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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수다]높임말부터 경상도 사투리까지…"한국어는 끝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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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센터 한국어교실 가보니…기초반은 넘쳐도 '생활심화 과정'은 부족

대구 동구가족센터
대구 동구가족센터 '한국어교실'에서 결혼이민여성들이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구경북에서 살아가는 외국인 이웃의 이야기를 '무지개 수다'에 담습니다. 결혼이민여성, 이주노동자, 외국인 계절근로자, 유학생, 대학교수, 원어민 교사, 다문화 가정 등 모습은 달라도,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시장을 지나, 같은 교실과 공장으로 향합니다. 이제 이웃들과 함께 행복한 '무지개 세상'을 열어본다. <편집자주>

지난달 5일 대구 동구가족센터 한국어교실. 칠판 앞 강사가 '시원하다', '덥다'를 또박또박 읽자 교실에 앉은 결혼이민여성들이 조심스레 따라 했다. 발음이 꼬일 때마다 서로 얼굴을 보며 웃음이 터졌지만,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뜨거운 국물을 먹고도 '시원하다'고 말하는 한국어가 여전히 이해되지 않아서다. 단어는 알아도 뜻이 달라지는 은유와 관용표현 앞에서 이들은 오늘도 '생활 한국어의 벽'을 실감하고 있다.

대구 생활 2년째인 벨라루스 출신 빅토리아(25) 씨는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높임말'을 꼽았다. "'어머니 편찮으시다', '아버지 계시다' 같은 문장은 아직도 헷갈려요"라며 조금만 틀려도 무례하게 보일까 걱정된다고 했다. 그녀의 말처럼 한국어의 높임법은 이주여성들에게 벼랑 같은 장애물이다. 상대 나이·거리감·상황에 따라 말투가 순식간에 바뀌고, 처음엔 존댓말로 대화하다가도 어느 순간 반말로 전환되면 대화 흐름을 도무지 따라가기 어렵다.

5일 대구 동구가족센터
5일 대구 동구가족센터 '한국어교실'에서 결혼이민여성들이 한글 받아쓰기를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이주여성들에겐 높임말에 이어 최대 난관인 사투리도 복병이었다. '퍼뜩 온나(빨리 와라)', '와 이래(왜 이래)', '그카이(그렇다)', '묵나 안 묵나(먹을 거냐 말 거냐)' 등 낯선 표현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베트남에서 대구로 시집온 지 8년째인 쯔엉티투이응아(40) 씨는 시어머니의 "마, 밥 무라!"라는 말에 한동안 얼어붙었다고 했다. "밥을 가져오라는 건지, 새로 하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라며 교재에서는 본 적 없는 말투에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그녀는 "집에서는 시댁 어른들, 장보러 가면 시장 상인들까지 모두 사투리를 쓰니 따라가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또 이주여성들은 쌍자음 앞에서 멈칫한다. 14년째 대구에 사는 스리랑카 출신 사로샤(41) 씨는 "'짭짤하다'가 음식 맛을 말하는 표현인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돈을 잘 버는 사람에게도 쓴다길래 깜짝 놀랐죠"라며 "'싸다'가 아니고 물건을 '사다'라는 말도 처음엔 이해를 못했다"고 했다.

