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터뷰] 파지 팔아 장학금 남긴 할머니 곁엔 딸 같은 동네 주민이 있다

장귀련 어르신과 한옥자 씨

7개월 전 췌장암 4기를 판정받은 장귀련(86) 어르신 옆에는 유일한 가족을 자처한 한옥자(70) 씨가 앉았다. 피 한 방울 안 섞였다는 장 씨와 한 씨는 선한 미소가 꼭 닮았다.
7개월 전 췌장암 4기를 판정받은 장귀련(86) 어르신 옆에는 유일한 가족을 자처한 한옥자(70) 씨가 앉았다. 피 한 방울 안 섞였다는 장 씨와 한 씨는 선한 미소가 꼭 닮았다.

"오늘은 왜 이렇게 기운이 없을까~ 아무것도 못 드시시니 힘이 없지~ 밖에 꽃나무 사진 찍어 온 거 좀 보여줘야겠다~ 아이고 우리 할매 웃게 하려면 뭘 해야하나~"

지난달 26일 대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한 병실. 적막함을 깨고 다정한 대화가 오간다. 맘 놓고 투정부리는 아픈 엄마와 그런 엄마를 어르고 달래느라 바쁜 딸. 영락없는 모녀의 모습이다. 7개월 전 췌장암 4기를 판정받은 장귀련(86) 어르신과 유일한 가족을 자처한 한옥자(70) 씨가 그 주인공. 피 한 방울 안 섞였다지만 장 씨와 한 씨의 선한 미소는 그 누구보다 꼭 닮았다.

※인터뷰 질문에는 한옥자 씨가 답변했습니다

-모녀지간이라는 소리 많이 들을 것 같다. 둘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17년 전부터 알았다. 내가 2000년부터 2012년까지 통장을 했었는데 장귀련 할머니는 당시 우리 동네에 혼자 사시던 어르신이었다. 통장 일을 할 때 동네 홀몸 어르신들이 눈에 밟히더라. 그래서 매일 동네 산책을 하며 찾아갔다. 어르신들 들여다보고 이야기 나누고 하는 게 좋았다. 그러다 보니 통장에서 내려왔는데도 어르신들이 나를 계속 찾더라. 장 할머니와도 여태껏 그렇게 인연을 맺어온 것이다.

-건강이 안 좋아진 장 할머니가 한 씨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했다고 들었다.

▶17년동안 알고 지낸것도 있고, 평소에 가전제품이 고장나거나 딸 역할이 필요할 때 편히 연락을 주셨었다. 그래서 아플 때도 내가 제일 먼저 생각난 모양이더라. 장 할머니는 17세에 결혼해 50세가 될 무렵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아이가 없는 탓에 남편을 여읜 후에는 혈혈단신으로 살아오셨다. 주변 홀몸 어르신들을 보면 장 할머니처럼 자식이 없는 분도 계시지만 자식이 있어도 자주 찾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사실 제 부모 하나도 챙기기 힘든 세상이다.

▶다들 어떻게 오랫동안 어르신들을 챙기냐고 묻지만 그냥 진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하는 것도 별로 없다. 그냥 안부 묻고, 필요한 거 도와 드리고.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야기들 하나 싶다. 시아버지 시어머니도 다 모셨는데 32년간 같이 살다 돌아가셔서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그냥 어르신들이 좋다. 홀몸 어르신들 돌보는 걸 시어머니가 질투도 하셨다. 내 며느리가 다른 곳에서도 "새댁" "며느리" "딸"로 불리는 게 싫으셨나 보다. (웃음)

-긴 세월만큼 홀몸 어르신들과의 추억도 많겠다.

▶할매, 할배들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 한 할매는 돌아가시기 전에 나한테 새카만 봉투에 돈을 둘둘 싸서 갖다주더라. 죽기 전에 전재산 50만원을 나한테 주고 싶다면서 말이다. 다시 할매 집에 그 돈을 다 갖다 주자 할매가 그 돈으로 18K 목걸이랑 팔찌를 맞춰 왔더라. 엄마가 주는거라 생각하고 항상 끼고 다니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라.

또 한 할매는 돌아가시고 나서 며느리가 찾아왔었다. 자기도 제대로 못 봐드린 어머님 잘 보살펴줘서 고맙다고 내복을 가져와서 몇 번을 인사하더라. 지금도 한 열명 어르신과 매번 전화 통화를 하는데 혹시 귀찮으실까봐 "내가 전화하는거 괜찮아요?" 물으면 그런 말 하지 마라고 화를 내신다.

-장 할머니가 아프시고 나서 마음 고생 많으시겠다.

▶내가 인연을 맺은 어르신들이 아프다고 하면 그게 제일 눈물 난다. 장 할머니는 특히 내가 많이 따르고, 보고, 배운 게 많은 어르신이다.

-안 그래도 장 할머니가 2017년 기부도 하셨더라.

▶남편을 여의고 장 할머니는 파지를 줍고 산에 올라 냉이와 쑥을 캐 시장에 내다 팔며 사셨다.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로 받은 돈을 함께 차곡차곡 모아 80세가 되던 해 서구 인재 육성재단에 5천만원을 기부 하셨다. 돈 모으느라 고기 한 번 못 사 먹었어도 기부하고 나니 너무 기쁘다며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른다.

