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내당성당에 국내외 건축학도들이 주목하는 까닭은?

최근 성전 복원 사업 마무리
60년대 건립 당시 모습 되찾아
성당 한가운데 제대 배치하고
신자들이 둘러서는 독특한 형태
“역사적·교회 건축사적 가치 높아”

옛 모습을 복원한 내당성당의 외부 모습. 위에서 내려다보면 십자가 세 개가 중첩된 피라미드 형태를 하고 있다. 내당성당 성전복원추진위원회 제공
옛 모습을 복원한 내당성당의 외부 모습. 위에서 내려다보면 십자가 세 개가 중첩된 피라미드 형태를 하고 있다. 내당성당 성전복원추진위원회 제공
옛 모습을 복원한 내당성당 내부 모습. 성전의 정중앙 낮은 한가운데에 제대를 배치하고, 신자들이
옛 모습을 복원한 내당성당 내부 모습. 성전의 정중앙 낮은 한가운데에 제대를 배치하고, 신자들이 'ㅁ'자 형태로 제대를 둘러서서 미사를 드리는 구조다. "이러한 제대의 위치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박장근 베드로 주임신부의 설명이다. 이연정 기자

1960년대 보릿고개 시절, 세계 최빈민국에 속했던 한국, 그것도 대구 변두리 지역에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던 형태의 건물이 들어섰다.

일반적인 성당과 달리 성전 한가운데에 제대를 배치하고 사제와 신자들이 'ㅁ'자 형태로 둘러서서 미사를 드리는 구조의 대구대교구 내당성당은 당시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형태의 건축물로 주목을 받았다.

건축사적 가치가 높은 이 건축물이 그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편의를 위해 1988년 평범한 성당의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 최근 성전 복원공사를 거쳐 건축 60년 만에 옛 모습을 찾은 내당성당에 천주교계는 물론 국내외 건축학도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창의적인 건축 양식이 돋보여 문화재 등재 가능성도 점쳐진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 고스란히

1966년 11월에 지어진 내당성당은 오스트리아 출신인 서기호 루디 준본당 초대 신부와의 인연으로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교 교수이자 건축가인 오토카 울(Ottokar Uhl·1931-2011)이 설계를 맡았다.

그는 1962년부터 1965년까지 로마에서 열렸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정신을 건물 곳곳에 담아냈다. 울 교수는 평신도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권장한 전례 정신을 표현하고자 가로·세로 25m의 정방형 건물 사방으로 활짝 출입문을 내고, 성전 내부에서 가장 낮은 정중앙에 제대를 배치했다. 사제와 신자들이 'ㅁ'자 제대를 둘러싸고 미사를 드리는 구조다.

박장근 베드로 주임신부는 "성전의 가장 낮은 곳에 제대가 위치해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하느님을 중심으로 한 백성들의 모임을 건축학적으로 잘 나타냈다"고 말했다.

성전 내부의 바닥은 계단식으로 낮아지는 반면, 천장은 가운데가 가장 높다. 이는 성당을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십자가가 세 개 겹쳐진 피라미드 형태를 하고 있어서다. 가장 높은 천장의 창 9개를 비롯해 십자가의 끝마다 난 창에서는 햇빛이 쏟아져 내리는데, 이는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도의 공간이 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박 주임신부는 "설립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워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에서 모금운동을 해 보내온 성금으로 성전이 지어졌다"며 "교회의 쇄신을 추구하는 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독창적으로 표현해 내당성당의 건축사적인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2023년 내당성당 성전 복원공사 당시 드러난 1966년 제단 모습. 내당성당 제공
2023년 내당성당 성전 복원공사 당시 드러난 1966년 제단 모습. 내당성당 제공
1966년 내당성당 건축 당시의 모습. 내당성당 제공
1966년 내당성당 건축 당시의 모습. 내당성당 제공

◆30여 년 만에 옛 모습 되찾다

하지만 내당성당은 건립 20여 년만인 1988년 큰 변화를 맞는다. 낙후된 냉·난방시설과 늘어난 신자들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문제에 부닥친 것. 부득이하게 성전 리모델링을 거쳐 출입문을 하나로 줄이고 신자들이 한 방향으로 제대를 바라보는 평범한 성당의 모습으로 바뀌게 됐다.

이후 30여 년간 교구와 신자, 건축학계에서는 성전의 본래 모습에 대한 아쉬움이 끊이지 않았고, 성전 복원은 곧 내당성당의 숙원사업이 됐다.

그러던 중 2022년 대구대교구 조환길 대주교가 내당성당을 방문해 이례적으로 예산 지원을 약속하며 사업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교구청이 건축 공사비용 일부를 지원하고 나머지 비용은 신자들이 성금을 십시일반 모아 2023년 초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손술영 내당성당 성전복원 추진위원장은 "1988년 당시 리모델링 공사 자료가 없다보니 건축 초기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양파 껍질 벗겨내듯 바닥과 벽을 들어내야 했다"며 "다행히 가운데 제단이 그대로 남아있어 본래의 형태를 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내당성당은 내·외부적으로 초기 건립의 형태를 되찾았다. 1988년 리모델링 당시 창을 내느라 없앴던 외벽 일부도 다시 타일을 붙여 복원했다. 햇빛에 따라 깊고 다양한 청록빛을 내는 이 외벽은 1966년 건립 당시 울 교수가 경주의 도자기 공장에서 직접 고려청자색의 타일을 주문해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60여 년의 세월을 함께 해 온 성전 내부의 제대십자가와 격자창, 외벽을 따라 빗물이 떨어지게 한 배수구 등 성당 곳곳에서 독특한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1966년 내당성당 건립 공사 당시, 성당을 설계한 오토카 울 교수(오른쪽 세 번째)와 서기호 루디 준본당 초대신부(오른쪽 첫 번째). 내당성당 제공
1966년 내당성당 건립 공사 당시, 성당을 설계한 오토카 울 교수(오른쪽 세 번째)와 서기호 루디 준본당 초대신부(오른쪽 첫 번째). 내당성당 제공
1988년 리모델링 이후 일반적인 성당의 모습을 하게 된 내당성당의 모습. 내당성당 제공
1988년 리모델링 이후 일반적인 성당의 모습을 하게 된 내당성당의 모습. 내당성당 제공

◆국내외 건축학도 주목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건축물이 30여 년 만에 복원되며, 벌써부터 국내외 건축학도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 내당성당의 설명이다.

손 위원장은 "2021년 복원 직전까지도 대학 건축전공 교수와 미국에서 온 건축가들이 설계자인 울 교수의 자료를 구하기 위해 방문했다"며 "한 종교건축 전문가는 독특한 건축 양식과 가치가 있기에 국가등록 문화재 등재 가능성이 있다고도 얘기해 현재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당성당은 지난 4월 첫 입당미사를 봉헌한 데 이어 남은 공사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6월 8일에는 조환길 대주교가 집전하는 성전봉헌식이 열릴 예정이다.

박 주임신부는 "단순히 건축물 복원의 차원을 넘어 성전의 부활된 모습을 통해 신자들이 세상에 빛을 전하고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공동체로 나아가는 장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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