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5월 8일 어버이날. 119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신고를 한 건 아들이었다. 당시 22살이던 이 청년은 10년 전부터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홀로 돌봐왔다. 심리적·경제적 압박을 버티지 못한 끝에, 아버지를 방치하면서 '간병살인'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다.
이 사건은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년들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한때는 '소년소녀가장'이라 불리며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청년들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난 것이다.
이들의 고통스러운 삶은 현재도 여전하다. 대구의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은 술에 취한 어머니 대신 여덟 살 지적장애 동생을 챙기느라 지각하고 있다. 시력을 잃은 아버지의 병원 동행을 위해 학교를 결석해야만 하는 고등학생도 있다.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의 청소년들은 아픈 가족을 위해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조사에 따르면 돌봄청년(311명) 중 절반 이상이 일상생활 도움과 생계비를 부담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이 전부인 돌봄청년들은 또래처럼 미래를 계획하는 일도 쉽지 않다. 건망증을 앓는 어머니의 분리불안으로 인해 그 딸은 희망하는 대학교를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것이 사치에 가깝다는 대학생도 있다.
이렇게 가족돌봄에 내몰린 청년(13~34세)은 지난해 2월 기준, 대구에 5만1천여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설문조사에서 도출된 돌봄청년 추정 비율을 지역 인구에 적용해 산출한 수치다.
2022년 초 정부가 가족돌봄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을 발표했지만, 정책은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지원 대상을 소득 기준으로 제한하고, 이들을 지원할 인력과 전담기구는 부족하다.
매일신문은 지난 한 달간 초록우산 대구지역본부의 도움을 받아 가족을 부양하는 돌봄청년 8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하루에 반나절 이상을 돌봄에 쓰며 청춘을 반납한 이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봤다. 이를 바탕으로 돌봄청년의 지원제도의 문제점, 해법을 담은 시리즈를 4회에 걸쳐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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