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새벽 제주의 한 중학교 창고에서 40대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흡연, 무단결석 등 일탈행위를 해 온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학생 가족으로부터 지속적인 항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에 많게는 12차례씩 민원 전화를 받아야 했다. 오전 6시 또는 자정에 전화가 오기도 했다. 유족은 고인이 학생 가족의 민원으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2023년 7월 민원에 시달리던 교사가 교내에서 목숨을 끊은 '서이초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 다 돼 가지만 교육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사건 당시 교육 당국은 교사들의 '악성 민원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교권 회복·보호 강화 종합 방안'을 발표했다. 학교마다 교감, 행정실장 등 5명 내외로 구성된 '민원대응팀'을 만들어 모든 민원을 학교가 대응하는 체제로 바꾸는 게 골자였다. 학교에서 해결이 되지 않으면 교육청에서 해결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교사 개인이 모든 민원을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학사 일정 등 단순한 문의는 민원대응팀에서 담당할 수 있어도 학생 생활지도, 수업, 평가 관련 문의는 담임 교사를 배제하고 진행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지역 교사들은 "민원대응팀이 형식적으로는 꾸려져 있더라도 결국 모든 민원을 받아 내야 하는 건 교사다"고 토로했다.
수업 시간과 퇴근 후 민원에 시달리지 않고 개인정보 노출을 최소화하도록 학교 번호로 통화하는 '교원 안심번호 서비스'도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안심번호를 제공하더라도 교사의 개인 전화와 연동하는 시스템이라 교사에게 직접 오는 연락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 교사가 업무 시간을 설정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책임감, 압박 등의 이유로 시간을 가리지 않고 오는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직을 떠나는 교사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교육부의 '최근 5년간 국공립 초·중·고 퇴직 교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작년에 퇴직한 경력 10년 미만 교사는 607명이었다. 2020년 459명에서 2021년 463명, 2022년 526명, 2023년 566명으로 꾸준히 늘다 작년 처음 600명을 넘겼다. 지난해 명예퇴직 등으로 교단을 떠난 교사도 7천500명으로 최근 6년 새 최고치를 기록했다.
교사들은 개인이 악성 민원을 홀로 감내하지 않도록 교사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교 민원대응팀의 실질적 운영을 통해 개별 교사의 대응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반복·부당 민원을 학교장 권한으로 종결하는 등 악성 민원인을 통제할 수 있는 근거를 법령으로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 악성 민원을 강력하게 제재하는 방안 없이는 반복되는 교권 침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 교육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 자료가 갖춰지더라도 교육 활동을 최종적으로 수행하는 건 교사라는 의미다. 그런 교사들이 악성 민원으로 교육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면, 교권 침해로 하나둘씩 교단을 떠나게 된다면 결국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갈까? 교사 사망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교육 당국이 내놓는 재발 방지책이 공허한 메아리로 그쳐선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댓글 많은 뉴스
대구 한 호텔서 투숙했다 봉변…불 켜보니 "진드기 100마리"
송언석 "사이비 호텔경제학의 대국민 실험장…절반이 현금 살포"
"나 없어서 좋았다면서요?" 李 대통령이 건넨 농담 화제
김민석 "주진우 법무장관? 의미있는 추천"…주진우 "조국 사면 안하면 수락"
국민의힘 '김민석 사퇴' 공세 압박…"현금 6억 재산신고 누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