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죽은 채권'까지 부활시켜 추심…금융위, '무분별 시효연장' 손 본다

금융위, 전문가 간담회 열어 개인연체채권 관리 실태 점검
"상환능력 없는 채무자에 일률적 압박...채무자도 고객이란 인식 필요"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가운데)이 29일 오전 서울 중구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채무자에 대한 채무상담 등 현장 경험이 풍부한 민간 전문가, 유관기관과 함께 개최한 개인 연체채권 관리 관련 현장 간담회에서 금융회사등의 개인 연체채궈 관리실태 파악 및 개선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금융위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가운데)이 29일 오전 서울 중구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채무자에 대한 채무상담 등 현장 경험이 풍부한 민간 전문가, 유관기관과 함께 개최한 개인 연체채권 관리 관련 현장 간담회에서 금융회사등의 개인 연체채궈 관리실태 파악 및 개선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금융위

금융당국이 사실상 상환 능력을 잃은 채무자들을 끊임없이 빚의 굴레에 가두는 금융권의 무분별한 소멸시효 연장 및 부활 관행에 제동을 걸기로 했다. 실업이나 질병 등 개인의 잘못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로 연체에 빠진 채무자들을 상대로 원금 회수 극대화에만 초점을 맞춘 현재의 채권 관리 시스템을 전면 수술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29일 오전 서민금융진흥원에서 권대영 부위원장 주재로 '금융권 개인 연체채권 관리실태 파악 및 개선방향 모색을 위한 현장 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에는 법률 전문가와 채무상담 전문가, 금융감독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서민금융진흥원, 신용회복위원회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연체채권 관리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간담회에서 전문가들은 현재의 연체채권 관리 시스템이 IMF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금융사의 재무 건전성 확보에만 치중한 나머지, 채무자의 재기를 가로막는 방향으로 굳어졌다고 지적했다.

금융사는 대출 연체가 발생하면 기한이익상실(EOD) 처리를 통해 대출금 전액 상환을 요구하고, 이후 모든 채무자에게 일률적으로 압박적 추심 절차를 적용한다. 상환 능력이 없는 채무자에게도 예외 없는 추심이 이어져 과도한 부담을 주고, 금융사 역시 실익 없는 관리 비용만 지출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

특히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 것은 '소멸시효 연장' 관행이다. 상법상 금융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이지만, 금융사들은 시효 완성을 앞두고 1만원 안팎의 저렴한 비용으로 지급명령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시효를 연장해왔다. 이로 인해 사실상 상환 가능성이 없는 '초장기 연체자'가 양산되고, 이들은 끝없는 추심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채권 매각 과정의 문제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사들은 연체채권을 자산관리사(AMC)나 매입채권추심업체에 매각하며 고객 보호 책임을 손쉽게 면하는 반면, 회수 가치는 극대화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채권이 '은행 → 저축은행/AMC → 대형 추심업체 → 소형 추심업체' 순으로 반복 매각되면, 상환이 더 어려운 채무자일수록 더 가혹한 추심에 노출되는 구조적 문제가 지적됐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부 대부업체가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에 대해 채무자에게 일부 상환을 유도해 시효를 부활시키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관련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최근 소멸시효 부활과 관련해 58년 만에 변경된 대법원 판례를 소개했다. 기존 판례는 채무자가 시효 완성 후 빚의 일부를 갚으면 시효의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지난 7월 24일 대법원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면서도 이익을 포기했다고 추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향후 '죽은 채권 되살리기' 관행에 제동을 걸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권대영 부위원장은 "실업, 질병 등 예측할 수 없는 사유에 기인한 채무불이행 책임을 모두 채무자가 부담하는 것은 과도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채권자와 연체 채무자의 대등하지 못한 권력관계를 전제로 채무자를 보다 두텁게 보호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해 나갈 것"이라고 알렸다.

권 부위원장은 그간 공공부문이 채무조정을 주도해왔으나, 이로 인해 금융권의 자체적인 재기지원 역량이 발전할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는 민간 금융사도 '연체 채무자도 여전히 금융사의 고객'이라는 시각으로 자체 채무조정과 재기지원에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위는 간담회에서 제기된 정책과제들을 검토하고 해외사례 등을 참고해, ▷소멸시효의 무분별한 연장 및 시효 부활 관행 제한 ▷금융사의 소멸시효 관리 내부 기준 마련 의무화 ▷소멸시효 완성채권 추심·매각 금지 등을 포함한 '개인 연체채권 관리 개선방안'을 마련해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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