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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05>긍재 김득신의 사경풍속화 명작, '귀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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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김득신(1754-1822),
김득신(1754-1822), '귀시도(歸市圖)', 종이에 담채, 27.5×33.5㎝, 개인 소장

장터로 향하는 길인지, 장보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행렬인지 아리송한데 제목은 '시장에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귀시도'다. 마소 1마리씩을 앞세운 10명은 전문적인 장꾼이 아니라 장날에 맞춰 각자 볼일을 보러 나선듯하다.

겉옷으로 포(袍)를 차려입고 장죽을 든 양반님도 둘, 몸집이 작은 아이도 둘 보인다. 머리에 함지를 이고 긴 작대기를 짚은 여성은 치마를 깡총하게 묶어 올렸고 무릎 아래로는 행전(行纏)을 둘렀다. 모두 행전을 친 차림새라 길이 먼 것을 알 수 있다. 한쪽 어깨에 가볍게 짐을 멘 양반 둘 외에는 대부분 등짐을 졌다.

한참 다리를 건너는 모습이다. 시냇물이 사선으로 비껴 흐르는 가운데 반대편으로 완만하게 휘어지는 다리를 그린 엑스(X)자 형 구도다. 얼기설기한 굵은 받침기둥과 상판의 힘찬 붓질, 다리 초입에 자리 잡은 시커먼 바위, 물 위로 솟은 돌 등 화면의 아래쪽은 먹색이 강하다. 반면 위쪽은 흐린 먹점으로 대략 얼버무려 아스라한 공간감을 주며 행렬에 눈길을 집중시키게 한다.

느슨한듯하면서 빈틈없는 구도와 세심한 관찰의 결과인 자연스러운 인물 묘사, 먹색의 강약과 담채의 노련한 활용, 김득신 특유의 절도가 있으면서도 여유 있는 필치 등 밀도 높은 회화미를 보여주는 화면이다. 연푸른 담채로 슬쩍슬쩍 바림한 넓은 시냇물과 아무렇지 않은 듯 슥슥 그은 물살은 더욱 고수의 솜씨다.

풍속 인물과 배경 산수가 하나로 무르녹아 조선 후기 풍속화가 도달한 높은 예술적 경지를 잘 보여주는 사경(寫景) 풍속화 명작이다. 풍속화가 옛사람의 삶에 감정을 이입하게 하는 역사적 재미가 있다면 사경풍속화는 거기에 공간적 맥락이 부여됨으로서 무한한 자연 속의 유한한 인생을 관조할 수 있게 한다.

위창 오세창 선생은 "긍재 김득신이 그린 풍속도는 세상에 많지 않은 작품이다. 사람들은 모두 김홍도의 풍속도를 첫손가락에 꼽지만 복헌 김응환 선생의 연원에서 같이 나왔으니, 마땅히 함께 귀중한 것이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김응환은 김득신의 큰아버지다. 김득신 직계만 해도 아버지부터 아들, 손자까지 4대에 걸쳐 10여 명의 화가를 배출한 그림 명문이다.

김득신은 이전까지 어느 누구도 의미 있게 여기지 않았던 서민들의 삶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툇마루에 앉아 돗자리를 짜다 병아리를 채가는 도둑고양이를 쫓는 영감님, 주막의 골방에 모여 않아 투전으로 가산을 탕진 중인 중년 남성들, 길을 가다 나귀 탄 양반님을 만나자 구십 도로 허리를 꺾으며 인사하는 부부, 나뭇짐 가득한 지게를 벗어놓고 고누놀이 하는 소년들, 소나무 아래서 장기 두는 스님들, 여름날 저물녘에 사립문 앞에 앉아 짚신 삼는 가장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와 손자 등 긍재 김득신은 조선인의 삶을 회화로 승화시켰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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