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신공항 일구이언(一口二言)

이상준 경북부장

이상준 경북부장
이상준 경북부장

"대구경북(TK)신공항 화물터미널 2개를 운영해 잘 되는 것보다 대구시 인구가 300만 명으로 증가하는 게 빠르다." "지역 합의 사항은 지킬 필요가 없다."

오는 2029년 TK신공항이 들어서는 군위와 의성에 복수의 화물터미널을 설치하겠다는 대구시와 경북도의 합의를 정면으로 뒤집는 발언이 물의를 빚고 있다.

경북도와 의성군 등에 따르면 이 발언의 주인공은 어이없게도 국토교통부 TK신공항 건설추진단 소속 관료들이다. 1월 대구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와 2월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열린 의성군과의 면담 자리에서 연이어 새어 나왔다.

국토부는 이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문제의 발언을 한 당사자들도 구체적인 이유나 배경은 함구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정부 관료들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지역 합의를 지킬 필요가 없다"니, TK신공항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안다면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얘기다.

신공항은 대구경북 '합의'의 산물이다. 지난 2020년 7월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 대구경북 국회의원, 대구경북 시·도의원 등이 서명한 공동합의문이 신공항 건설 추진의 원동력이 됐다.

당시 공동합의문은 ▷군위군·의성군 공항신도시·산업단지 조성 ▷군위군의 대구시 편입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철우 도지사는 "공항은 대구경북의 새로운 역사다. 팔을 하나 떼 주는 아픔이지만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군위군 편입 반대 여론을 일축했다. 군위군 편입은 지방자치단체 간 합의로 이루어진 최초의 사례로 신공항 건설과 대구경북 상생 발전의 역사적인 터닝 포인트가 됐다.

군위군 편입 이후 경북 22개 시군은 남은 공동합의문 이행을 통한 경북 발전을 염원했다. 특히 군위군이 대구시에 편입돼 수혜를 얻은 만큼, 의성에도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이는 지난해 10월 이철우 도지사가 복수 화물터미널 중재안을 제시한 배경이 됐다. 단일 터미널(대구시 군위군)에 대한 국토부 민간 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결과에 의성 지역사회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지역 갈등 위기도 심화됐다.

대구시 또한 군위군에 여객(밸리카고용) 화물터미널, 의성군에 화물기용 화물터미널을 설치하는 상생안에 전격 합의, 갈등 봉합에 동참했다.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도 "화물터미널 복수 설치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신공항 기본계획에 포함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옛말에 "일구이언(一口二言)은 이부지자(二父之者)"라고 했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은 아버지가 둘인 것과 같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쉽게 말을 바꾸는 일관성 없고 모순된 행동을 비꼬는 말이다.

"지역 합의는 지킬 필요가 없다"는 국토부 관료들의 발언은 지난해 원 전 장관의 약속을 파기하겠다는 것이다. 장관이 바뀌자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말에는 무게가 있다. 정부 관료라면 더욱 신중해야 하고,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당장 의성군 지역 사회단체들은 "화물터미널이 의성 지역에 오지 않으면 공항 이전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대구경북 지방정부와 정치권도 두고만 봐서는 안 된다. 행여나 국토부 안팎에서 복수 화물터미널 약속을 깨려는 시도가 있다면 반드시 막아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대구경북 상생 합의를 깨는 신공항 건설은 결코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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