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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석민] 외교적 수사(修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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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민 선임논설위원
석민 선임논설위원

영국의 시인이면서 외교관이었던 헨리 워튼은 "외교관은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 해외에 파견되는 정직한 인간이다"라고 간파(看破)했다. 때론 국익을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하지만, 상대국의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정직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는 이중성(二重性)을 잘 보여 준다. 프랑스 왕국 초대 총리를 지낸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는 직설적으로 외교적 수사의 교묘함을 이야기한다. 외교관이 "그렇습니다"라고 하면 "고려해 보죠"라는 의미이고, "고려해 보죠"는 "안 됩니다"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외교관이 아니다. 일본의 혼네·다테마에 문화의 대표 격인 교토식 화법(話法)과 상당히 유사하다.

국가원수 등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나 외교관이 국제 무대에서 사용하는 우회적이고 유화적인 수사법(修辭法)을 외교적 수사 또는 외교사령(外交辭令)이라고 한다. 아무리 작은 분쟁의 불씨라고 하더라도 합법적 무장 세력인 국가 간엔 언제든지 무력 충돌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탓에 '외교의 접대적 전통이 가지는 안전주의'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외교적 수사법을 무시해 비참한 종말을 맞은 대표적 인물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꼽힌다. 그는 미국에서 9·11테러가 벌어지자 "신의 응징이다!"라는 비외교적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국민은 분노(憤怒)했고 2년 뒤 이라크 전쟁이 벌어졌다. 말실수를 한 후세인 대통령은 전범재판에서 처형(處刑)됐고, 이라크는 초토화되고 말았다.

지난 1일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막을 내렸다. APEC 기간 중 무엇보다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한미 정상회담과 한중 정상회담이었다. 정부는 이를 통해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妥結)됐으며, "한중 관계를 전면적으로 복원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강조한다. 웃음꽃 피고 다정한 것 같은 정상회담 분위기를 생각하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외교적 수사와 교토식 화법의 특징을 잊어선 진실(眞實)에 접근하기 어렵다. 정말 한미·한중 정상회담이 성공적이었다면 양국 정상 간 합의문과 공동성명, 공동기자회견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은 그냥 "고려해 보죠"로 끝났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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