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총파업 위기로 인공지능(AI) 시대 중심에 선 한국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향후 '다운사이클(불황기)'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영원한 1등은 없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와 압도적인 D램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1위를 탈환한 삼성전자의 독주를 막기 위한 후발주자의 추격도 거세지고 있다. 노사 갈등 리스크가 단순한 생산 차질에 그치지 않고 순위 추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순간의 기술 지연이 대기업의 중장기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 호황 이면에는 경쟁사들의 추격이 있다.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지난 17일 투자설명회에서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19.13% 늘어난 508억 위안(약 11조1천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CXMT의 1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천268.45% 증가한 330억1천200만 위안(약 7조2천억원), 모회사 귀속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천688.3% 증가한 247억6천200만 위안(약 5조4천억원)에 달했다. 모회사 귀속 순이익은 연결 재무제표의 당기모회사 귀속 순이익 중 모회사의 주주들에게 최종적으로 귀속되는 이익을 뜻한다.
CXMT의 이번 분기 실적은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중신궈지)을 포함한 과창판(과학기술주 전용 거래 시장)에 상장된 모든 기업을 넘어선 기록이다. 앞서 지난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5% 늘어난 617억9천900만 위안(약 13조5천억원)으로 처음으로 연간 흑자 전환에 성공하기도 했다.
중국의 추격은 단순한 판매량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CXMT는 생산능력을 빠르게 늘리고 있으며, 중국 정부의 보조금과 정책 지원을 등에 업고 적자를 감수하는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과거 한국이 일본 메모리 산업을 추월했던 것처럼, 중국 역시 거대한 내수시장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기술 격차를 좁히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
한국은 이미 여러 차례 중국의 추격을 허용한 바 있다. 디스플레이 분야는 이미 중국에 주도권을 내줬고 배터리와 철강, 석유화학 등도 중국의 저가 공세와 공급 과잉에 흔들리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는 10대 주력 수출 업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고, 오는 2030년에는 전 부문에서 중국 경쟁력이 한국을 앞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AI 서버용 HBM과 고부가 D램 시장이 커지면서 마이크론의 존재감도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각각 20~30% 안팎을 나눠 갖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팽팽한 균형이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재계 관계자는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분야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인데 이마저도 선두를 내준다면 심각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DS)을 이끌며 '초격차'의 신화를 쓴 경계현 고문도 시장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지난 18일 대한민국공학한림원(NAEK) 포럼 기조연설에서 "중국 기업들이 이제 낸드 플래시라는 영역은 이미 20% 이상의 마켓셰어를 가져왔고 이번에 CXMT로 인해서 D램도 이제 10%를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면서 "중국 기업이 앞으로 3년 동안에 30만 장의 케파(생산 역량)를 증가를 하려고 하고 있고 그러면 한 12~3% 정도 마켓셰어를 가져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 영원한 호황도 없다
AI 인프라 투자에 힘입어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반도체 시장을 두고 향후 '다운사이클(불황기)'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경기 순환' 산업으로 꼽힌다. 수요가 늘면 기업들이 설비 투자를 늘리고, 일정한 시차를 두고 공급이 한꺼번에 늘면 가격이 급락하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생산역량(케파)과 가격의 영향을 크게 받는 분야로 호황기와 침체기의 실적 낙폭이 더 큰 편이다.
실제 과거에도 반도체 시장은 호황기와 침체기를 거쳤다. 1980년대 일본 업체들은 D램 시장을 장악하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후 공급 확대와 가격 하락, 한미 기업의 추격이 겹치면서 경쟁력이 약화됐다. 2000년 전후 닷컴 버블도 반도체 수요를 끌어올렸지만 이후 IT 투자가 얼어붙으면서 업계는 깊은 조정을 겪어야 했다.
국내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18년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서버용 D램 수요 증가에 힘입어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을 맞았고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이듬해 글로벌 고객사의 재고 조정과 공급 과잉이 겹치면서 내리막을 걷기도 했다.
AI 서버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맞물린 현재 호황기도 경기순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전히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강하지만,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증설에 나서면 향후 공급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전략(IBS)의 핸델 존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미콘 차이나 2026' 기조연설에서 글로벌 AI 인프라 자본지출(CAPEX)이 2020년 폭증하며 반도체 수요의 90%를 흡수하고 있지만 오는 2028년에는 과잉 공급의 부작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계현 삼성전자 고문 역시 "지금 빅테크들이 엄청나게 투자를 하고 있는데 이제 시설투자가 캐시플로우(현금흐름)를 넘어가는 일이 생기고 있다"면서 "2028년쯤 투자 대비 수익이 낮아지면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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