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형식적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위기      

박헌경 변호사

박헌경 변호사
박헌경 변호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측근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 전 부지사 유죄 판결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12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쌍방울 대북송금과 관련한 제3자뇌물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민주당은 최근 이 사건 검찰 수사팀을 수사 대상으로 한 대북송금 특검법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제22대 국회를 개원해 관할 상임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자리에 초강성 의원인 정청래 최고위원을 배치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이 반대하더라도 대북송금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편 민주당에선 이날 이 사건 수사 검찰에 대한 탄핵을 추진할 수 있다는 말도 공개적으로 나왔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를 대비해 이 사건 수사 검사와 검사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민주당이 제22대 총선 압승을 바탕으로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해 다수결 원칙을 남용해 법에 의한 지배를 강화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수사 검찰에 대한 특검법과 탄핵 추진은 삼권분립의 정신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민주당이 입법부인 국회를 장악해 중립적이어야 할 사법권마저 정치적으로 좌지우지하려고 함으로써 우리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되고 있다.

법치주의란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法治), 즉 사람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국가 원리를 말한다. 법이 국가권력을 통제하고 국가권력의 자의적인 지배를 배격하는 헌법 원리를 뜻한다. 법치주의에는 형식적 법치주의와 실질적 법치주의가 있다.

형식적 법치주의는 의회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법을 제정하기만 하면 그 법의 목적이나 내용의 실질적 정당성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형식적 법치주의는 독재 권력을 정당화해 주며 권력자의 통치권을 강화시켜 주는 수단으로 악용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들어선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선거를 통해 집권한 히틀러는 국민 다수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고 다수결 원칙이라는 의회의 합법적 절차를 거쳐 의회를 장악했다. 입법을 통해 자신의 독재 권력을 정당화하고 강화시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무소불위의 독재자가 되었다. 이것은 형식적 법치주의의 대표적 사례다.

최근에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 벨라루스의 루카셴코 대통령 등이 선거를 통해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은 법의 지배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를 통해 법을 통치자의 의사를 실현하는 단순한 수단 내지 도구로 전락시켰다. 실질적 법치주의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닌 법의 지배(rule of law)를 말한다. 법의 지배는 최고 권력자도 법 위에 서지 못한다는 점에서 법을 도구로 사용하는 법에 의한 지배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법의 지배를 무시하고 다수결 원칙을 남용해 법에 의한 지배로 포장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라고 할 것이다.

실질적 법치주의, 즉 법의 지배는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독재 권력자의 법에 의한 지배를 통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 민주국가에서도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한 권력자에 의해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는 '민주주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므로 법치주의가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그것을 지키고 옹호하려는 권력자의 인식과 의지가 중요하고 그러한 권력자를 뽑기 위한 국민의 집단적 지성과 혜안이 중요하다. 현란하고 인기에 영합한 권력자의 말에 현혹돼 그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충성하는 중우정치와 극단적 진영 논리에 의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입법 독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의도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한 입법이 다수결 원칙의 남용으로 이뤄지고 있다. 형식적 법치주의에 의해 민주주의가 후퇴되고 있는 지금,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국민들의 지성과 의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