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오심도 경기의 일부'는 틀렸다

전창훈 체육부장
전창훈 체육부장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정체 모를 수사다. 스포츠 역사에서 예기치 않은 오심으로 경기의 흐름이나 결과가 뒤바뀐 사례는 셀 수 없다. 오심은 '공정하게, 최선을 다한다'는 스포츠 정신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지만, 번복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도입은 이런 모순의 스포츠판을 바꾸고 있다. 2024 시즌을 개막한 국내 프로야구에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볼·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ABS) 적용이다. ABS에 의해 '볼이냐, 스트라이크냐'를 판정하는 주체는 AI가 되고 주심은 AI의 신호에 따라 콜을 한다. '절대 권력'이던 주심이 보조 역할을 한다는 자체만으로 혁신적이라 할 수 있다. 야구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 프로야구는 이를 시범 운영하는 수준이어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ABS를 처음 적용하는 국가가 되는 셈이다.

일단 프로야구 시범경기에서 활용한 ABS에 대해서는 합격점을 받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된 프로야구 시범경기 19경기를 분석한 결과, ABS 투구 추적 성공률이 99.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BO 사무국은 극히 일부 사례에서만 투구 추적에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KBO 사무국은 급격한 날씨 변화나 이물질 난입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100% 트래킹 추적 성공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대응 매뉴얼을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개막전 때 장면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전반 3분 에콰도르 공격수 에네르 발렌시아가 헤딩한 골이 카타르의 골망을 흔들었다. '카타르 월드컵 첫 골'이라며 경기장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곧바로 오프사이드 판정이 나며 무효가 됐다. 심판의 눈으로 잡아내지 못한 오프사이드를 '반자동 오프사이드 기술'(SAOT)이 잡아낸 것이다. 판정 직후 발렌시아의 당황한 표정과 관람객들의 상반된 반응 등은 아직도 생생하다. 예전 같으면 들끊었을 '판정 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오프사이드 장면을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공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 월드컵 때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국가별로 판정 시비에 휘말렸던 모습을 기억한다. 오심 논란이 신문이나 방송에서 대문짝만하게 다뤄지고, 심지어 이로 인해 외교 분쟁까지 벌어지는 웃지 못할 모습을 지켜봐 왔다. 그러나 국제축구연맹(FIFA)이 카타르 월드컵 때부터 AI를 적극 활용하면서 이 같은 소모적인 논란은 거의 사라졌다. 스포츠 경기에서 AI가 그만큼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AI 활용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정착 단계에 있는 축구의 상황과는 달리 야구는 이제 적용 초기 단계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구장마다 스트라이크존이 다르다는 지적 ▷판정 콜까지 발생하는 시차 문제 ▷여러 가지 변수에 따른 판정의 부정확성 ▷기술적 오류 가능성 등이 제기된다. 또한 인간성이 극대화된 '숭고한 승부'에 AI가 끼어드는 것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이들도 적잖다.

하지만 AI 활용은 이제 적응의 문제라고 본다. AI는 앞서 언급했듯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결과엔 깨끗하게 승복한다'는 스포츠 정신을 극대화해 줄 수 있다. 다만 어느 선까지 활용하고 발전시킬지는 우리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스포츠에서도 AI와 상생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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