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박희광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과 명예선양 방안

오늘은 삼일절이다. 대구·경북 지역에는 왕산 허위 선생을 위시로 이상룡, 이육사, 이상화, 이인 선생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배출되었지만 독립운동의 보훈학적 평가에서 공적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서훈 등 이에 합당한 평가를 못 받고 있는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독립운동가가 있다.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의해 피체되어 장기간 옥고를 치른 대표적인 인물로 향토 영웅 박희광 선생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국가보훈부 공훈록에 의하면 선생은 1901년 2월 15일 경북 구미시 봉곡동 171번지에서 태어나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1912년 4월 부친을 따라 만주 봉천성 청원현으로 건너가 1922년 통의부 제5중대원으로 들어가 박상만이라는 가명을 사용해 친일파 토벌을 위하여 김광추의 휘하에서 특공대원으로 활약했다.

1923년초 무순 방면의 고등계 첩자이며 조선인회 서기인 악질 친일파 정갑주 부자를 주살하고, 동년 6월에는 보민회를 습격하여 이용구와 더불어 열성 일진회원으로 국권 침탈에 앞장섰던 악명 높은 친일파 거두 최정규를 암살하려 하였으나 이미 피신하고 없으므로 그의 부하 허윤과 가족을 사살한 후 일본인 요정 금정관에서 군자금 300원을 빼앗아 피신하다가 체포됐다.

그는 결국 1924년 대련지방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호적상 미성년자로 1927년 여순 고등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두 차례의 감형으로 18년 6개월간 형기를 마치고 1943년 3월에야 출옥했다. 광복 이후엔 꿈에 그리던 대한민국에 귀국해 경교장에서 백범 김구 선생 경호를 담당했고, 1970년 1월 22일 중앙보훈병원에서 서거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3등급인 대한민국 독립장을 수여했다.

박희광 선생은 우리나라 독립유공자 중 19년 가까이 장기간 옥고를 치르면서 일본 경찰의 온갖 고문에도 변절하거나 굴복하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표상으로 후세들은 참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박희광 선생을 위한 보훈 명예 선양 방안으로 첫째, 기념관 설립 재추진이 시급하다. 10여 년 전 기념관 설립을 위해 국가보훈부로부터 국비 7억원과 종중에서 부지 제공이 있었으나 구미시에서 지방비 대응 투자가 없어 결국 반납해 기념관 설립이 무산된 바 있다. 2024년도엔 기념관설립추진위원회를 재개편하여 위원회를 중심으로 국비와 지방비 등을 확보해 늦어도 2025년엔 설계비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

둘째, 현재 국가보훈부에서 독립유공자 서훈 등급 재조정을 하고 있는데 독립유공자 서훈 등급 선정 기준에서 중요 기준이 되는 부분이 독립운동 시 역할과 및 수형 생활 기간으로 박희광 선생의 경우 18년 6개월이면 국내 최장기에 가까워 현재 3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 독립장은 격에 맞지 않아 2등급인 건국훈장 대통령장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셋째,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 게재해야 한다. 보훈 문화 확산 및 보훈 교육 차원에서 덜 알려진 분들, 즉 박희광, 김동삼, 이상정, 김마리아, 권기옥 선생 등 무명의 독립유공자에 대한 학생들의 보훈 교육이 필요하다.

넷째, 박희광 선생의 보훈학술적 재평가가 필요하다. 매년 삼일절 또는 광복절 행사에 맞춰 독립운동과 관련한 학술적 재평가와 보훈 전문가들의 학술세미나를 통해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국가보훈부에서 매달 선정하는 이달의 독립유공자로 채택해 박희광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 등을 국민들에게 자세히 알려 보훈 문화 확산과 나라사랑 정신을 배양해야 한다.

(김태열 영남이공대 교수·한국보훈포럼 회장)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