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우탁의 외교 전선] '100억달러 내라' 트럼프의 안보청구서…전략적 대응?

주한미군의 어제와 오늘…미군철수와 '에치슨 라인' 직후 北 전면남침
무역과 안보 엮은 새로운 트럼프 압박…'전략적 공간' 확보해야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시 주한미군 기지에서 미군 스트라이커 장갑차가 대기하고 있다. 댄 콜드웰 전 미 국방장관 수석 고문은 연구 보고서를 통해 주한미군 가운데 약 1만명만 남기고 한반도에서 철수해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 국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시 주한미군 기지에서 미군 스트라이커 장갑차가 대기하고 있다. 댄 콜드웰 전 미 국방장관 수석 고문은 연구 보고서를 통해 주한미군 가운데 약 1만명만 남기고 한반도에서 철수해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 국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이우탁 칼럼니스트
이우탁 칼럼니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안보 청구서'가 한국을 뒤흔들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금을 한꺼번에 5배로 인상해 100억달러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은가하면 워싱턴 정가에서는 주한미군 철수(감축)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미국에 수출되는 한국 상품에 대해 25% 관세를 적용하겠는 서한을 발송해 한국 경제를 위협했다. 달라진 미국의 세계전략과 예측불허의 트럼프의 행동이 결합되면서 주한미군은 물론이고 한미동맹의 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실정이다.

◆ 미국의 전후 세계전략과 주한미군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패권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주적' 소련을 정점으로 한 공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해 새로운 동맹 체제를 구축했다. 양 지역의 핵심 거점 동맹은 패전국 독일(서독)과 일본이었다. 하지만 양 지역의 특성은 매우 달랐다.

유럽 국가들의 경우 19세기부터 산업화가 진행돼 각 국가간 수준이 대체로 비슷했고, 전범국 독일의 분단과 함께 미국 주도로 집단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순조롭게 결성됐다.

하지만 세계대전이 끝난 뒤 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정부 수립과 생존이 최대과제였다.

산업화가 제대로 진행된 나라도 없었다. 특히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중국내 내전 상황이 지속되면서 미국은 정교한 아시아 정책을 구사하지 못했다.

결국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중국 공산당이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를 몰아내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한반도 정책도 일관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여파는 한반도 남쪽에 진주한 미군에도 밀려들었다.

일본의 항복에 따라 미군은 한반도 중앙의 38도선 이남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1945년 9월 8일 인천으로 들어왔다.

첫 병력은 존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국 제 24군단 소속 미군 제7보병사단이었다. 그리고 9월 29일에는 미국 제 40사단이 부산에, 10월 8일에는 미국 제 16사단이 목포에 도착했다.

1945년 11월말 당시 주둔한 미국 제24군단 병력수는 약 7만명이었다. 38도선 이북의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서는 소련군이 진주했다.

유엔의 감시 속에 남한에서 총선이 치러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북한 정부는 9월9일 세워졌다. 양쪽 정부 수립이후 미국과 소련군 철수가 현실화된다. 미군은 1949년 한국군 훈련을 위한 자문병력 500명만 남겨둔 채 철수를 완료했다.

미군의 철수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따른 조치이기도 했다. 특히 1950년 1월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설명하면서 "미국의 방어선은 알류샨 열도를 따라 일본에 이르고 그 뒤엔 류큐 제도로 뻗는다. 이어서 필리핀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훗날 '애치슨 라인'으로 불리는 이 방어선에서 남한이 제외된 것이다. 1950년 1월 26일 당시 댈러스 미 국무부 고문이 방한했을 때, '대한민국을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 또한 거부됐다. 미군의 철수, 그리고 에치슨 라인은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다. 1950년 6.25전쟁(한국전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한국전쟁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전환점이었다. 3년간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치른 결과 아시아에서의 냉전 구조는 유럽보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공산주의 위협에 놀란 아시아 각국은 서둘러 미국과 양자동맹을 체결했다. 한국은 전후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통해 군사동맹체제를 구축했다.

북한의 전면 남침 직후 미국은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 소집해 결의안을 통과시켜 한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결정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미군의 파병을 공식 명령했다. 한국전쟁 기간 중 미국은 제8군, 1·9·10군단, 1기병사단, 2·3·7·24·25·40·45 보병사단, 1해병사단, 5·29보병연대전투단, 187공수연대전투단, 80개 보병대대, 54개 포병대대, 8개 기갑대대를 투입했다. 전쟁 기간 동안 총 178만9천여명이 참전했고, 3만6천940명이 전사하고, 9만2천134명이 부상했으며 3천737명이 실종되는 등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한국이 배제된채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인 1954년에 미군은 5개 사단, 1956년에 1개 사단이 철수했다.

그 결과 주둔군 규모는 6만명(실질 주둔병력은 5만8천명 내외)으로 조정됐다. 이후 두 번의 변곡점에 따라 주한미군 규모에 변화가 생긴다.

