다고 하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하지만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점이 그런 건데….

그래. 점이 언니한테 가서 언니에게 점이 생긴 거다. 쌤통이다. 이제 언니 다리에 점이 생겼다. 내 마음도 몰라주던 언니에게 점이 생겼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뻥 뚫렸다.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으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게 느껴졌다.

아침 일찍 눈이 뜨였다. 일어나자마자 내 종아리 먼저 확인했다. 꿈이 아니었다. 기분이 좋았다. 콩나물국이 아삭아삭 맛있고, 콩밥도 꿀맛이다. 엄마는 내 점이 없어진 줄도 모르고 빨래를 너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엄마에게 반들반들한 내 종아리를 언제 보여줄지 고민했다.

"엄마아아아, 엄마!"

언니의 비명에 깜짝 놀라 엄마가 달려갔다. 나는 모르는 척, 못 들은 척하고 조용히 콩밥을 씹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내 다리에, 점! 점이 생겼어! 꼭 정미 점 같이 둥글고, 커!"

'정미 점'이란 말에 씹던 콩밥을 꿀꺽 삼켰다.

"어머나. 이게 뭐야, 점이 하루아침에 생기나? 그린 거 아니지?"

엄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내 점 아니, 언니 점을 문질렀다. 점은 움직이지도 지워지지도 않았다. 언니가 털썩 주저앉았다. 아예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내가 이딴 걸 왜 그리겠어. 이게 뭐야. 으아앙!"

쫑이가 아침밥을 먹다 말고 소란스러운 언니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사이 나는 조용히 학원 가방을 챙겨서 집을 빠져나왔다.

"정미야, 네 것이지?"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친구 미라였다. 미라가 분홍색 샤프를 건넸다.

"어제 학원에서 빨리 나갔지? 네 의자 밑에서 주웠어. 네가 아끼던 거잖아. 자."

언니가 선물로 준 샤프였다. 가슴이 따끔하고 찔렸다.

"어 맞아. 고마워."

학원 수업이 끝나자마자 어느 때보다 빨리 집에 도착했다.

"엄마, 언니는?"

오자마자 언니를 찾았다. 엄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밖에 못 나가겠다고 방에 처박혀 있어. 어휴, 그 점이 뭔지."

나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언니 눈이 벌게져서 눈병 난 환자 같았다. 언니가 콧물을 훌쩍이며 말했다.

"갑자기 점이 생기니까 겁 나. 밴드 세 개를 붙여도 보인다니까. 나 어떡해."

언니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쏟아졌다. 나는 깜짝 놀라 휴지를 건넸다.

"너도 싫었을 텐데. 내가 그것도 모르고. 미안해."

"이, 이제 괜찮아. 언니도 점이 떨어져야 할 텐데…."

언니에게 점이 생겨서 고소했다. 그런데 내 점 때문에 울고,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니 또 가슴이 따끔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종아리에 주먹만 한 점이 생기면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수술하든, 연고를 바르든, 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거다. 아, 그러고 보니 연고가 있다! 연고를 다 짜지 않았다. 분명 남아 있을 거다.

언니가 화장실 간 사이 침대 위, 휴지통 안, 방바닥 구석구석을 찾았다. 하지만 연고는 보이지 않았다. 어제 바르고 어디에 뒀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할아버지한테 가서 다시 연고를 받는 게 빠를 것 같았다.

"어디 갔지?"

분명히 공원에 있던 이 자리가 맞는데 천막도 공갈 할아버지도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침, 점심도 제대로 못 먹은 언니 때문에 우리는 평소보다 일찍 저녁을 먹었다.

엄마가 숟가락을 '탁' 놓으며 말했다.

"아빠가 내일 너희 데리고 큰 병원에 가보자고 했어. 시술이 힘들다고 해도 의사 선생님께 일단 빼보자고 할 거야. 둘 다 그만 찡그리고 밥 좀 먹어들."

그 말에 멍하게 있던 언니가 헤벌쭉했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언니 다리에 붙은 점은 절대 한 번 만에 빠지지 않을 거다. 그 연고만 있으면 되는데….

밥을 다 먹고 쫑이에게 새 물과 껌을 주러 다가갔다. 그때, 쫑이 엉덩이에 깔린 낯익은 그것이 보였다. 연고다! 쫑이를 밀치고 연고를 집었다. 쫑이가 물고 놀았는지 연고가 샜지만, 다행히 한 번 더 바를 양은 남아있다.

온종일 울던 언니는 지쳤는지 일찍 잠들었다. 나는 움푹한 그릇에다 물부터 떠 왔다. 언니 다리에 붙은 내 점을 보았다.

'이젠 정말 안녕이다.'

나는 연고를 잡고 끝에서부터 차근차근 남김없이 모아 짰다. 연고는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모습을 드러냈다. 연고를 점 위에 살살 바르고 말했다.

"일에 하나요, 둘에 두나고, 셋에 세나지."

점이 언니 다리 위로 쏙 올라왔다. 그때, '끼익' 소리를 내며 방문이 움직였다. 나는 깜짝 놀라 소리 지를 뻔했다.

쫑이였다! 문이 열려 있었는지 쫑이가 방문을 밀고서 안으로 들어왔다. 앗, 내가 꾸물거리던 사이 점이 쫑이에게 갔다. 그리고 쫑이 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쫑이가 간지러운지 몸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리로 얼굴을 긁었다. 내가 손쓸 새 없이 점이 쫑이의 얼굴에서 멈춰버렸다.

엄마가 방문을 홱 열어젖혔다.

"일어나래도. 일찍 준비하고 병원 가야지."

언니가 일어나 먼저 씻으러 갔다. 쫑이가 들어와 내 뺨을 핥았다. 쫑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마음속으로 시간을 쟀다. 1초, 2초, 3초….

"엄마! 없어. 점이 없어졌어!"

"어머머, 정말 점이 없네? 어제 똑똑히 봤는데."

나는 기지개를 켜고 원피스 잠옷을 입은 채 거실로 나갔다.

"정미야. 나 점이 사라졌어. 내 다리 봐! 어? 너도 없어!"

언니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내 오른쪽 다리를 가리켰다.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없다. 정말 신기하다."

어색한 말투였는데 엄마와 언니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언니는 입이 찢어질 것처럼 좋아했다. 엄마가 우리 종아리를 번갈아 만지며 또다시 확인했다.

"허, 기가 막혀. 어쨌든 잘됐네. 병원 갈 필요 없겠어."

"멍! 멍! 멍!"

엄마가 쫑이를 안으며 말했다.

"그래 쫑아, 너도 누나들처럼 점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우리 쫑이는 점이 매력인데, 없으면 안 되지."

엄마는 쫑이 얼굴에 새로운 점이 생겼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하긴, 이렇게 보니 내 점이 아니라 원래 있던 쫑이 점 같다. 엄마 말대로 우리 쫑이는 점이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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