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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한일 문화교류·우호증진 보탬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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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WISE캠퍼스 인문도시사업단 공동연구원 아라키 준 박사…2011년 경주 정착해 경주근대사 연구

아라키 준 씨가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 옆 옛 성덕대왕신종 종각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아라키 준 씨가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 옆 옛 성덕대왕신종 종각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아라키 준(60) 씨는 웬만한 한국인보다 더 경주를 잘 아는 일본인이다. 신라 문화와 경주에 반해 자주 한국을 찾았던 그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42세가 되던 해인 2007년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 2011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석박사 통합과정을 수료한 뒤엔 아예 경주에 눌러앉았다.

경주 정착 직후엔 4년 동안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자원봉사로 해설사 활동을 했고, 이후엔 경북대 인문학술원 객원 연구원을 지냈다. 최근엔 동국대 WISE(와이즈)캠퍼스 인문도시사업단 공동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연구활동과 함께 경주 근대 역사의 숨은 이야기를 시민들과 나누고 있다.

지난해 11월 인문도시사업단의 '경주 근대 탐방' 행사 한 참가자는 "우리나라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일본인 역사학자가 들려준다는 점이 처음엔 좀 낯설었지만, 시종 열성적이고 진솔한 설명 덕분에 경주를 보다 깊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후기를 남겼다.

최근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에서 만난 아라키 준 씨는 "지금까지는 개인 연구에 집중해왔었다면 최근 또 다른 사명감이 생겼다"며 "다소 소박한 얘기지만 한국에서 저의 활동이 한일교류나 우호관계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라키 준 씨가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 옆 옛 성덕대왕신종 종각 앞에서 일제강점기 경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아라키 준 씨가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 옆 옛 성덕대왕신종 종각 앞에서 일제강점기 경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도쿄대와 함께 일본 최고 명문으로 꼽는 교토대 사학과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뜻이 있었나.

▶솔직히 말하자면 대학 때는 생활협동조합 활동을 하느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다만 대학 시절, 조선의 미를 높이 평가하고 이를 세계에 알린 야나기 무네요시를 알게 되고 그가 쓴 책을 접하게 되면서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 같다. 대학 졸업 논문도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해 썼다.

-한국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990년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도쿄로 돌아와 전공과 관련 없는 직장생활을 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자 대학 시절부터 가보고 싶었던 한국이 떠올랐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극찬한 미의 나라가 궁금했고, 1994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처음 본 서울은 활기차고 매력적인 도시였다. 경주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는 석굴암과 불국사, 야나기 무네요시를 사로잡은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는 정도밖에 알지 못했을 때였다.

경주역에 내렸는데 대기의 냄새가 일본 고대도시 나라(奈良)와 똑같아 너무 놀랐다. 두 곳 모두 분지 위에 세워진 도시였는데 도시 구조와 지세가 너무나 비슷했다. 평범한 도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경주에 빠져들었다.

이후 틈만 나면 한국을 오갔다. 저에게 한국 방문은 곧 경주행이었다. 횟수로 치자면 40번은 된 것 같다. 어느 날이었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삼릉 쪽 어느 고분에 갔을 때였다. 주위엔 아무도 없고 사방이 고요했다. 그곳에서 엄청난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때 결심했다. 경주와 관련된 일을 찾아야 겠다고.

-그 일 이후 한국으로 오게 된 건가.

▶아니다. 그런 마음을 먹었다고 당장 실행에 옮길 수는 없지 않나. 우선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운이 좋았는지 때마침 도쿄한국문화원에서 직원 채용 공고가 났다.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그렇게 7년 정도를 한국문화원에서 일했다.

한국문화원 직원으로 근무하며 한·일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해왔지만 경주에 대한 미련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으로 유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한국문화원을 그만뒀다. 이후 2007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류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에 입학했다. 마흔 두 살 때의 일이다.

아라키 준 씨가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 옆 옛 성덕대왕신종 종각 앞에서 경주의 근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아라키 준 씨가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 옆 옛 성덕대왕신종 종각 앞에서 경주의 근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11년 만인 2018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연구 주제는 무엇이었나.

