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상한 취미 중 하나는 '물속 들여다보기'이다. 어렸을 적에는 엄마의 다슬기 채집통을 훔쳐서 아침부터 강으로 달려갔고, 커서는 스노클링 수경을 쓰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투명한 유리로 물속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거대한 유리구슬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곤 했다. 돌 틈 사이를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다슬기, 파도에 살랑거리는 미역을 따라 헤엄치는 돌돔을 만날 때마다 이곳이 진짜 동화 나라가 아닐까, 하며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실 그 모든 게 완벽한 착각이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바깥에서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거센 소나기가 내려도 절대 고요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 같은 구슬이지만, 그 맑은 동화 속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잠잠함은 비밀을 위장한 가면이었다. 먹이사슬로 생존과 삶이 유지되는 초원, 그 광활한 지상과 똑같은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냉혹함이란 말은 인간의 감정이입이 만들어낸 센티멘털에 지나지 않는 곳이 바로 물속이었다.
이산화탄소와 유기물을 흡수하는 수초, 물풀에 낀 이끼를 갉아 먹는 올챙이, 무서운 턱으로 올챙이를 뜯어먹는 잠자리 유충, 진화해서 복수하듯 혀 미사일로 잠자리를 흡입하는 개구리, 기다란 몸뚱어리로 배배 꼬아 개구리를 씹어 먹는 무자치. 먹이사슬의 고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솔개 같은 상위의 포식자는 또다시 나타났고, 새로운 최상위의 포식자 또한 반드시 출현할 것이었으므로.
이렇듯 자연은 인간의 소소한 감정 따위가 끼어들 수 있는 차원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랬는데, 감정만 배제된 실리와 편익이라는 재화가 개입하고부터 문제는 달라졌다.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그 재화를 위해서 인류는 쓸모의 유무,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자연 속으로 언제든지 침입하거나 마음껏 활용하여 문명을 발전시켜 나갔다. 결국 인간이 약육강식의 최고 승리자로 등극해 버렸다. 먹이사슬의 고리를 싹둑 끊어내고서 말이다.
자연은 말할 수 있는 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생존을 위한 섭취 도구로서의 입은 부당하다고 항의할 수도, 아프다고 절규할 수도 없었다. 그저 변으로 플라스틱을 배출시키거나 멸종되는 순서를 밟아나갔다. 종국에는 지구 곳곳에 거대한 싱크홀을 만들고 계절과 상관없이 기후를 돌변시켰다.
환경학자들은 말한다. 이제 인간이 어떤 시도를 하더라도 환경은 복원될 수 없다고, 더 이상 회생 불가라고. 너무 많이, 또 너무 빨리 말하고 싶어서 스마트폰에 AI까지 끌어들였는데, 입이 없는 것들이 말없이 죽어간다. 이대로 가다가 우리의 입 또한 말할 수도, 먹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면 그때야 비로소 모든 게 끝나는 걸까. 무자비하게 틀어막은 입의 대가가 가늠조차 되지 않아서 너무 두려운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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