더 이상 세계경찰이 아니라며 아시아 국가들은 스스로 방위해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에 따라 1971년 3월 미 제7사단이 철수했다. 병력규모가 4만3천명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소련 봉쇄를 위해 중국과 전격적으로 손을 잡은 미국의 세계전략이 바탕에 깔린 것이었다.

1977년 집권한 지미 카터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내세웠다. 이에 따라 미 국방부는 제2사단을 포함한 제1군단 철수를 결정했다. 그러나 당시 박정희 정부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명분으로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그 결과 미국 의회 결의 등이 나온후 카터는 1978년 주한미군 철수계획을 수정했다. 한미연합사도 그해 결성됐다. 당초 일정대로 비전투부태 재배치를 수행하되 철군 대상 병력을 조정한 것이다.

현재 주한미군의 규모는 2만8천500명 수준이다. 독일 6만9천명, 일본 4만명에 이어 한국에 3번째로 많은 미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군 군사전략의 변화와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이 있었지만, 한반도 주둔병력 규모는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2019년 미국 의회는 국방수권법에 따라 주한미군을 2만2천명 이하로 축소시키려면 미국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2020년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서 다시 주한미군 규모가 2만8천500명으로 상향됐고, 이후 해마다 공개된 국방수권법에 주한미군의 규모는 현재의 수준을 유지한다는 내용이 담기게 된다.

주한미군의 주둔비는 1991년 이전까지는 주한미군지위협정에 따라 미국이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해오다 미국의 재정악화와 한국의 경제력 성장을 이유로 양국이 특별조치협정(SMA)를 맺어 비용을 분담했다.

비교적 큰 문제없이 물가인상률 등을 감안해 한국의 분담비를 책정했으나 예측불허의 도널드 트럼프 등장이후 큰 변화를 겪는다. 물론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에 따른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다가온 일이기도 하다.

◆'100억달러 내라'는 트럼프, 한국의 전략적 대응은

"한국이 100억 달러는 내야 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회의에서 주한미군을 언급하면서 한 발언이다. 트럼프의 발언 내용이 자세히 전해지면서 한국내에서 큰 파장이 일었다.

지난해말부터 비정상적인 한국 사정을 감안해 미뤄뒀던 본격적인 '코리아 청구서'를 내민 것으로 인식돼서다.

그는 집권 1기때부터 반복적으로 '한국 안보 무임승차론'을 거론했다.

2019년 11차 SMA 협상 당시 트럼프는 한국에 50억 달러(당시 약 5조7천억원) 인상을 요구했다. 그해 한국이 낸 분담금의 5배 이상을 한꺼번에 올려달라는 요구였다. 이 때문에 협상은 난항을 겪다가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인 2021년 3월에서야 타결되는 곡절을 겪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다시 집권하자마자 이번에는 '100억달러를 내라'고 한 것이다. 특히 이날 발언은 관세를 언급하는 도중 나온 점이 눈길을 끈다.

이미 전날에 '모든 한국산 상품에 다음달 1일부터 25% 상호관세를 부과한다'는 서한을 공개한 트럼프다. 결국 무역과 안보 양면에서 한국을 본격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함께 주한미군 감축 주장도 어김없이 제기됐다. 워싱턴 DC의 싱크탱크 '국방 우선순위(Defense Priorities)'의 제니퍼 캐버노 선임연구원과 댄 콜드웰 전 미 국방장관 수석 고문은 9일 공동 보고서에서 현재 약 2만8천500명 수준인 주한미군 중 지상 전투 병력 대부분을 철수하고 약 1만명 정도만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명분은 동아시아에서 미군의 태세를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 국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패권도전국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일부 철수, 또는 재배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미중패권경쟁이라는 세계적 차원의 안보공간은 물론이고 북한으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 한국의 안보상황에서 주한미군의 존재와 역할은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중대하다.

당연히 다양한 대응전략이 논쟁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필자는 비즈니스 논리로 무장된 트럼프의 언어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전략적인 대응을 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특히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미 국방부는 현재 전 세계에 배치된 미군의 태세를 점검하며 새 국방전략(NDS) 발표를 앞두고 있다.

대만 해협 등에서 중국과 충돌할 경우를 상정해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재배치와 주둔비 분담 등이 변수가 되는 것이다.

미국이 가장 의식하는 상대는 패권경쟁을 벌이는 중국인 만큼 미국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략적 가치를 부각시키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의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해외주둔 최대, 그리고 첨단 미군기지인 평택기지의 전략적 중요성을 활용하는 전략이 질실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평택기지 부지 무상제공은 물론이고 연합훈련 인프라나 주둔 미군가족에 대한 각종혜택 등 한국이 실질적으로 기여한 비용을 잘 정량화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방위비 협상을 방산 협력과 연계하는 방안도 거론하는데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안보이슈를 통상이슈와 결합하는 만큼 한국도 통상산업 분야의 협상전략을 면밀히 검토해야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은 없을 것이다. 다만 국민들이 납득할 전략적 대응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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