▶제목이 다소 어려울 수 있다. '식민지기 경주 유적·유물의 미시정치: 다양한 이항대립의 교차'란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다. 일제강점기 경주를 무대로 수많은 유적·유물을 둘러싸고 벌어진 경주 거류 일본인과 경주민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분석한 것이다.

기존 경주 근대사 연구는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한 고적조사와 문화재 수탈 등 일본인들의 행위에만 집중해왔다. 그러다보니 총독부의 정책이나 문화재 수탈 등의 행위가 지역 주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그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조선인은 수동적 존재로 간주돼 역사의 주체로 취급되지 않았던 거다. 이 연구를 통해 그 공백을 메우고 싶었다.

1921년 가을 우연히 발견된 금관총 출토유물을 총독부가 경성으로 반출해 조선총독부박물관에 보관하고 전시하려는 시도를 한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당시 경주민들은 정치적 약자인데도 불구하고 '금관총 출토유물 경주 유치운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며 큰 역할을 했다. 당시엔 이처럼 다양한 행위와 논리가 교차하고 있었지만, 기존 연구가 일본인들의 행위에만 집중하다보니 이런 부분들이 가려져 있었던 거다.

-경주 서부동에 남아있는 1930년대 일본 불교 사찰 건물 '서경사' 건립 과정을 밝힌 논문도 관심 있게 봤다.

▶서경사는 일본인들의 경주 문화재 약탈과 관련된 곳이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이는 흔치 않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인데도 건립 배경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서경사 건립을 주도한 시바타 단쿠로는 1915년쯤 지금의 경주동산병원 자리에 시바타 여관을 개업해 갑부가 된 인물이다. 시바타 여관은 경주 제일의 여관으로 번창했다. 이 여관 인근엔 구리하라라는 골동품 가게가 있었다. 이 가게 주인은 손님이 오면 우선 그 사람의 행색을 관찰했다. 그리곤 고가의 골동품을 구입할 정도로 재력 있는 사람으로 판단되면 시바타를 소개했다. 시바타는 골동품 애호가로 많은 물품을 소장하고 있었다. 시바타는 손님이 자신의 소장품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더 좋은 물건이 있다"며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장인 모로가 히데오를 소개했다.

모로가는 원래 문화재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경주에서 대서업을 하며 취미로 신라 문화재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탁월한 화술과 처세술로 경주분관장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러나 그는 결국 1933년 문화재 도굴에 관여하고 밀매매한 사실이 드러나며 경찰에 체포되기에 이른다.

당시 경주엔 '구리하라-시바타-모로가'라는 문화재 밀매매 루트가 형성돼 있었다. 시바타는 이를 통해 재산을 축적했고, 서경사는 시바타의 그런 재력을 기반으로 건립된 거다. 이런 역사적 사실 또한 놓치지 말아야할 부분이다.

아라키 준 씨가 조선시대 경주부 관아 건물인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아라키 준 씨가 조선시대 경주부 관아 건물인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그밖에도 경주 3·1만세운동 장소에 대한 국가기록원 오류를 바로잡는 등 그간 학술적으로 다양한 성과를 냈다. 근대기 경주에 관심을 갖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이유는 간단하다. 근대는 현대와 맞닿아 있기에, 현대사회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근대사는 빼놓을 수가 없다.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가'이지 않나.

하지만 경주의 경우 '신라 천년 고도'란 점에만 너무 집중해온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한국인에게 일제강점기는 수많은 상처 탓에 정면으로 마주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랬기에 놓치고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반면, 근대는 고대에 비해 자료가 풍부하다. 일본인이 기록한 지배자의 독단적 논리의 문서 행간에서, 조선인의 논리를 찾아볼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당시 경주에 살았던 이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됐고 경주 근대사 연구를 해왔다.

지난해 지역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리우치'라는 보드게임을 준비해갔다. 가리우치는 일본의 고대도시 나라(奈良)의 헤이조쿄 유적에서 출토된 놀이 도구다. 이는 고대 한국계 도래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전파한 윳놀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나라문화재연구소는 이 놀이도구를 현대적으로 복원해 보드게임으로 만들었다.

당시 저는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며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을 들려줬다. 교실이 난리 날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고대 한일 문화교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가슴 속에 사명감 하나가 생겼다. 한국에서 저의 활동이 한일교류나 우호관계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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