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아무것도 할 수 없다…'기면증'으로 빼앗긴 미래와 일상

아버지 주식투자 실패로 가난 시달렸지만 독학으로 명문대 진학
아르바이트 병행하며 전액 장학금으로 졸업…노무사 자격증까지 취득
근무 시작하자 증상 본격화…생계비·치료비로 쌓인 빚만 8천만원 달해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면증으로 학업과 생계를 정상적으로 이어갈 수 없게 된 은아영(가명·29) 씨가 지난 16일 빌라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윤정훈 기자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면증으로 학업과 생계를 정상적으로 이어갈 수 없게 된 은아영(가명·29) 씨가 지난 16일 빌라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윤정훈 기자

"아영아, 요즘 뭐해? 오랜만에 한번 보자."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명랑하고, 입담이 좋았던 친구로 기억이 난다. 적당한 핑계를 대고 거절 메시지를 보냈다. '탈력 발작'. 이름도 낯선 그 질환이 찾아온 후로 은아영(가명·29) 씨는 사람을 계속 피하고 있다.

크게 웃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등 감정 표출을 하면 근육이 풀리는 증상이다. 고개나 발, 무릎이 꺾이고, 심하면 아예 쓰러지기도 한다. 재밌는 예능 방송을 보며 함께 웃을 수 없고, 누군가 슬픈 일을 당했을 때 함께 울어줄 수도 없다.

언제 잠들어버릴지 몰라 타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는 일 또한 할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젊은 아영 씨의 눈동자에 총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불안정한 삶 속에서도 명문대·노무사 시험 합격

아영 씨는 공무원 아버지와 장애아동 돌보미로 활동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네 살 아래 여동생도 있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처럼 들리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아영 씨는 고작 여섯 살 나이에 성범죄를 당했다. 당시 할머니는 치매 증상으로 가출이 잦았고, 어린 동생을 돌보던 어머니는 어린 아영 씨에게 할머니를 찾아오라고 했다. 어린 아이 혼자 돌아다니며 할머니를 찾다가 당한 일이었다.

아영 씨는 어머니에게 털어놓으려 했지만, 바빴던 어머니는 아영 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너무 어린 나이여서 그저 넘겼고, 사춘기가 된 후에야 무슨 일을 당했던 건지 깨달았다.

아영 씨가 9살 무렵엔 아버지가 주식 투자에 실패해 큰 빚을 졌다. 가세가 기울었고 빚을 갚느라 부모님은 오전 4시에 일어나 우유 배달에 나서곤 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아버지는 또 주식 투자에 손을 대 집을 잃고 1억원의 빚을 졌다.

전 재산을 잃었지만 아버지는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영 씨가 스무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또 주식 투자에 실패해 2억원에 달하는 빚을 안고 공직을 떠났다. 퇴직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터였다.

그 뒤로도 아버지는 주식 투자를 끊지 못했고, 빚은 3억원 가까이 늘어 결국 회생 절차를 밟는 상황까지 갔다. 지독한 빚의 굴레 속에서도 아영 씨는 혼자 힘으로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입학했다. 생활비 지원을 바랄 수 없어 카페, 식당, 학원 등에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고단한 나날이 이어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늘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며 전액 장학금을 받고 졸업했다. 대학생 시절 노무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아영 씨는 25살에 노무법인 공채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끝없는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이뤄낸 성취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복합 질환…막막해진 생계

본격적으로 노무법인에서 근무를 시작한 아영 씨. 새로운 삶을 향해 발을 내딛자 기면증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이상할 정도로 잠이 늘었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회사에 지각하는 날이 많아졌다.

어린 시절부터 꼼꼼하고 성실했던 아영 씨였지만, 어떤 서류를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하는지 잊어버리는 등 업무 실수도 늘어갔다. 27살에 찾아간 병원에선 ADHD,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치료는 쉽지 않았다. 아영 씨는 유전적으로 투약 치료가 어려운 체질을 갖고 있어 약을 먹을 수 없었다. 지각·업무 실수 등으로 직장에서 계속 지적을 받으면서 자존감이 떨어졌고, 우울증이 악화됐다.

한계를 느낀 아영 씨는 틈틈이 준비해 2020년 로스쿨에 합격했고, 2021년 1학기부터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2학기부터는 도저히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웃거나 우는 등 조금이라도 감정 변화가 생기면 몸에 힘이 풀려서 쓰러질 정도로 건강 상태가 나빠졌다.

아영 씨는 과로가 원인인 줄 알고 휴학을 한 뒤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조울증' 진단도 받았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해엔 더 이상 휴학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등록금을 냈지만 학교 수업은 듣지 못해 유급됐다.

지난해 6월 방문한 한 대학병원에서 비로소 '기면증' 판정이 나왔다. 아영 씨는 기면증 중에서도 독특하고 증세가 심한 편이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 깊은 수면 상태가 일정 수준 유지돼야 하는데, 아영 씨는 1시간에 14번이나 깨서 도저히 제대로 잘 수 없다.

기면증 진단 이후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혈변을 보거나 헤모글로빈 수치가 내려가는 등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치료비, 입원비 등으로 600만원이 들어갔다. 뇌가 발달하는 어린 나이에 성범죄를 당해 기면증 외에도 스트레스증후군(PTSD), ADHD, 조울증이 한꺼번에 발병했고, 이로 인해 약물 치료비로만 매달 40만원이 나가는 실정이다. 생계비와 주거비 등으로 아영 씨가 진 빚은 8천만원에 달해 현재 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순 없다. 이번 신학기부터는 어떻게 해서든 학교에 다녀보려고 한 학기 등록금 800만원을 마련했다. 하지만 어떻게 계속 학교를 다닐지, 병은 차도가 있을지도 막막하기만 하다. 3층 빌라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지금 아영 씨에겐 벅찬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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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타국서 아픈 아이 출산 픽운 씨에게 2,054만원 전달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찾은 한국 땅에서 낳은 아이가 호흡 곤란을 겪어 막막한 픽운 씨(매일신문 2월 6일 10면 보도)에게 2천54만4천300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주)이구팔육(김창화) 5만원 ▷'성현탁픽운씨께' 30만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가족·회사 잃고 병마에 고통 받고 있는 박병욱 씨에게 2,104만원 성금

이혼한 뒤 사업도 부도나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로 전락했는데 건강 악화로 폐암 의심까지 받고 있는 박병욱 씨(매일신문 2월 13일 10면 보도)에게 41개 단체, 123명의 독자가 2천104만2천325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주)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태원전기 100만원 ▷빛명상본부 6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6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이동훈)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 20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창성정공 (허만우) 10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동신통신㈜(김기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SK전장(김성근) 1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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