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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공급 위주" 1·10 부동산 대책, 지방 미분양 해소 한계

10년 만의 대세 하락기 악성 미분양 급증
수도권 공급 위주 대책…지역과는 맞지 않는 옷

대구 수성구 신매동 후분양 단지인 시지라온프라이빗(207가구)이 할인분양으로 기존 계약자와 마찰을 빚었다. 매일신문DB
대구 수성구 신매동 후분양 단지인 시지라온프라이빗(207가구)이 할인분양으로 기존 계약자와 마찰을 빚었다. 매일신문DB

과거 10년 동안 대세 상승기를 이어가던 대구 부동산 시장은 공급 물량이 대폭 확대되며 급격한 조정기를 맞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다시 등장한 할인분양과 그로 인한 아파트 주민들의 갈등은 하락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선을 앞둔 정부가 주택 경기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수도권을 향한 공급 대책이 주를 이루며 지역과는 맞지 않는 옷이 되어버렸다. 악성 미분양 주택 해소를 위한 지역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세 하락기 등장하는 할인분양

올해 4월 입주를 앞둔 대구 중구의 400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는 지금 아파트를 계약하면 축하금 1천만원을 준다고 홍보하고 있다. 아파트 계약금으로 1천만원 정액제를 시행하고 있으니 축하금을 받으면 입주까지 실질적으로 드는 돈이 없다는 설명이다. 해당 단지는 2020년 분양 당시에는 평균 경쟁률 11.25대 1의 비교적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하지만 입주가 다가오자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기 위해 계약조건을 변경하고 사실상의 할인분양에 나선 모습이다.

지역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시장이 나빠질 때 등장하는 분양촉진책은 ▷계약금, 중도금 이자 등을 낮추는 계약조건변경 ▷공급금액을 줄이거나 지원금을 주는 할인분양 ▷계약을 해지해도 원금과 이자를 돌려주는 계약금 안심보장제 ▷기존 계약자에게도 변경된 계약 조건을 소급적용하는 계약조건 보장제가 대표적이다.

과거 대구 부동산 시장에선 할인분양이 당연시되던 시절도 있었다. 상동 동일하이빌, 황금동 SK리더스뷰, 범어동 두산위브더제니스, 수성3가 롯데·쌍용·코오롱·화성 등 2006년 전후로 분양된 수성구 중대형 아파트들도 2011년까지도 대규모 할인분양을 진행했다.

지금도 당시 상황과 유사하다. 수성구 신매동 후분양 단지인 시지라온프라이빗(207가구)은 지난 2022년 10% 할인분양에 나서며 할인분양의 출발을 알렸다. 당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등장한 할인분양이라는 말이 나왔다. 초기에는 기존 분양자에게도 소급적용했으나 이후 할인율을 20%로 올린 사실이 드러나 기존 입주자와 마찰을 빚었다.

비교적 좋은 입지로 꼽히는 수성구 만촌자이르네, 서구 두류스타힐스, 달서구 두류역서한포레스트도 많게는 25% 분양가 할인과 중도금 무이자 혜택을 제공했다. 달서롯데캐슬센트럴스카이는 계약을 해지해도 계약금 100% 환불, 5% 이자까지 지급한다는 계약금안심보장제를 시행했고 후분양 단지인 사월역삼정그린코아카운티는 전세 분양으로 전환했다.

할인분양은 '민-민'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아파트 입주자들은 할인분양으로 입주하는 가구가 이사올 때 출입문을 막아서거나 엘리베이터 사용료 등 관리비를 차등 적용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식이다. 문제는 아파트 주민들 간 갈등이 심해져도 이를 해결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부산, 울산, 포항 등에서 할인분양을 둘러싼 손해배상 소송이 이어졌지만 법원은 계약자유의 원칙을 들어 시공사나 시행사 손을 들어줬다.

일부 단지들은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기존 계약자에게도 변경된 계약조건을 소급적용하는 계약조건 보장제를 시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악화되는 시기에는 이마저도 안심할 수가 없다. 1천400억원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만기 연장에 실패해 공개매각 절차를 밝고 있는 수성구 수성동4가 빌리브 헤리티지가 대표적이다.

빌리브 헤리티지 수분양자 25명은 분양 가격이 변경되면 기존 계약자에게도 유리하게 소급적용한다는 특약 조건에 따라 매매계약을 체결했지만 공매 절차가 진행되는 지금은 계약 조건이 지켜질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수분양자들이 신탁사와 시행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자 시행사는 "공매는 시행사 주도의 정상적인 분양 활동이 아닌 대주들의 강제처분인 만큼 분양 계약서에서 규정한 할인분양과는 차이가 있다"고 반박했다.

◆수도권 공급 위주 정부 정책

정부도 전국 곳곳에서 경기 위축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자 다양한 건설 경기 부양책을 내놨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달 10일 발표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은 지역에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정비사업 추진 요건과 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 건축 규제를 완화한 내용은 공급 물량이 넘쳐나는 지역 사정과는 동떨어진 대책이라는 지적이다. 신축 소형 주택을 구매하면 취득세를 50% 감면하는 혜택도 아파트는 제외한 채 오피스텔이나 다가구 주택에만 적용됐다.

지방 미분양 주택 물량 해소를 위해 제시한 대책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미분양 주택을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건설사에게 1년 한시로 취득세를 50% 감면하겠다는 정책은 공급 물량 과다로 전세가격이 하락한 지역 부동산 시장에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적자가 커지는 건설사 입장에선 임대보다는 할인분양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향후 2년간 6억원 이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최초 구입하면 주택 수에서 제외하겠다는 정책도 실질적인 도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상을 준공 후 미분양 주택으로 제한한 점이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주택 수 제외를 통해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취득세 '중과'에서만 제외될 뿐 특별한 혜택은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송원배 대구경북부동산분석학회 이사는 "앞으로 스트레스DSR(총부채상환비율)이 도입되면 집 사기가 더 어려워진다. 무주택자나 1주택자 갈아타기 수요는 DSR 적용을 제외하고 LTV(담보인정비율) 정도만 적용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지방 미분양 주택 해소를 위해선 양도소득세 감면이 가장 시급하다. 여기에 주택 수 제외까지 더해지면 다주택자의 투자 수요가 살아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시도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 완화 ▷대출금 상환 방식 변경 ▷미분양 주택 환매조건 매입 등의 대책을 중앙정부에 꾸준히 건의하고 있다. 다만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할인분양은 무주택자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건설사가 적자를 감수하고 할인분양에 나선 것은 시장 원칙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설명이다.

허주영 대구시 도시주택국장은 "미분양 주택 해소를 위해 지난해부터 신규 주택 사업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타 시도에서는 하지 않는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꼽힌다"며 "이 밖에도 공공 건설 사업을 조기에 발주하거나 지역 하도급 비율을 높여서 건설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 구·군과 함께 할인분양을 둘러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행정지도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대구 수성구 중대형 단지들의 할인분양 소식을 전한 매일신문 보도.
지난 2011년 대구 수성구 중대형 단지들의 할인분양 소식을 전한 매일신문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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