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저 소리를 산길에서 들을 때마다
내 가슴엔 철부지 아이들이 문득 몰려들어
골목길을 누비듯 뜀뛰기 시작한다
초록의 건반 위로 튕겨 오르는 소리 몇 점
산기슭에 부딪쳐 숲의 고막을 터뜨려 놓는다
처음 귀를 열면 설렘 같은 울림이
다시 귀를 기울이면 어떤 멍울 같은 그리움이
암청색 물감이 되어 숲에 울컥, 엎질러진다
이 여름의 고요한 숲
혼탁한 세월이 갈라놓은 내 반쪽 그 소리에
쪼개어진 푸른 심장을 그와 맞추며
나는 꿈을 품은 온전한 아이로 다시 태어난다
메마른 세상에 미지의 별 하나가 떨어져
얼어붙은 내 가슴을 풀빛 주먹돌로 치는 소리
뻐꾹 뻐버꾹
◆시작(詩作)메모
갑갑한 회색의 도시에서 벗어나 여름 산길을 거닐 때면 문득 귓불에 와 닿은 정겨운 새소리에 나는 잠시 발길을 멈춘다. 뻐꾸기 소리! 산허리 어디쯤엔가 들려오는 그 소리는 어릴 적부터 고향의 뒷산에서 익히 들어온 울림이건만, 마치 처음 듣는 소리처럼 미시감으로 받아들여져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낀다. 어린 시절, 뻐꾸기 소리를 듣고 그를 찾으려 풀숲을 헤매었다는 영국 시인 워즈워스, 신비한 초록 지팡이를 찾기 위해 숲속을 헤맨 어린 톨스토이처럼 나도 그 꿈의 소리를 따라 숲속 여기저기를 떠돌고 싶었다.
언제나 세월은 쉼 없이 흘러갔고 바쁜 일상 속의 나날은 뭇별들을 바라보며 신비한 은하에 불시착하고 싶은 유년의 꿈마저 잊게 했다. 그동안 온갖 먼지에 찌든 세상살이를 해오면서 어린 시절 가슴에 품었던 그 꿈과 동경의 소리는 둘로 쪼개어지고 말았다. 내 꿈의 반쪽은 어디에 있을까? 이 동경과 설렘이 시들어버린 삶에서 이제 본연의 풋풋한 자아를 회복하고 싶다는 녹색 갈증에 사로잡힐 즈음, 때마침 여름 산의 숲길에서 뻐꾸기 소리를 듣게 되었다.
속되고 얼룩진 세월은 그 꿈의 소리를 쪼개어 완강히 봉합해 버렸지만, 그 망각의 바늘자국 사이사이의 미세한 틈으로 뻐꾸기 소리가 새어 나와 내 메마른 영혼을 어루만져 줌은 어찌 된 일인가. 그렇다, 내가 잃어버린 순수한 꿈의 반쪽, 저 뻐꾸기 소리는 나의 다른 반쪽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내 쪼개어진 반쪽의 심장을 그 소리와 맞추며 나는 꿈을 되찾은 온전한 아이로 다시 태어난다. 아니, 별빛 눈부신 미지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순백의 아이로 재생하고 싶은 소망에 사로잡힌다.

◆약력
- 1992년 '시와시학' 신인상(시)
-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평론)로 등단
- 시집 '그 강변의 발자국' 외, 평론집 '존재의 놀라움'
- 금복문화상, 대구문협 올해의 작품상,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 대구가톨릭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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