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깊어가는 가을밤. 별빛이 쏟아지는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캠프파이어가 열렸다. 세계 각국에서 온 청년들이 화톳불을 둘러싸고 앉아 덴마크 청년 제이콥의 기타 반주에 맞춰 합창을 한다. '국경 없는 청년들'이란 모임에서 만난 러시아 청년 안드레이와 우크라이나 청년 미하일도 보인다.
둘은 만난 지 하루 만에 절친이 됐다. 국경을 맞댄 이웃은 필요조건, 우주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은 충분조건이다. 안드레이와 미하일은 맥주병을 가볍게 부딪치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나라가 없다고 상상해 봐/ 그건 어려운 일도 아니지/ 죽이는 일도 없고 목숨을 바쳐야 할 일도 없고/ (…)상상해 봐,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Imagine)이다. 둘은 노래를 부르면서 밤하늘의 별을 보는 습관까지 닮았다. (상상 속의 어느 날)
#2.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의 한 마을에서 백병전이 벌어졌다. 러시아 군인과 우크라이나 군인은 총격을 주고받다가 지근거리에 이르자 결국 육박전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우크라이나 병사가 단검에 찔려 크게 다쳤다. 조용히 숨을 거두고 싶다는 우크라이나 병사의 요청을 러시아 병사가 수락했다. 수류탄을 꺼낸 우크라이나 병사는 "엄마, 안녕"이라는 말을 남기고 자폭했다.
취재에 응한 러시아 병사는 우크라이나 병사의 요청을 수락한 이유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2025년 1월 5일 자 언론 보도 참조. 문제의 장면은 숨진 우크라이나 병사의 헬멧에 장착된 카메라에 담겼다.)
현재 유튜브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드론을 이용한 전투 장면이 넘쳐난다. 마치 실시간 중계를 보는 듯하다. 수풀을 헤치고 폐건물을 지나 붕괴된 터널 안으로 도망간 병사를 드론은 가차없이 쫓아간다.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어둠 한 자락은 죽음의 완성을 의미한다. 드론은 쓰러진 병사가 간절한 표정으로 손을 내젓는다고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일련의 장면을 보고 나면 구멍이 숭숭 뚫린 허탈감이, 좀더 시간이 지나면 뜨거운 분노와 차디찬 비애가 갈마든다. 과거의 전투에서는 서로의 눈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인간다움'을 지킬 여지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지금의 인간은 기계의 눈을 거쳐온 장면을 기계적으로 판별한다. 그럴 때 포착된 각기의 인간은 거대한 살상 무기의 부품으로 간주되는 게 아닌지. 인간의 행태가 기계의 메커니즘으로 대체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아니, 거의 실현됐다는 심증이 굳어지고 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저 영상을 우크라이나 병사의 가족이 보지 말았으면 하는 것. 무망한 노릇이란 걸 알면서도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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