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초대석-김영수] 천추의 한으로 남을 대북방송 중단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한에서 자유의 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그대로 두면 자유는 완전히 질식할 것이다. 기막힌 건 그렇게 만든 게 대한민국 정부라는 사실이다.

이달 들어 국정원은 대북 라디오 5개와 TV 방송 1개를 전부 껐다. 대북방송 50여 년 역사에서 초유의 사태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 때도 계속됐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자 빛의 속도로 사라질 판이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의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도 트럼프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중단됐다. 그 결과 5월 이후 북한에 유입되는 외부 라디오 방송은 하루 총 415시간에서 89시간으로, 약 80%나 급감했다.

신임 이종석 국정원장은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 설계에 관여했고, 노무현 정부의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대북 유화책을 지지하는 대표적 자주파다. 국정원의 신임 기조실장, 감찰실장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 변호사들이다.

민변은 2016년 중국의 북한 식당 종업원 12명의 탈북이 협박에 의해 강제된 거라며 이병호 전 국정원장을 강요죄, 체포·구금죄로 고발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기자회견 때 "안보실과 국정원에 여러 가지 얘기를 해 놓았다"고 했다. 대북방송이 중단된 건 그 이후였다.

이재명 정부 들어 군의 대북 확성기도 끄고, 민간의 대북 전단 살포도 금지했다. 이 대통령은 대북 전단을 "이제 강력하게 처벌"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23년 대북 전단 살포가 북한 인권 활동이자, 표현·결사의 자유에 속한다고 판결했다. 정부는 북한 인권을 담당하는 통일부 인권인도실은 '국'으로 축소하고, 탈북민 정착 업무는 행정안전부나 보건복지부로 이관하고, 북한인권보고서도 비공개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긴장 완화라지만 일관되게 북한으로 향하는 자유의 소리를 막고, 처참한 수준의 북한 인권에 눈감는 조치들뿐이다.

탈북자들 증언에 따르면, 엄청나게 많은 북한 주민이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대북 방송을 듣고 있다. 시계를 맞춰놓고 시청한다. 그걸 통해 잠깐이나마 자유의 숨을 쉬고, 인간으로 산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그 방송들이 특별히 북한 체제를 비난하거나 선동하는 게 아니다. 사실을 그냥 있는 그대로 전했을 뿐인데, 오히려 그게 북한 사람들의 감수성을 크게 자극했다고 한다. '6시 내고향'을 보고 탈북을 감행한 사람도 있다.

국정원의 라디오는 북한 주민 전체, TV는 70% 이상 주민에게 닿았다. 그 규모나 범위에서, 민간 방송이나 대북 전단의 영향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북한 당국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 정권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제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를 본 죄로 16살 학생들이 12년 노동교화형에 처해지는 영상도 있다. 북한군 내부에도 한국 드라마나 노래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북한 당국에게 가장 두려운 게 바로 '사실'이다. 사회 전체가 거짓으로 잘 감싸져 있기 때문이다. '진실'이 죽은 사회에서는 '사실'이 가장 위험하다. 그래서 대북 방송은 북한핵 보다 더 강력한 비대칭무기라는 평가도 받는다. 북한 당국이 한국 문화의 유입을 생사의 문제로 보고 대처한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뜻밖의 선물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사실상 가장 강력한 안보수단을 스스로 버린 셈이다.

대북 방송 중단보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을 잘 보여주는 지표는 없다. 한 탈북자의 지적처럼 "국정원 방송이 빠지면 북한은 김정은 독재에 갇힌 섬"이 된다. 끔찍한 조건에서 고통받는 2500만명의 북한 주민은 우리 정부의 관심사가 아니다. 인권은 물론 통일까지 포기할 태세지만, 북한의 반응은 싸늘하다.

28일,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이재명 정부가 아무리 "수선을 떨어도 한국에 대한 우리 국가의 대적인식에 변화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게 '헛된 망상'이라며 조롱했다. 당장 우리는 대북 협상의 레버리지만 잃었다. 언젠가 통일의 순간이 올 때, 북한 주민의 마음을 잃은 게 천추의 한이 될 수 있다. 나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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