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거, 현재, 미래는 추상적인 시간 범주로 막연한 개념이다. 물리적으로 방문할수도, 존재를 입증하기 어려운 시간 표현을 영어와 한국어에서는 세 시제로 구분해 표현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우리 삶에서 당연한 구획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시간을 매개변수로 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영어와 한국어에서는 미래를 앞에, 과거를 뒤에 둔다.
하지만 볼리비아와 페루의 약 300만명이 사용하는 아이마라어는 반대로 과거를 앞에, 미래를 뒤에 두는 방식으로 시간을 표현한다. 과거는 이미 경험했고 아는 것이며, 미래는 보이지 않고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시간이 어떻게 공간을 통과하는지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며, 이 차이가 언어에 반영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시간의 서술과 표현은 문화와 언어에 의해 매개되며, 여러 절멸 위기 언어를 통해 이를 서술하는 방식이 인구 집단마다 독특하다는 사실 또한 뚜렷해지고 있다.
#2. 1911년 미국 인류학의 창시자 프란츠 보아스는 이누이트어에 영어 단어 '눈'(snow)과 관련된 낱말이 적어도 네 개는 있다고 밝혀내며 대중의 주목받았다. 실제로 그린란드에 사는 이누이트족은 살면서 여러 종류의 눈을 맞닥뜨리기 때문에 '눈'을 '카나'(qana·내리는 눈), '피크시르포크'(piqsirpoq·떠다니는 눈), '키무크수크'(qimuqsuq·이미 떠있는 눈), '아푸트'(aput·땅 위에 있는 눈) 등의 단어들로 세분화해 지칭한다. 눈을 중심으로 행동과 계획을 조율해야 하는 이들의 생활 양식상 다양한 형태의 눈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눈과 접할 일이 거의 없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부족의 언어에는 이를 가리키는 다양한 어휘는 물론, 눈을 표현하는 기본적인 낱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보아스의 눈 낱말 연구는 언어를 구사하는 자의 구체적인 사회적 필요와 환경이 언어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언어는 인간 만의 가장 유별난 특징 중 하나이다. 언어에 대한 인류의 이해가 깊어질수록 인간에 대한 통찰 역시 더욱 풍부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언어학자들은 우리의 인지 경험이 다양한 언어들을 통해 어떻게 반영되는지 탐구해나가고 있다.
언어의 다양성에 주목하는 언어학자이자 인류학자 케일럽 에버렛의 이번 신간은 전 세계 언어들 중 특히 아마존, 동남아시아, 태평양, 오세아니아 등지의 언어들을 면밀히 들여다본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7천개가 넘는 언어가 있지만, 영어를 비롯한 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편중된 관점을 지적한다. 나아가 언어가 삶의 방식과 인식을 형성하는 데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며, 오랜 시간 긴밀히 연결돼왔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인류학자이자 언어학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아마존 밀림에서 보낸 그는 원주민 공동체와 함께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언어마다의 독특한 특징과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누구보다 깊게 이해한다. 책에선 언어마다 기본색을 표현하는 방식, 빨간색과 파란색의 사용 빈도 차이, 냄새를 설명하는 어휘 등 실증적인 예시를 바탕으로 우리가 당연시해온 언어의 인식 체계와 물리적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한다.
앞으로 이뤄질 다양한 언어 연구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언어 소멸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심각하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다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교육, 정보 접근, 노동시장 참여에 유리한 구조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소수 언어를 포착하지 못할 경우, 언어의 획일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에버렛과 같은 학자들이 다양한 언어를 여러 방법으로 기록하고 연구해나간다면, 우리는 '사고의 다양성'을 지키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풍성한 이해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376쪽, 2만2천원.

댓글 많은 뉴스
홍준표 "김문수 패배, 이준석 탓·내 탓 아냐…국민의힘은 병든 숲"
"尹이 홍준표 국무총리, 유승민 경제부총리, 이준석 당대표 체제로 운영했다면…"
김문수 '위기 정면돌파', 잃었던 보수 청렴 가치 드러냈다
李 대통령 취임사 "모두의 대통령 되겠다…분열의 정치 끝낼 것"[전문]
안철수 "이재명, 통합한다더니…재판 중단·대법관 증원법 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