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타지인 대구에 첫발을 들였을 때, 외로움보다 더 큰 두려움이 덮쳐왔다. 길을 모르니 내비게이션 없이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혹여 버스를 잘못 탈까 싶어 정류장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버스 번호를 강박적으로 확인했다.
이제는 지도 앱 없이도 주요 관공서를 찾아갈 수 있게 됐고, 골목 곳곳의 맛집도 제법 꿰게 됐다. 누군가 대구에 놀러올 일이 있으면, 자신 있게 안내자를 자처하며 대구 사람 행세를 하기도 했다. 길을 잃고 진땀을 흘리던 과거는 몽땅 잊어버리고, '이 정도면 대구를 안다'고 자만에 빠졌다.
'두나의 두발 산책'을 쓰며 자만은 보기 좋게 깨졌다.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편하게 내달리던 대로와 대로 사이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골목들이 실핏줄처럼 촘촘히 이어져 있었다. 눈길을 사로잡는 신축 아파트 단지 사이로는 재개발의 광풍을 비껴간 오래된 동네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곳들은 버스나 택시만으로는 닿기 어려웠다. 30분 넘게 걷는 건 예삿일이 됐고, 좁은 골목 입구를 찾지 못해 길을 헤맸다. 400m 남짓한 짧은 골목이어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짧지 않기에, 같은 골목을 몇 번이고 왕복하며 숨겨진 이야기를 찾았다.
골목을 방문하기 전에는 관련 기사와 자료를 찾아 읽기도 했다. 언론 속 골목은 대체로 암울했다. 대형 상권에 밀려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거나, 볼거리가 부족해 쇠퇴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막상 현장에 도착하면 사전 지식은 무용지물이 됐다. 조그마한 우물 속 올챙이들이 쉼 없이 헤엄치듯, 골목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동감을 품고 있었다. 오래된 간판을 보며 가게 이름의 뜻을 물어봤을 뿐인데, 이야기는 예상보다 훨씬 길게 이어졌다. 시집을 올 때부터 이 가게를 지켜왔다는 주인은 좁은 가게 안에서 두 자녀를 키워낸 이야기, 어느새 아이들이 장성해 결혼까지 하게 된 과정을 들려 줬다.
그 밖에도 10년 넘게 찾아오는 단골손님의 이름을 줄줄 외우고 있는 상인, 휴대전화 속 오래된 사진을 꺼내 보이며 골목의 변천사를 열성적으로 설명하는 어르신들까지. 자신이 언제부터 이 자리를 지켜왔는지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그들의 표정에는 묘한 애정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박물관이나 보도자료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들은 골목이 가진 시간과 역사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이 실제 변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젊은 세대가 오래된 골목을 재해석하면서, 한때 낡고 오래된 공간으로만 여겨졌던 장소들이 또 다른 얼굴을 갖기 시작했다.
청과시장으로 이름을 알렸던 칠성시장은 이제 장난감과 레트로 감성의 공간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인쇄소 골목으로 기억되던 남산동은 책을 읽는 문화를 세련된 취향으로 소비하는 이른바 '텍스트 힙' 공간으로 재해석됐다. 어르신들은 "이 골목이 이렇게나 변했나"며 놀라고, 젊은 세대는 "이곳에 이렇게 깊은 역사가 있었느냐"며 새삼 신기해했다.
우리는 오래된 골목을 너무 쉽게 '쇠락'이라는 단어로 규정해 왔는지도 모른다. 직접 걸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골목은 멈춰 있는 공간이 아니라, 느리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었다.
지도 앱에 시선을 고정하고, 익숙한 길로만 다닌다면 골목의 매력을 읽을 수 없다. 골목을 지켜온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가 더해져야만 비로소 대구라는 도시가 완성된다. 그래서 오늘도 두 발로 그 이야기를 배우러 간다. 굽이굽이, 굳이굳이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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