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역대급 공천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국민의힘에서 '역대급(歷代級) 공천'이 진행 중이다. 보수 정당의 총선 공천이 이렇게 매끄럽게 진행된 적이 언제였나 싶다. 특히 '텃밭' 공천에서마저 잡음이 현저히 줄었다. 정치권 일각에서 '너무 조용해서 감동이 없다'고 딴지를 걸 정도다.

연초 공천 국면에 접어들 때만 해도 여야를 막론하고 현역 국회의원 대거 교체를 뜻하는 '피바람'을 예고하는 전망이 많았다. '바뀐 논 주인의 요구가 자명하다'는 표현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2022년 3월 치러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여당인 국민의힘은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이,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접수했다. 현역인 제21대 국회의원을 공천한 인사가 아니라 새로운 세력이 거대 양당의 주류가 됐다.

여당의 한 중진은 "새롭게 논을 산 주인이 '현장 시찰'에 나섰는데 소작농들이 모두 전 주인이 정한 사람들이라면 어떻겠느냐"며 "소작농들끼리는 자신이 계속 논을 부칠 수 있는 저마다의 이유를 설파하겠지만 주인의 요구는 자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기준으로 소작농을 재편할 것이라는 얘기다. 정치권에 오래 몸담은 인사일수록 이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대 총선 공천의 원리였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의 국정 운영 동력 확보를 위해, 제1야당 대표는 차기 대통령 선거 준비를 위해 국회에 자기 사람을 심고자 무리수를 동원할 것이라는 예측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총선까지 40일 남았다. 민주당 상황은 앞서 언급한 예측대로다. 이 대표가 이른바 '친문계'를 쓸어내는 중이다. 바뀐 논 주인이 자신의 요구를 철저하게 관철하고 있다. 떨려 나가는 '친문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홍영표 전 원내대표로부터 "이 대표가 남의 가죽은 벗기고 자신의 것은 벗기지도 않는다. 피 칠갑된 손으로 웃으면서 '빵점' 얘기를 했다"는 성토까지 나온다. 이 대표가 '범운동권 동지애'를 바탕으로 '민주당'에서 지켜져 왔던 '주류 80%+비주류 20%'의 공천 지분 안배 불문율을 깼다는 불만도 이어진다.

여당 공천 기류의 변화를 두곤 해석이 다양하다. 대체로 윤 대통령의 짧은 대선 준비 기간과 영부인 위상 위축 그리고 현 정부의 검찰에 대한 통제력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여의도' 경험이 전혀 없는 데다 짧은 기간 국민적 성원을 등에 업고 국정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오른 윤 대통령은 대선 재수(再修)·삼수(三修)를 거친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챙겨야 할 인사가 적은 편이다.

대선 당시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영부인이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등으로 위상이 예전만 못해진 상황도 '대선 기여 영수증'을 들이밀 인사의 수를 줄였다.

'검찰 출신 대거 공천' 전망이 틀린 이유에 대해선 '검사는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변호사 개업이라는 활로가 있고 그동안 정부와 공공기관 인사에서 배려가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대적인 경선 실시와 관련해선 무리한 물갈이 시도로 총선을 망치기보다 원내 제1당 이상의 성적으로 국회를 '접수'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머리가 굵어진 금배지에 대한 통제는 검찰을 통해 가능하다는 계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은 항상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공천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의 공천 과정이 제대로 평가를 받으려면 남은 공천을 잘해야 한다. 특히 텃밭에서의 선택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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