장귀련 어르신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파지를 줍기 시작했다. 때로는 산에 올라 냉이와 쑥을 캐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그리고 장 씨는 80세가 되던 해인 2017년. 기초생활수급비와 함께 돈을 차곡차곡 모아 서구인재육성재단에 5천만원을 기부했다.
장귀련 어르신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파지를 줍기 시작했다. 때로는 산에 올라 냉이와 쑥을 캐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그리고 장 씨는 80세가 되던 해인 2017년. 기초생활수급비와 함께 돈을 차곡차곡 모아 서구인재육성재단에 5천만원을 기부했다.

-너무 큰돈이다.

▶장 할머니에게는 더더욱 큰돈이다. 어떻게 저 어른이 혼자서 오늘날 까지 돈도 벌고 기부도 했나 싶다. 얼마나 강한 분인지 모른다. 정말 많이 배운다. 엊그제는 같이 병실을 썼던 학생이 퇴원하면서 장 할머니에게 10만원을 담은 봉투를 주고 가더라. 뭘 잡수시질 못하니 돈을 드린 모양이더라.

어디서 할머니가 기부했던 이야기를 들었던지 할머니같이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며 한참을 울다 갔다. 모두가 존경할 만한 분이다. 장 할머니는 기부를 하고 나서 이런 말을 하셨었다. "죽어서 저승에 가면 '니는 뭐하고 왔노'라고 물을텐데 나는 할말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남을 위해 조금은 애쓰고 왔어요' 라고 말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장 할머니와 같이 병실 쓰는 분들의 칭찬도 자자하더라.

▶우리 할머니는 진짜 단단한 사람이다. 아무것도 드시지 못해 기운이 없으신데도 도와달라는 말 한 번을 안 하신다. 기자님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여기 코와 팔에 연결된 호스들이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면서도 본인보다는 같이 병실 쓰는 사람들의 안부에 더 관심이다. 그래서인지 할머니 침대로 환자들이 늘 많이 모인다.

장귀련 씨를 친정엄마처럼 살뜰히 모시는 한옥자 씨. 한 씨의 봉사 경력은 30년이 넘는다. 한 씨는 2018 대구자원봉사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장귀련 씨를 친정엄마처럼 살뜰히 모시는 한옥자 씨. 한 씨의 봉사 경력은 30년이 넘는다. 한 씨는 2018 대구자원봉사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장 할머니 간호를 계속 이렇게 해오신건가.

▶그냥 시간 날 때마다 매번 온다. 안 오면 할머니가 전화를 하기도 한다. 머리 감겨주고 요구르트 사다주고…별거 없다. 그냥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할머니에게 노래 들려주고 하다 보면 4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얼마 전에는 외출하고 싶다고 하셔서 우리 신랑 차 타고 동화사를 다녀왔다. 힘이 드시니 잘 걷지 못하고 뭘 못 드시니 식당도 못 갔지만 참 좋아하시더라. 그리고 병원 수납이나 전원하는거 도와주고 그런 자잘할 일을 한다. 이게 뭐 큰일이냐

-큰일이 아니라고 하시지만 큰일이 맞다.

▶어르신이다 보니 처리하기 힘든 부분을 도와줄 뿐이다. 나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나 할머니가 잘 모르시는 그런 것들을 내가 봐준다. 살던 집도 정리를 해줬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돌아가시고 나서의 일들도 다 준비 해놨다.

-한옥자 씨가 딸이라면, 남편 분은 사위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남편 아니었으면 여태껏 봉사를 못 했다. 내가 운전을 못하니까 어르신들 데리고 어디 다녀주고, 일도 같이 봐주고 … 남편이 함께 해준다. 우리 남편도 봉사활동 참 많이 했다. 내가 2018년 대구자원봉사대상 받았을 때도 했던 말이 있다. 내가 적십자나 검찰청 학생 선도, 구청 봉사 등 하고 있는 봉사들이 많더라도 상 받는건 우리 남편이 받아야 한다고. 그만큼 우리 남편 도움 없었으면 오늘날까지 편하게 봉사를 못 했을 거다.

-사실 한옥자 씨도 나이가 이제 많지 않나. 어르신들 챙기는게 힘들진 않나

▶하하. 실제로 손주들이 많이 커서 할매라고 불리는 입장이긴 하다. 하지만 할매 할배들 찾아다니는건 좋아서 하는 일이라 힘이 안 든다. 나를 찾는 어르신들이 있는 한 계속 이렇게 살거 같다. 내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는 봉사하고 싶다.

"모녀지간 맞네요 뭘~" 인터뷰가 끝날무렵 기자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 평생 모은 돈을 기부하고도 '큰일 아니다' 라는 장귀련 어르신. 30여년 넘게 봉사를 해오면서도 "별일 아니다" 라는 한옥자 씨. 선한 마음이 꼭 닮은 두 사람의 황혼은 오늘도 아름답게 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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