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질수록 재즈 특유의 편안한 선율은 더욱 포근하게 들리기 마련이다. 100년의 역사와 함께 20세기 음악 대표 장르로 자리잡은 재즈이지만, 여전히 재즈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실 재즈 음악은 연주자에 따라 달라지는, 즉 '연주 그 자체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음악이다. 재즈의 거장 루이 암스트롱이 "재즈는 남에게 물어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대구 도심에는 재즈를 보다 가깝게 느끼고 접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다. 주말&팀이 그중 세 곳을 찾아가 음악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고 왔다.
◆전국구 대형 공연장 '베리어스 재즈클럽'
대구 지하철 2호선 연호역 인근 대로변에 위치한 '베리어스 재즈클럽'의 외관은 마치 창고처럼 거대하다. 건물처럼 큰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높은 층고에 트리가 놓인 로비가 눈에 띈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넓은 공연장과 또다시 2층으로 나눠진 좌석까지 새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지난 9일 이곳에서는 영국 출신의 재즈계에서 급부상 중인 기타리스트 톰 올렌도프가 이곳에서 첫 내한 투어의 마지막 공연을 가졌다. 무대에는 베이시스트 코너 채플린과 뉴욕을 중심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한국인 드러머이자 SM 재즈 트리오 소속 김종국이 함께했다.
연주자의 기타 솔로로 공연이 시작되고, 이어 재즈 밴드 세션과 함께 그의 새 정규앨범 '웨어 인 더 월드'(Where In The World)의 수록곡들을 미리 들어볼 수 있었다. 곡 사이마다 연주자가 곡을 창작할 때 영감을 받은 영화, 여행지와 같은 이야기도 곁들여져 새 앨범의 사운드가 가깝게 다가왔다.
관객들은 미리 시켜둔 술과 간단한 음식을 즐기며 저마다의 속도로 공연을 즐겼다. 무알콜 음료도 준비돼있으며, 술을 마시지 않고 음악을 즐겨도 된다.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평화로운 선율의 음악으로 생각을 비우기도, 악기마다 솔로파트가 이어질 땐 리듬을 타며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는 등 자유롭게 공연을 관람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공연이 막바지를 향해 갈 때쯤 재즈바 창문 커튼이 열리면서 노란 은행나무 잎이 통창을 가득 채우는 뷰는 계절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이날 재즈바를 처음 방문한 소현아(27) 씨는 "공연 도중 세 연주자가 눈을 맞추고 서로에게, 때로는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모습이 마치 악기로 소통하는 것 같아 같이 몰입하게 됐다"라며 "탁 트인 넓은 창문에 비친 은행나무 풍경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전했다.
2018년 개관한 이곳은 올해도 윤석철트리오, 바이올리니스트 손모은이 이끄는 재즈밴드 '모은(MOEUN)', 강재훈 트리오부터 팀 피츠제럴드 트리오, 에스펜 에릭센 트리오 등 국내외 유명 재즈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꾸준히 올려졌다.
아티스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에는 250석이라는 좌석수가 한몫한다. 이날 공연을 주최한 재즈브릿지컴퍼니 관계자는 "전국에서 이정도로 넓고 많은 관객을 수용 가능한 규모의 재즈 클럽을 보기 어렵다"라고 전했다.
여기에 더해 "오늘 공연은 차분한 곡들이 많았지만, 평소 대구 공연을 진행하면 열성적인 관객들이 많다"라며 "다른 도시에 비해 대구 시민들이 호응도와 재즈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도시라고 느껴진다"라고 덧붙였다.
◆60년대 '나이트클럽'의 변신 '대호싸롱'
지난 14일 저녁 8시, 대구 교동의 한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계단으로 이어지는 좁은 입구에서 음악 소리가 스며 나온다. 이곳은 재즈바 '대호싸롱'. 문을 여는 순간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듯한 묘한 느낌이 스친다.
