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저마다의 무기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역사는 아무리/더러운 역사라도 좋다/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김수영, '거대한 뿌리' 중에서)

어김없이, 또 6월이다.

식민과 해방의 조국, 같은 민족끼리 총구를 겨눴던 비통의 전쟁, 4·19 반독재 민주주의의 외침이 쩌렁댔던 땅에서 짧은 생을 살다 간 시인이 있었다. 위의 시는 그 시인, 김수영이 1964년에 쓴 작품이다. 소시민적 태도에 대한 반성, 자유가 억압된 세상을 향한 항거, 지식인의 고뇌에 대한 주제를 주로 다뤘던 그에게 있어서 시란 온몸을 내던져서 정제해 올리는 결정체였다. 어쭙잖게 머리를 굴리거나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온몸을 풍덩 던지고 바닥 끝까지 내려가서 가지고 올라오는 순수 결정체.

이처럼 작가는 저마다의 쓰는 방식이나 비결을 가지고 있다. 특별한 방법이라고 해 봤자 몇 대째 내려오는 맛집의 비법 같은 것이 아니다. 괜찮은 소재를 착목하는 방법, 좀 더 문장을 잘 풀어가도록 도와주는 온도나 습도, 책상과 조명 같은 주변 환경 등의 소소한 요소들이다. 얼핏 시답잖은 조건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에게 이런 요건은 아주 예민하고 중요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작가의 무기가 바로 '감각'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물, 시대와 세상을 습자지보다 얇고 미세한 감각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문자로 전환 시키는 일을 매일 해야 하는 직업이니까. 그런 무기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요건이 중요하지 않다면 세상에 그 무엇이 소중할까.

작가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그런 무기를 하나씩 들고 살아간다. 농부에게는 매일 농작물에 들려줄 바지런한 발소리, 가수 지망생에게는 몸이 부서지도록 노래하고 춤추는 연습, 선생님에게는 명확하고 확실한 지식과 전달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 무기는 급변하는 세상에 발맞추어 항시 갈고 닦아서 업그레이드 시킨다. 마치 경쟁력을 키우는 것처럼.

시인 김수영에게 삶은 서슬 퍼런 죽음의 광장에서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온몸이라는 무기를 장착한 채 말이다.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진창이라도' 기꺼이 온몸을 내던져서 썼기 때문에 김수영의 시는 우리에게 온몸의 사랑으로 절절하게 전해져 온다. 그의 무기는 결국 옳은 것이었다.

시인은 1968년 6월에 죽음을 맞이한다. 또 6월이었다. 6월은 우리 민족에게 두렵지만 정의로웠고, 아프지만 찬란했던 역사였다. 그 역사를 온몸으로 부딪치고 이끌어서 우리 앞에 갖다 놓아준 사람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도록, 저마다의 무기를 잘 갈고 닦으며 살아가는 날들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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