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정위 규제에 링거 맞는 식물기업 전락” 지방 中小 PB 제조사들…쿠팡 제재에 거센 반발

PB 제조사들 "빈대 잡으려 소상공인 다 태우는 공정위 비난"

PB상품 화면 캡쳐.
PB상품 화면 캡쳐.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의 자체브랜드(PB) 밀어주기 의혹을 제재하기로 결정하면서 쿠팡의 PB 제품을 제조,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쿠팡에 PB상품을 납품하는 중소 제조사는 500곳 이상으로, 대부분 지방에 포진해 있다. 낮은 제품 인지도 때문에 유통채널 입점 및 판매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쿠팡 PB 납품으로 온라인 판로를 크게 확대해왔다.

그러나 공정위 결정에 따라 PB상품의 우선 노출이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럽게 판매가 줄고 이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경영난에 직면할 수 있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 PB상품 등 우선 노출 제재한 공정위…중소 제조사들은 "쿠팡으로 파산 극복했는데 날벼락"
공정위는 13일 쿠팡의 PB 밀어주기 의혹에 대해 쿠팡에 과징금 1400억원을 부과하고 쿠팡 법인을 고발한다고 밝혔다. 쿠팡이 2019년 2월부터 최근까지 알고리즘을 변경해 인위적으로 6만4250개 PB상품과 직매입 상품을 검색 순위 상위에 노출해 소비자를 속였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쿠팡에 "앞으로 소비자에게 해당 상품이 어떤 상품이고 왜 상단에 노출해야 하는지 고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시정명령을 내렸다. 구체적인 방안은 공정위와 협의사항으로 알려졌다. 정부 협의를 거치지 않으면 PB상품을 예전처럼 쉽게 노출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쿠팡 PB 납품업체들은 이 같은 공정위 조치로 인해 매출이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그동안 쿠팡은 대기업과 비교해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중소 제조 PB상품을 적극 판촉해왔는데, 공정위 규제에 따라 노출과 구매 등이 대대적으로 저하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쿠팡 PB납품 제조사들은 이번 제재를 앞두고 공정위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대형마트·백화점 등 이미 대기업들이 선점한 채널로는 판로를 넓히기 불가능한 상황에서 쿠팡만이 중소기업의 납품을 받아준 덕분에 매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A업체 대표는 "대형마트 진열대는 대기업 제품으로만 가득 차 있어 중소기업은 판로 자체가 막혀 있다고 보면 된다"며 "대기업들과는 체급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섣불리 동등하게 경쟁하기 어렵다"고 했다.

B업체 대표는 "한때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쿠팡 PB 제품 생산을 통해 이제 막 기사회생한 우리 회사는 쿠팡 PB 상품에 대한 공정위 규제로 인해서 매출이 줄어들게 될 까봐 마음 편히 쉴 수조차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측은 공정위에 "고물가 상황에서 저렴한 PB상품의 노출을 막는 것은 중소 제조사들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다"고 설명했지만, 공정위는 이를 감안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소 제조사들은 중소기업이 마케팅, 배송, 고객 응대 등을 쿠팡이 모두 해결해 준 덕분에 비용을 크게 절감하고 판매량도 늘었다고 호소했다. C업체 대표는 "쿠팡처럼 노하우가 있는 기업이 품질도 개선할 수 있게 팁을 주고, 홍보나 이런 부분들을 도맡아 주니 그 이전보다 판매가 훨씬 늘었다"며 "쿠팡 납품 전에는 회사 매출이 100억원 정도를 기록하다가 지금은 200억원으로 뛰었고 회사 직원도 30명에서 50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인력이 부족한 중소 제조사에 버거운 로켓배송 시스템이나 고객 민원 해결을 쿠팡에서 도맡았다는 설명이다.

쿠팡 물류센터 전경.
쿠팡 물류센터 전경.

◇소비자·정치권 "공정위 제재는 PB상품 만드는 중소 제조사에 대한 규제"
공정위 제재에 따라 전국의 중소 제조사들에게 중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쿠팡 PB자회사 씨피엘비(CPLB) 납품 중소 제조사는 지난 4월 기준 550곳으로, 2019년 말과 비교해 3배 늘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0% 증가했고, 고용 인원은 올 1월 말 기준 2만3000명을 넘겼다.

지난해 3월 2만 명에서 10개월 만에 약 3000명 늘어난 수치다.

PB 중소 제조사들은 기존의 대기업 식자재 업체 등과 거래를 해왔지만, 복잡한 유통 구조 때문에 마진이 줄어드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쿠팡 곰곰에 식용얼음을 파는 동양냉동 관계자는 "쿠팡에선 대기업식의 4~5단계 유통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고, 이에 따라 중소업체에 높은 수익이 발생한다"며 "자사 브랜드가 대기업과 경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PB 판로 확대는 중소기업의 미래 경영에 큰 도움"이라고 했다.

그러나 공정위 규제에 대해 "쿠팡 PB가 끊기면 기존 대기업 등과 거래해야 하는데, 결국 링거 맞으며 연명하는 식물기업이 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비자와 정치권에서도 공정위의 쿠팡 PB 규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잇달아 나왔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지난달 말 "PB를 통해 유통기업이 중소 제조사들의 제품을 소싱하는 경우도 많고, 당장 소비자는 다만 몇 백원이라도 싼 제품을 찾아 가격 비교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정부의 PB 규제는 중소기업 죽이기 아니냐" "중소 제조사들만 설 땅이 없어진다"는 식의 반응이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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