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생 안정이라는 목적으로 도입한 '단순가공식품' 부가가치세 한시 면세 정책이 장류(醬類) 산업을 붕괴 직전으로 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장·된장·고추장 등 장류가 단순 절임 식품과 동일하게 분류되면서, 장류 기업들이 매입세액을 환급받지 못하는 등 수백억원대의 누적 손실을 떠안는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14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지난 2022년 7월 당시 정부는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김치, 단무지, 젓갈 등과 함께 간장, 된장, 고추장을 부가세 한시 면세 대상에 포함시켰다.
해당 정책은 당초 2023년 말 종료 예정이었지만, 올해 말까지 연장됐다. 그러다 최근에는 정책을 상시 제도로 법제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 조치가 장류 기업들에게 '독'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장류 업계의 자료 및 의견을 종합하면, 현행 면세 구조 아래에서 장류 기업들은 제품 판매 시 부가세(매출세액)를 부과할 수 없다. 동시에 공장 신축, 발효·숙성 설비 구입, 포장재 매입 등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매입세액(10%) 역시 환급 받지 못한다.
결국 10%의 매입세액은 고스란히 기업의 비용 부담으로 전가 돼, 제조 원가를 끌어올리고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는 정상적으로 매입세액을 환급받는 타 식품 업종과 비교할 때 명백한 '역차별'이며, 세법상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현행 부가가치세법 시행규칙 제24조는 면세 대상을 '김치, 단무지, 장아찌...간장, 된장, 고추장 등 단순 가공식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장류는 원재료를 세척하고 절이는 수준의 '단순가공' 식품이 아니라고 업계는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콩을 찌는 증자 과정 ▷미생물을 배양하는 제국실 ▷6개월 이상 장기 숙성이 필요한 대형 발효조와 저장 탱크 ▷자동화 포장 설비 등 수백억원대의 투자가 이뤄지는 자본집약적 '장치산업(Process Industry)'이라는 것.
단순 절임 식품과 발효 기술이 필요한 장치산업 제품을 동일한 단순가공식품 범주로 묶은 것 자체가 행정적 오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면세 구조로 인한 피해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장류 제조업체들은 연간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매입세액을 환급받지 못해 현금 유출이 누적되고 있다. 재무 구조가 악화되면서 일부 중견·중소기업들은 신규 공장 증설이나 노후 설비 교체 투자를 전면 중단한 상태다.
이는 당장의 기업 손실을 넘어 K-푸드의 미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K-소스로 불리며 한류 식문화 확산의 첨병 역할을 하는 장류 산업은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품질 개선과 수출 설비 확충이 절실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농림축산식품부가 발간한 '2021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고추장 편'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고추장 수출액은 5천93만2천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직전 연도(2019년)의 3천766만7천달러보다 35.2%, 2016년의 3천132만9천달러와 비교해 62.6% 각각 증가한 수준이다.
특히 2024년 기준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류는 114개국에 8천998만6천달러를 수출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더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합리한 세제 구조가 신규 투자를 가로막으면서, K-소스 산업의 기회를 잃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책의 본래 취지였던 '물가 안정' 효과 역시 미미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류는 원가에서 설비 투자 비중이 높아, 면세 조치가 소비자 가격 인하로 이어지기보다 기업의 생산성 저하와 재무 악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생산 위축이 공급 부족을 초래해 오히려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역효과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한 장류 업계 관계자는 "지난 3년간 민생 안정이라는 대의에 협조하며 고통을 감내해왔지만, 이는 기업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며 "정상적으로 세금을 환급받는 다른 식품 업종과 달리 장류 기업만 손실을 감수하라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호소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최근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덩달아 K-소스에 대한 인기도 함께 커지고 있다. 기회가 온 것인데, 구조적 문제로 인해 날개가 펴지기도 전에 꺾이게 생겼다"며 "산업을 지키기 위한 정책적 결단이 시급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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