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48> 괴테- 슈베르트, 방랑자의 밤 노래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가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
가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

모든 산봉우리에는/ 안식이 깃들고/ 모든 우듬지에는/ 한 가닥 숨결조차 /느끼지지 않네./ 작은 새들은 숲에서 잠잠하네./ 기다려라, 머지않아/ 그대 또한 쉬리니.

방랑자는 낭만주의 예술의 중요한 모티프였다. 방랑자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등 괴테의 작품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슈베르트 또한 '방랑자', '방랑자의 밤노래', '방랑자 판타지',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 등 짧은 생애 동안 길 위의 방랑자를 모티프로 하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 냈다.

괴테는 1780년 31살에 튜링겐의 숲 키켈한의 산장 벽에 이 시를 새겼다. 33년 후 1813년 8월, 64세의 괴테는 다시 이 산장에 올라가 옛일을 회상하고 비바람에 희미해져 가던 시를 진하게 덧새겼다. 그리고 다시 20여 년 후 1831년, 82세의 괴테는 키켈한 산장에 올라 이 시를 읽고 눈물지은 후 다음 해 세상을 떠났다. 그러고 보면 이 시는 한 거장의 일생을 집약하고 있는 듯하다.

괴테는 울창한 숲속의 산장에 홀로 머물며 엄청난 대자연 속에 오롯이 둘러싸여 있는 자아에 대한 성찰을 한다. 시의 행간에는 오랜 방랑을 거친 이가 자아를 넘어 무한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담겨있다. 무한은 나와 세계를 초월하여 종교적이며 예술적으로 승화되는 숭고와 동경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이성과 논리의 세계가 아니라 직관과 상상력으로 가능한 세계이며 낭만주의 이념을 잘 드러낸다.

하지만 번역만으로 원작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독일어 발음이 주는 울림의 효과나 운율의 규칙성과 호흡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문제를 슈베르트는 만국 공통 언어인 음악으로 단숨에 해결한다. 슈베르트의 '방랑자의 밤 노래(1823)는 전주와 후주를 포함하여 14마디에 불과한 짧은 가곡이지만 존재의 벅찬 감정과 독일 정신의 내면성과 품격, 깊고 강한 생명력, 자아와 세계에 대한 철학적 인식까지 괴테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 이상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이 곡은 정신의 충만한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전체가 랑잠(Langsam 느리게)으로 이루어져 있다. p(피아노 여리게)로 시작하는 2마디 저음의 전주는 깊은 숲의 정경을 묘사한다. 11마디로 이루어진 노래는 고요한 대기와 우듬지의 술렁거림, 사색과 인식의 기쁨을 페르마타와 마지막 두 소절의 반복을 통해 절제된 호흡으로 표현한다. 후주는 pp(피아니시시모, 매우 여리게)로 화자의 고양된 심정을 재차 마무리한다. '방랑자의 밤 노래'는 슈베르트의 후반기 작품으로 전반기의 '방랑자'가 보여주었던 혼란과 방황을 극복하고 자아와 세계를 넘어선 무한과의 교감을 들려주는 절창이라 할 수 있다.

슈베르트의 삶이 그러했듯이 삶은 길 위에서 전개되고 길 위에서 완성된다. 존재는 집과 고향을 등져야 새로운 세계에 입문할 수 있다. 방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실 도피의 수단이었고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으며 패배한 자들의 암중모색이자 중심으로 귀환을 모색하는 자의 배회였다. 이들은 방랑을 통해 자아와 세계를 확장하고 인간의 본래적인 유한성에서 비롯하는 제한성과 결핍을 극복해 나가는 힘을 마련했다.

독일 문학 연구자들은 여전히 괴테를 슈베르트와 나란한 선상에 놓기를 거부하지만 실은 슈베르트의 음악이 가지는 섬세함과 예리함 때문에 괴테의 시가 다시 읽히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방랑자의 밤 노래'는 시가 음악이 되고 음악이 시가 된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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