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재명은 누구? 공장노동자에서 인권변호사, 그리고 대통령까지

경북 안동 화전민 출신으로 초등학교 이후 상경…경기 성남서 불우한 성장기
학교 대신 소년공 생활로 왼팔 장애…주경야독으로 사법고시 합격, 인권 변호사 길
사법리스크·흉기 피습 등 위기도…총선 압승 및 계엄 해제·탄핵 정국 주도 리더십 보여

배우자 김혜경 여사와 큰 아들
배우자 김혜경 여사와 큰 아들
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인
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인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모습. 그해 4월 말 고입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해 8월 합격했다. [이재명 후보 측 제공.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1대 대선에서 당선을 확정 짓고 새롭게 '흙수저' 성공 신화를 썼다. 이 후보는 어려운 가정환경 속 공장 소년공에서 인권 변호사, 정치인, 그리고 대통령까지 드라마틱한 삶의 궤적을 그리게 됐다.

이 후보는 4일 02시 40분 개표 94.84% 기준 48.86%를 득표하면서 당선을 확정지었다.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p) 차이로 석패했던 것을 마침내 설욕한 셈이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싸워온 삶이었다. 경북 안동의 화전민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만 12살 때 경기 성남으로 이주했고, 어려운 가정환경 속 영세공장에서 소년공 생활을 했다.

최근 펴낸 자서전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경기도 성남의 시장통 공중화장실을 청소하고 휴지를 팔아 번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가족은 시장에서 버린 썩은 과일로 배를 채우며 살았다.

이 후보는 시계공장에서 독한 약품을 다루다 후각을 잃기도 했는데 2017년 대선 출마를 그 공장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또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 일할 당시에는 프레스에 끼인 팔이 구부러져 평생 장애를 안게 됐다.

그는 자신을 괴롭혔던 가난을 오히려 '살아야 한다'는 원동력으로 삼아 공장에서 일하며 주경야독으로 고입·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장학금을 받고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다.

이 후보는 대학 시절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마음먹고, 사법고시에 도전해 1986년 합격했다.

그는 특히 연수원(18기)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의를 듣고 노동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성남에서 시민운동을 하다가 열린우리당(민주당 전신)에 입당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2008년 총선 낙선 후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에 당선돼 재선까지 성공했다. 시장 시절 무상 교복, 공공산후조리 지원, 청년 배당 등 보편적 복지 사업 등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발언을 쏟아내며 존재감을 키웠다. 기세를 이어 2017년 대선 경선에 도전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패했고,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승리했다.

경기도지사로 정치적 입지를 다진 뒤 2021년 대선 경선을 뚫고 마침내 본선에 올랐지만 진보 진영 단일화 실패 등으로 아쉬운 결과를 받았다.

이 후보는 정치적 휴식기 대신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로 원내 입성했고 당 대표까지 올랐다. 다만 윤석열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 사법리스크로 어려움을 겪었고 국회 체포동의안이 가결되기도 했다.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기각으로 기사회생한 그는 지난해 1월 2일 부산 가덕도신공항 부지 방문 도중 흉기 피습을 당하면서 생명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복귀 후엔 총선 압승을 이끌면서 대권 주자 지위를 공고히 했다.

당 대표 연임에도 성공하며 강력한 대여 투쟁을 선봉에서 이끌었고, 특히 12·3 비상계엄 해제와 탄핵 국면에서도 리더십을 보였다.

1심 유죄를 선고받은 공직선거법 재판도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아 사법리스크도 일부 해소되며 고비를 넘었다. 선거 직전 대법원 파기 환송으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재판이 선거 이후로 밀렸고, 본선에서 마침내 승기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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