원하는 자리에 앉아 간단한 음료를 주문하자, 무대의 커튼이 열리며 공연이 시작됐다. 이날 무대는 '장원준 콰르텟'이 채웠다. 베이스 장원준, 기타 김찬욱, 피아노 임종관, 드럼 강재석 구성으로 '누구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재즈 스탠더드'를 콘셉트로 했다. 보사노바부터 재즈 블루스까지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멜로디가 이어졌고 초보 관객에게도 큰 장벽 없이 다가오는 공연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블루 몽크(Blue Monk)'가 무대를 채울 때였다. 1954년 셀로니어스 몽크가 작곡한 곡으로, 재즈의 특징을 잘 드러내 입문자들에게도 널리 추천되는 곡이다. 이날 무대에서 '블루 몽크'는 각 악기가 자유롭게 흘러가면서도 묘하게 하나로 묶이는 조화 속에 진행됐다. 공연의 마지막은 앵콜곡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으로 여운 가득한 마무리였다.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고, 3부에는 관객이 자유롭게 신청곡을 부탁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돼 있었다. 이날 대호싸롱 방문객은 약 20명 정도로, 20대 여성부터 40대 남성 단체 손님, 친구끼리 온 이들, 커플까지 다양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공간이 단순히 '재즈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호싸롱이 들어선 곳은 원래 1966년 문을 연 '대호나이트클럽' 건물이다. 60년대의 나이트클럽은 지금과 달리, 전속악단의 연주를 들으며 술을 즐기던 고급 사교 공간이었다.
대호나이트클럽에는 대구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이름이 등장한다. 바로 당시 전속 밴드 '모란'이다. 밴드 마스터 장익환은 이후 MBC 악단장을, 색소포니스트 김상렬은 KBS 악단장을 역임하는 등 대구 최고의 연주자들이 한곳에 모인 팀이었다. '모란'의 실력은 지역 음악계 전체가 경탄할 정도였고, 다른 나이트클럽의 밴드들이 몰래 와 연주를 엿듣기도 했다고 한다.
대호싸롱 관계자는 "연말 모임이 있는 12월에는 80석이 만석이 되는 날도 적지 않다. 5060부터 아이를 데리고 오는 가족 단위까지, 다양한 관객이 이 공간을 찾는다"며 "대호싸롱의 스토리를 알고 찾아와 주는 분들께 항상 감사하다"고 전했다.
◆호텔 지하로 내려간 곳엔…'블루시카고'
대구 중구 동산동에 위치한 엘디스리젠트호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가면 이국적인 이름의 재즈바 '블루시카고'가 등장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좌석이 많진 않지만 앤티크한 장식과 조명으로 아늑하게 꾸며져 순간 해외여행에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매주 금, 토요일 재즈공연이 있는 이곳에서 지난 22일에는 재즈밴드 팀 코튼(보컬 공정은·피아노 신인규·베이스 김종화·트럼펫&드럼 SWTP)이 무대에 올랐다. 관객들이 이야기 나누면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곡부터 자작곡, 보사노바와 스윙이 적절히 배치된 스탠더드 넘버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무대 도중 "재즈는 관객들이 만드는 분위기와 함께한다"며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2001년부터 시작된 이곳은 코로나 기간 동안 잠시 문을 닫은 뒤, 2022년에 재오픈하며 오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엘디스리젠트호텔에 소속된 공간으로 관계자는 "회장님이 재즈를 너무 좋아하셔서 호텔 지하에 따로 조성한 공간"이라고 비화를 밝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호텔 투숙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대구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이곳을 경험하고 가게 된다. 블루시카고 관계자는 "호텔 투숙객들이 프런트에서 재즈바가 있다는 안내를 받고 많이 온다"라며 "외국인 관객들이 공연마다 한 테이블 이상은 있다"라고 밝혔다.
공연은 매주 금, 토요일 오후 8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2부 구성으로 열린다. 일요일에는 휴무다.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날에는 별도 공연도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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