대구 동구가족센터
대구 동구가족센터 '한국어교실'에서 일본 출신 결혼이민여성 이마니시 유미 씨가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언어 장벽은 특히 병원에서 절박하게 드러난다. 쯔엉티투이응아 씨는 "감기만 걸려도 병원 가기가 무섭다"며"의사 선생님이 설명을 계속 해주시는데 이해가 안 되면 결국 남편에게 급히 전화해 통화를 바꿔드려야 해요. 아픈 건 나인데 설명은 남편이 들어요"라며 허탈해했다. 의료진도 고충을 털어놓는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전담 통역이 없어 설명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다국어 안내문이나 번역 앱만으로는 환자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무부·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일 기준 대구에 거주하는 결혼이민여성은 4천737명. 5천 명 시대가 눈앞이지만,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은 여전히 '문서'와 '병원'이다. 일상 대화야 어느 정도 되지만, 구청 서류·은행 업무·법원 문서만 보면 머리가 하얘진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대구 동구가족센터
대구 동구가족센터 '한국어교실'에서 스리랑카 출신 결혼이민여성 사로샤 씨가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동구가족센터에서 한국어 교육을 맡은 강사는 단 3명. 센터는 매년 상·하반기 총 5개 정규 과정을 운영한다. 1단계 기초한국어반, 2단계 정확한 한국어반, 3단계 즐거운 한국어반, 4단계 자녀학습지도반까지 마련돼 있다. 한정순(53) 한국어 강사는 "기초반은 많지만 행정·의료·노동 분야를 다루는 '생활심화 한국어 과정'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했다.

한 강사는"쉬운 일상 대화만 배우다 보니, 막상 취업이나 전문적인 사회활동에 필요한 어휘와 표현은 완전히 부족한 상태"라고 했다. 그는 "한국어 교육도 '특수 목적 한국어(KSP)' 체계로 확장돼야 한다"며 "맞춤형 교재 개발과 현장 강사의 통·번역 역량을 강화하는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들은 결혼이주여성들의 고백은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다. 기초 한글 교육에서 멈춰선 지역 한국어교실의 한계, 의료·행정 현장에서 드러나는 위험, 사투리까지 뒤섞인 현실적 어려움은 '정착'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들이 말하는 '한국어는 끝이 없다'는 말은 단순함이 아니라 '아직 채워지지 않은 교육'의 빈틈을 보여주는 메시지였다.

대구 동구가족센터
대구 동구가족센터 '한국어교실'에서 결혼이민여성들이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결혼이민여성들이 헷갈린 '한국어 표현 5선'

지난달 5일 동구가족센터에서 한글 공부하고 있는 결혼이민여성 5명을 대상으로 대면 인터뷰를 했다. 이들 이주여성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헷갈리거나 이해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었던 표현 5개를 소개한다.

5일 대구 동구가족센터
5일 대구 동구가족센터 '한국어교실'에서 결혼이민여성이 한글 받아쓰기를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1) '약 오르다?', '복용하는 약(medicine)인가요?'

화가 나서 심통을 부릴 때 쓰는 말.'약(을) 올리다'는 비위가 상하여 언짢거나 은근히 화가 나게 하는 것으로 "나를 약 올리는 거니?" 등으로 사용된다. '약이 오르다'와 '먹는 약'을 잘 구분해야 한다.

2) '손이 크다?', '손이 실제로 큰가요?'

'손이 크다'는 손의 크기가 아니라 '넉넉하게, 푸짐하게 베푸는 성격'을 뜻한다. 음식을 만들면 항상 많이 하고, 사람 대접도 후하게 하는 유형을 두고 "아휴, 저 사람 손 커"라고 말한다. 반대로 '손이 작다'는 짠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소심하거나 야무지게 처리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3) '간 보다!', '간(Liver)을 보다(See)'

"너 지금 사람 간 보니?"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할 때 혹은 저울질을 할 때 쓰는 말이다."이 찌개 어떤지 간 좀 봐"와 같이 쓰는 말로 사람 뱃속의 간을 보는 뜻은 아니다.

4) '총각김치'는 있는데 '처녀김치'는 없어요

손가락 굵기만 한 어린 무를 무에 달린 푸른 줄기와 잎을 잘라내지 않은 채 여러 가지 양념으로 버무려 담근 김치가 총각김치다. 총각김치가 있으니 당연히 '처녀김치'도 있을 것 같지만, 아쉽게도 처녀김치는 없다.

5) '배보다 배꼽이 크다?', '배꼽이 어떻게 배보다 커요?'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본질보다 부수적인 데 더 많은 힘·돈·시간이 들어갈 때 쓰는 말이다. 예컨대 5천 원짜리 생일 선물을 주려고 포장지·리본·상자에 1만 원을 썼다면 이 말이 딱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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